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스틸컷
웨이브
먼저 준성의 술은 가장 쓰디쓴 소주에 가깝다. 흙수저인 그는 팔랑귀 때문에 사기를 당하고 큰 빚을 진다. 군대에 들어간 사이 불어난 사채이자 때문에 4억 원을 갚아야 하는 그는 제대 후 꿈꾸었던 새로운 삶에 대한 기운과 희망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착한 마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돈이 없으면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그에게 세상은 씁쓸하기만 하다.
재효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술은 거품이 가득 낀 맥주다. 의대에 진학하면서 탄탄대로를 달릴 줄 알았던 그는 조직적인 커닝에 참여했다 본인만 퇴학 처분을 받는다. 같은 위치에 서 있다 여겼던 친구들이 재력가 부모를 통해 돈으로 사건을 무마한 걸 본 그는 허상과도 같은 거품이 푹 꺼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신경 쓰지 않는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는 재효는 부잣집 도련님인 동창 민우를 충동적으로 납치한다.
민우는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의 현대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의 부모는 세상에는 악인이 많다며 이에 대한 적응을 위해 아들을 일반계 고등학교에 보냈다. 부모가 말한 악인들을 만난 도련님은 소위 말하는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수업을 착실히 받았다고 여겼다. 친구라 여겼던 이들에게 납치를 당한 민우의 절망은 가장 독한 술, 보드카를 마시는 기분일 것이다.
부모의 재력이 본인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현 청춘들이 직면한 양극화를 <거래>는 계층의 반란과 우정의 붕괴를 통해 흥미롭게 담아낸다. 이런 과감함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퍼니 게임>처럼 과격하거나 <기생충>처럼 발칙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아마추어라는 점에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획이 아닌 충동적으로 진행된 납치는 어설픔에 더해 삐꺽거리는 순간의 연속으로 오락적인 재미와 함께 독한 소재를 순화시키는 힘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