▲유정민 감독은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해서 클럽 야구를 택했다.
유정민 감독 제공
- 확실히 야구 쪽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가 많은 것 같기는 해요.
"공감합니다. 하는 선수가 많아서인지 아님 종목의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케이스가 유독 많기는 합니다. 타 종목같은 경우 프로 신인드래프트 하위순번에서 주전급 플레이어가 나오는 케이스는 정말 드물어요. 연습생 등 기타사례는 말할 것도 없고요. 반면 야구는 좀 다릅니다. 상위순번보다 더 성공한 하위순번이 무수히 많아요. '프로에서의 성공은 순번순이 아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연습생 출신만 해도 장종훈, 한용덕, 김상진, 박경완, 김현수, 서건창, 이천웅 등이 당장 떠오릅니다. 이만큼 야구는 숨겨진 재능이 많은 스포츠라는 것이지요.
제가 클럽 농구를 통해 최대한 많은 선수에게 기회를 줘보려는 이유죠. 진짜로 야구에 애정이 깊다면 갈 수 있는 길은 많아요. 꼭 당장 프로에 가지 못하더라도 대학을 간 이후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고 해외리그도 있어요. 공부를 더하고 싶다면 유학같은 것도 연결시켜줄 수 있고요. 하지만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최소한의 기록은 필요해요. 그걸 아이들에게 챙겨주고 싶은데 기존 제도권 아래에서보다는 클럽 쪽이 더 자유로울 수 있겠다 싶어서 새로운 길을 택하게 됐습니다."
- 그렇겠네요. 재능이 아주 뛰어난 선수같으면 어디서든 잘하겠지만 어중간하게 중하위권에서 멤도는 선수는 클럽팀 등에서 뛰며 경험치를 많이 쌓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제가 추구하는 모토 중 하나가 바로 그러한 부분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아이들의 성향은 다 달라서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케이스가 있고 천천히 재능이 발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다소 아쉽다고 느꼈는데 기회를 받으면서 서서히 달라지는 케이스도 적지 않거든요. 그런 부분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클럽 야구 같은 경우 아직 막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전국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앞으로 적지 않은 숫자의 팀이 생겨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경험을 쌓는 데 유리하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될 테니까요. 일단 클럽에서 뛰어도 학생들이 나갈 수 있는 모든 대회는 다 출전이 가능합니다. 동등한 자격으로 유명 학교팀들과 전국대회에서 붙을 수 있는거죠. 일본같은 경우 클럽 야구가 굉장히 활성화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전국대회 같은 것 보면 토너먼트 등에서 클럽야구팀이 유명한 고교강호를 잡아내는 경우도 종종 생겨나고요. 그런 경우가 쌓이다보면 클럽 야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인프라가 넓어지는거죠."
- '경험이 꿈을 만든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라요.
"좋은 얘기네요. 제가 추구하는 것은 어쨌든 야구가 좋아서 시작한 아이들이니만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입니다. 야구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운동이에요. 예를 들면 초등학교 야구부 아이들은 처음에는 '난 메이저리거가 될 거야'라는 원대한 꿈을 품기도 해요. 그러다가 중학교 때는 '프로선수가 돼야지'로 꿈이 낮아지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선수는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프로선수가 된다고 해도 성공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 안에서 엄청난 경쟁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오히려 학생 때보다 더할 수도 있어요. 저는 아이들이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다양한 꿈을 꿨으면 좋겠어요. 선수의 길도 있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트레이너, 매니저, 스카우터, 에이전트 등 다양한 쪽도 있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야구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보통 선수로의 길이 좌절되거나 잘 풀리지 않은 경우 야구를 싫어하게 되는 케이스도 적지 않아요.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애정이 남아있을지 몰라도 당장은 야구를 쳐다도 보지 않으려 합니다. 보면 아쉽고 화가 나니까 그렇겠죠. 실컷 해보지 못한 아쉬움도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는 아이들이 최대한 많이 뛰어보고 느끼고 그러면서 야구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어차피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에요. 얼마나 더 성장하고 어떤 길로 갈 것인지는 본인들의 몫이죠. 저는 최대한 경험을 쌓고 이후 꿈을 꿀 수 있는 판만 깔아주고 싶은 것입니다."
- 서울고 시절에도 최대한 선수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지도자로 유명했어요.
"자유롭다라… 기준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야구에 별반 영향이 없는 부분까지 터치하지는 않으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두발 같은 것요. 운동부 두발 자유화는 제가 한국 지도자들 중에서 최초로 알고 있어요. 보통 운동부 친구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나서거든요. 투지를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자의가 아닌 타의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투지라는 것은 내가 불태우는 것이지 남이 옆에서 점화를 해주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깎고 싶으면 깎는 거고, 머리가 길 때 컨디션이 좋다면 그렇게 하라는 거죠.
이번에 일본 고시엔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고교가 화제가 됐잖아요. 거기는 야구 특기생이 없어요. 일정 수준 이상의 학업성적이 안 되면 입학이 불가능하거든요. 운동부 분위기도 강압보다도 자율에 의해 움직였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제패했어요. 공부를 병행하려면 정말 어렵겠죠. 하지만 선수들이 야구를 너무 좋아했기에 누가 옆에서 등 떠밀지 않아도 알아서 한단 말이에요. 우리 한국야구가 가야 할 방향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 마지막으로 지도자 유정민에게 야구란 무엇일까요?
"하하핫… 지금까지 질문 중 가장 어려운데요. 글쎄요. 다른 멋진 표현도 많지만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할께요. 아이들에게도 좋아서 야구를 하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실상은 제가 야구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않나 싶어요. 지난 야구 인생을 돌아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은 얼굴에서 행복이 느껴져요. 꼭 결과가 좋을 수만은 없어요. 열심히 했는데도 안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좋아서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큼 후회도 적겠죠. 아이들에게도 그런 야구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 아니 함께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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