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소재나 장르의 영화가 명멸했다지만 형식 자체로 보면 이 영화 또한 분명 새로운 시도다. 2일 개봉하는 <붉은 장미의 추억>은 흔히 영화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화려한 시퀀스나 시공간 전환 없이도 하나의 서사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1962년, 배우 신영균과 김지미가 주연을 맡았던 동명의 영화는 일종의 통속극이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옥중생활을 하던 사내, 실종된 아버지의 행방을 쫓는 여가수의 애틋한 로맨스를 그린 <붉은 장미의 추억>은 노필이라는 당시 전도유망했던 젊은 감독의 작품이다. 60여년이 지나 리메이크가 된 것이다.
서른여덟이라는 나이에 요절한 노필 감독은 생중 16편의 영화를 남겼다고 한다. 데뷔작은 식민지 조선인의 설움을 견디고 일본으로 건너가 비행사가 되어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인 <안창남 비행사>였다. 하지만, 영화 작업으로 인해 생긴 빚과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통속극을 더 많이 찍게된 불운의 창작자였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든 고인을 기리며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큰 고인의 작품 중 하나를 공연으로 선보이는 기획이었다. 필름은 사라지고 없지만, 대본만이 남은 <붉은 장미의 추억>(1962)이라는 작품을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무산 위기를 겪었고 당시 공연예술계가 으례 택했던 영상 녹화 방식으로 제작되어 공개될 예정이었다.
영상 녹화는 물론 아카이빙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매번 살아있는 연기를 하며 회차당 관객들을 만나온 배우들 입장에선 매우 아쉬운 방식이다. 그러던 찰나,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중랑문화재단에서 영화 작업 추진을 위한 지원금이 나왔고 <시민 노무현> <대관람차>를 연출하고 <최선의 삶> <꿈의 제인> 등 독립영화 프로듀서를 맡았던 백재호 감독이 해당 작품의 영화화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한계점에서 찾은 대안 배급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