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년들> 스틸 이미지.
CJ ENM
여운과 잔상이 <소년들>에는 없다
한국 영화를 보다 보면 비슷한 인상이 남는다. 뜨거워야 한다는 강박이다. 주인공은 클라이맥스에 모든 감정을 문자 그대로 '토해낸다.' 관객이 그 장면을 보면서 감정적으로 지친 끝에 눈물을 흘리게 만들려고 사력을 다한다. 혹자는 이를 한국인의 정서라고 이야기한다. 그럴 수 있다. 나라마다 고유한 감동 코드가 있으니까. 실제로 근래 한국 영화를 접한 외국 관객이 한국 영화의 '감정 과다'를 인상적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감정 과다 상태의 부작용이다. 감정을 토해내는 데 집중하는 사이 많은 영화가 납작해진다. 이야기, 그 속에 숨은 메시지, 이야기를 감싼 사회적 맥락을 곱씹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 대신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강렬함, '사이다'만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가 이 방식을 애용한다. 작가가 뱉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므로.
올해로 데뷔 40주년인 정지영 감독의 신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99년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소년들>은 검경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 법정 영화 <부러진 화살>, 금융당국의 문제점을 비판한 <블랙머니>와 비슷한 결이다.
의도는 스크린 위에 성공적으로 구현됐다. 17년이라는 시간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했다. 의인의 사투와 악인의 악행도 명확히 전달됐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강박을 버리지 못했다. 목적과 메시지를 낱낱이 설명하기 위해서 사족을 붙인다. 그러다 보니 관객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소화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여운과 잔상이 없는 이야기인 셈이다.
구성과 배우의 힘
물론 노장의 저력은 느껴진다. 특히 세 시간대를 넘나드는 초중반부가 인상적이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신선하거나 흥미로운 소재라고 할 수 없다. 관객에게 많은 정보가 노출됐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스테디셀러였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필두로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같은 범죄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덕분이다.
정지영 감독은 편집으로써 이 한계를 극복했다. 영화는 세 시간대를 번갈아 보여준다. 황준철 시점에서 2000년 재수사 과정과 2016년 재심 과정이 무게를 잡은 가운데, 1999년 사건 당시 정황이 플래시 백으로 삽입된다. 이러한 구성은 감정폭을 극대화하는 데 용이하다. 재심을 포기하라고 세 소년을 설득하려던 황반장이 그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세 사람. 황반장은 그들의 어릴 적 물놀이 장면을 겹쳐 본다. 재수사 과정에서 품었던 의구심과 분노, 재심 과정에서 되살아난 죄책감과 희망이 응축되며 교차편집의 힘이 정점에 이른다. 페이드 아웃되는 화면 전환이 올드하고 투박하나 힘이 있는 이유다.
배우들도 한 몫한다. <소년들>은 등장인물이 많다. 주요 선역과 악역만 합쳐도 5명가량 되고, 진범이 3명, 누명을 쓴 소년들이 아역과 성인역 합쳐서 6명이다. 그 외 조연이 더해지면 20명 가까운 인물이 과거와 현재에 뒤엉켜 있다. 관객 입장에서 충분히 혼란스러울 상황이다. 하지만 조진웅, 진경, 허성태, 하도권, 서인국 등 얼굴이 익숙한 배우가 곳곳에 포진한 덕분에 관객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화법과 메시지의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