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첫 장면부터 호러 분위기를 강조한다. 멜로드라마 요소가 짙었던 전작 <나일 강의 죽음>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다른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 베니스 풍경부터 그렇다. 대각선 구도로 건물을 촬영하고, 광각으로 왜곡되는 부분을 만들어 불안감을 키운다. 포와로가 깜짝 놀라 꿈에서 깨는 장면도 호러 영화 느낌이 강하다. 작은 방과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만나 명암 대조가 강렬한 화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소재 자체의 매력을 영리하게 살려낸 도입부도 인상적이다. 영화는 한 가지 괴담을 소개하며 분위기를 고조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고아원에 갇혀 죽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이 유령이 되어 자기들을 버리고 도망간 의사와 간호사에게 복수한다.' 이런 내용이다. 배경과도 잘 어우러진다. 핼러윈을 맞이한 베니스, 운하와 곤돌라, 가면무도회의 조합은 마치 <오페라의 유령>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관객의 감각을 일부러 건드는 연출도 눈에 띈다. 특히 청각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갑작스레 휘몰아치는 바람, 새들의 날갯짓, 고택 어디에서든 울려 퍼지는 문 소리와 시계 소리 등이 현장을 생생히 들려준다. 중간중간 삽입된 귀신 소리, 유령이 움직이는 소리, 컵이 깨지거나 칼에 찔리는 소리도 분위기를 환기하고 공포심을 심어주는 데 유용하다.
호러만으로는 버겁다
하지만 호러 요소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의문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미장센을 즐기는 재미는 확실하나, 새로운 겉모습이 추리물의 본질적 한계까지 가리지는 못했기 때문. 원작 자체가 1969년에 출판된 만큼, 뻔한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추리 과정이나 범인을 숨겨 놓는 기법은 힘들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가장 범인이 아닌 것 같은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결말도 스테레오 타입이다.
몇 안 되는 근거를 보여주는 방법 역시 평이하다. 주로 클로즈업을 통해 결말을 예상케 하는데, 너무 티를 내다보니 복선이나 암시로서 역할을 해내는 데 실패한다. 구성도 익숙하다. 포와로는 모든 인물을 붙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증거를 추적하기보다는 인물의 사연과 관계를 파악한다. 그러니 속도가 붙질 않는다. 온도는 오르지만, 좀처럼 끓지 않는 물 같다.
각 캐릭터의 존재감도 문제다. 모든 인물에게 조금씩 분량을 분배하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려면 각 캐릭터의 매력이 확실히 살아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개개인의 존재감이 부족하다 보니 관객의 눈길을 붙잡아 두기 어렵다. 결국 푸아로의 원맨쇼만 보일 뿐, 사연과 캐릭터, 추리는 흥미를 끌지 못한다.
이는 전편과 비교해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는 페넬로페 크루즈, 조니 뎁, 윌렘 데포,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데이지 리들리가, <나일 강의 죽음>에는 갤 가돗, 아미 해머, 엠마 맥키, 레티티아 라이트가 출연했다. 그에 비하면 누구 하나 케네스 브래너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줄 배우가 없다. 코로나 기간에 개봉한 <나일 강의 죽음>이 흥행에 실패한 후폭풍이 드러나는 지점인 듯하다.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