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란>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십 대 연규(홍사빈)는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친아버지와 폭력적인 새아버지, 생활고에 시달려 무기력해진 엄마(박보경)와 네덜란드로 떠나기 위해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네덜란드를 선택한 이유는 사는 모습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빈부, 학력 등에 차별이 심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곳이라면 뭐라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새아버지의 만연한 폭력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복동생 하얀(김형서)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라도 술 취한 새아버지에게 맞을 때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둘은 티격태격하며 막말을 서슴없이 퍼붓지만 서로를 향한 진심을 품고 있다. 그러던 중 큰 사건이 벌어진다. 학교에서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한 하얀 대신 돌을 내리쳐 응징을 가한 연규. 합의금 300만 원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엄마, 새아버지 모두 손쓸 방법도 해결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런 연규를 우연히 본 치건은 아무런 조건 없이 300만 원을 건넨다. 어릴 적 호수에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떠올랐던 걸까. 희망 없는 도시에서 아등바등하는 절망에 연민을 느꼈던 걸까. 이를 계기로 연규를 치건을 형, 또는 아버지처럼 따르며 지하 세계로 발 들이게 된다. 치건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유대감이 싫지 않았다. 매운탕을 직접 끓여 생선 먹는 법을 가르쳐 줄 정도로 가까워진다. 이미 큰형님(김종수)을 만났을 때 빈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으니까.
치건은 조직의 중간 보스로 아물지 않고 버틴 기묘한 상처와 녹록지 않은 세월을 나이테처럼 몸에 지닌 인물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어울리는 상처 받은 영혼을 지녔다. 조직의 도구로만 살아왔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늪에 빠진 듯 희망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 겉은 어른이지만 속은 자라지 않고 멈춰버린 소년 같은 남자이자, 살기 위해 아이를 착취하는 비겁한 어른이다.
어린 연규가 무서우리만큼 성장할수록 치건은 영양분을 빼앗겨 말라가는 고목 같다. 점점 더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착취하는 조직은 정치권과 결탁해 성장하려 하고, 더 큰 일에 휘말리게 된다. 둘은 함께 할수록 합의점을 이루지 못하고 뒤틀리며 엇나간다.
출구 없는 닫힌 도시, 희망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