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란> 스틸컷영화 <화란> 스틸컷
영화 <화란> 스틸컷
<화란>의 비현실적인 면은 누군가에게는 고작이라는 말이 나올 돈 300만 원으로 이야기가 시작된 게 아니다. 이상하게 수완이 좋은 치건의 비즈니스도 아니다. 믿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고, 자세히 알아보는 건 더 내키지 않는 연규의 상황 역시 아니다. 반지하에 빼곡하게 들어찬 낡은 살림살이처럼 보는 이의 숨을 답답하게 만드는 절망들 사이에 연규가 엄마와 함께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는 희망을 몰래 품고 있다는 점이다.
힘든 사람들이 늘 그렇듯 어렵게 간직한 희망이 사라지는 건 품고 온 순간의 1/10도 걸리지 않았다. 연규는 치건을 형처럼 따르지만 그처럼 냉정해지기는 쉽지 않다. 한쪽 발을 절면서도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오토바이로 배달일을 하는 완구(홍서백 분)를 만난 뒤부터는 연규의 착한 품성이 자꾸 그를 화란이 아닌 명안시로 잡아끈다. 완구는 300만 원이 7000만 원으로 불어난 사채빚을 죽도록 갚지만 결국 생업 수단인 오토바이를 압류당한다.
연규는 치건 몰래 오토바이를 완구에게 돌려주지만, 그마저도 곧 들킨다. 연규를 찾아온 치건은 그러게 왜 주책을 떠냐고. 네가 오지랖 떨 팔자냐고 충고한다. 이 질문은 사실 영화가 관객에게 당신은 어디에 위치할 것인지 묻는 것과 같다. 연규의 마음 씀씀이는 칭찬을 들어 마땅하고, 치건의 냉정함은 성토의 대상이다. 다만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가정 아래에서. 도의적 당위성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관객이 봐온 연규의 상황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영화의 주인공은 연규다. 하지만 "꿈같은 건 꾸지 말라"는 치건의 일침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무기력이 글러 먹은 동네 명안시의 설계도다. 연규가 눈가에 입은 상처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아물지만, 치건의 찢어진 귀는 유독 그대로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 연규는 어쨌든 명안 시를 탈출해 화란으로 떠나려는 꿈이 있다. 숨만 붙어있다고 사는 게 아니라는 치건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의 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