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킬러> 스틸컷
영화 <더 킬러> 스틸컷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킬러>가 11월 10일 공개를 앞두고 10월 25일 CGV를 통해 단독 개봉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동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섹션)에 초청된 데이빗 핀처의 신작이다. 프랑스 작가 알렉시 놀랑(일명 '마츠')의 그래픽 노블 시리즈를 원작으로 했고, 제80회 베니스영화제의 경쟁 부분에 초청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넷플릭스에만 갇혀 있기 아까운 영화다. 한 킬러가 작전에 실패한 후 당한 보복을 대갚음해 주기 위해 하나씩 단계를 밟아나간다. 천천히 그리고 진중하게. 단 하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과 악에 받친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 고용주를 향해 전진한다. 파리, 도미니카 공화국, 미국을 누빈다. 고전적이거나 현대적인, 무미건조하거나 야생적인 장소를 이동하다 보면 주인공의 내면과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음향과 음악 선곡도 탁월해 말 없는 킬러의 취향을 조금이나 이해하는 요소가 되어준다.
 
챕터를 나누고 독백으로 시작해 독백으로 끝난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설정이지만 마이클 패스벤더의 강렬한 인장 하나로 118분을 지배한다. 평소 이성과 감성을 엄격히 분리하는 전문가였지만 한 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진 남자의 절박한 몸부림을 화면 가득 채운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독일 관광객 코스프레로 주변에 스며들고, 여러 신분으로 위장해 전 세계를 누빈다. 나라별 분위기와 스타일리시한 편집은 무자비한 킬러의 내면과도 대비된다.
 
냉철한 암살자의 정제된 복수극
  
 영화 <더 킬러> 스틸컷
영화 <더 킬러> 스틸컷넷플릭스
 
파리의 빈 건물에서 며칠째 타깃을 관찰 중인 의문의 남자는 이름 없는 킬러(마이클 패스벤더)다. 먹고 자고 화장실 갈 때도 알람을 맞춰 주변 동태를 살피는 철두철미한 남자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기다리던 어느 날, 드디어 타깃이 도착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격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예상외 변수가 생겨 총알은 목표를 벗어나 버린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상황. 수습은커녕 도망치기 바쁜 킬러를 기다린 대가는 상상치 못한 결과였다. 가까스로 도미니카 공화국의 은신처에 도착하자, 황폐해진 집과 여자 친구를 보고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다.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어난 설정
 
원작자와 핀처 모두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고독>(1967)에서 영감 받았다고 한다. 반대편 건물에서 오랫동안 먹잇감을 지켜보는 관음적인 시선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1954)과 닮았다.

알랭 들롱의 '트렌치코트'와 '페도라'는 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나 '하와이안 셔츠'와 '벙거지'로 변주되었다. 실용적이고 평범한 킬러다. 멋진 옷을 입고 007가방을 든 쿨한 킬러가 아닌, 주변에 있을 법한 남자로 분해 오히려 흥미롭다. 암살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한참 벗어난 참신함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영화 <더 킬러> 스틸컷
영화 <더 킬러> 스틸컷넷플릭스
 
필요한 물건은 아마존이나 홈디포에서 구매하고, 식사는 편의점이나 스타벅스, 맥도날드에서 해결한다.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체크하고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다. 조직이 지원해 주는 최첨단 장비나 백업 팀도 없다. 오롯이 혼자 모든 것을 생각하고 제거하며 처리한다. 때로는 배달부, 청소부, 관광객으로 변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반복했던 습관이지만 자꾸만 어긋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달라 의아한 행동을 일삼는다. 변호사, 짐승, 전문가, 의뢰인으로 타깃을 좁혀가는 사이 살인은 공허해지고 의미 없이 흘러간다. 그는 반복해서 신념을 되새기며 마인트 컨트롤을 시도한다. 의뢰받은 만큼의 대가에 집중하고, 공감과 돌발행동은 금물이며,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무엇을 위한 복수인지, 자신마저 납득하지 못할 위기를 맞는다. 마지막에 다다르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획대로 하지 않고 은신처로 돌아온다. 한가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유독 불안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미세하게 떨리는 눈은 실수의 반복을 예고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평생 실수와 모순을 만회하고,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한 헛발질이 인생이라는 걸 깨달은 달관자의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기다림과 단조로운 패턴에 익숙했던 차가운 킬러가 비로소 뜨거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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