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첫 방송을 탄 KBS <혼례대첩>은 고대의 결혼 중매인들을 신격화하면서 이들이 부와 권력을 누렸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과장이 매우 심하기는 하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과거로 가면 갈수록 중매제도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그 점은 <시경>·<주례>·<맹자>·<전국책> 같은 문헌들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매(媒)·매작(媒妁)·행매(行媒) 등으로 불리며 고대의 결혼시장을 선도한 이들의 매개가 없으면 결혼을 성사시키기조차 힘들었다. <시경> 남산 편에는 "아내를 얻으려면 어찌해야 하나? 중매가 없으면 안 되네"라는 시구도 있다.
맹자는 제자백가 중에서 진보적인 편에 속했다. 그런 그도 <맹자> 등문공 편에서 중매 없는 결혼을 천시하는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군자가 벼슬을 어려워하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중매 없이 결혼하는 일에 비유했다. "부모의 명령과 중매장이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 틈을 뚫고 엿보며 담을 뛰어넘어 따라다니면 부모와 국인(國人)들이 모두 천하게 여긴다"고 지적했다. 사대부가 관직 앞에서 초연함을 유지하지 못하면 중매 없이 결혼한 사람처럼 천대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국인(國人)은 '나라 사람'이나 '백성' 혹은 '국민'으로도 번역되지만, 국(國)이 도성을 뜻하던 시절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단어로도 번역돼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시절에는 국인이 도성 사람을 뜻했다. 도성에는 노비도 살았지만, 왕족과 귀족이 주로 살았다. 그래서 국인은 지배층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였다.
맹자는 중매 없는 결혼은 그런 국인들의 천시를 자초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의연함을 잃고 관직에 목매는 사대부의 모습을 거기에 비유한 것은 맹자를 비롯한 고대인들이 연애결혼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보여준다.
<관자>는 중매 없이 결혼하는 사람을 독재자에까지 빗댔다. 이 책 형세(形勢) 편은 "독재하는 왕의 나라는 힘들고 화가 많으며, 독재하는 나라의 군주는 비천하고 위엄이 없다"면서 중매 없는 결혼을 이에 비유했다. 그런 혼인은 추하다는 당시의 사회통념을 전제로, 독재자 역시 그 정도로 추하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중매를 받아 결혼하라'는 말은 권고에 그치지 않고 법률규범으로 발달했다. 당나라 법전인 <당률>의 주석서인 <당률소의>에는 "시집가거나 아내를 얻을 때는 중매인이 있어야 한다", "혼인을 할 때는 반드시 중매인을 세운다"는 규정이 나온다. 중매결혼이 법적으로 강제된 시대도 있었던 것이다.
중매없이 결혼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