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영화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의 알파와 오메가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한 역사에 대한 전기 영화다. 오펜하이머(줄리언 머피)의 젊은 시절에서 맨해튼 계획으로 이어지는 기본 시간대, 1954년에 원자력 협회에서 벌어졌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그리고 1959년에 있었던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의 인사청문회의 3가지 시간대로 주로 진행된다. 1000페이지가 넘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원작인 만큼 방대한 사건이 흘러가기 때문에 몇 장면을 집중해야 한다.
오프닝을 살펴보자. 케임브리지 대학교 대학원 유학 시절, 실험물리학에 서툴러서 고생하던 22살의 청년 오펜하이머가 지도교수 패트릭 블래킷을 독살하려던 이야기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오펜하이머는 실험실에서 망신당하자, 홧김에 교탁에 있던 사과에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주사했지만 교수가 독사과를 먹기 직전 벌레가 먹은 사과라면서 사과를 잡아 쓰레기통에 넣었던 일화가 오펜하이머의 특징을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닐스 보어가 먹을 뻔한 사과를 오펜하이머가 가로채는 것으로 표현됐다.
22살 청년에게는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뻔한 아찔한 사건이지만,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본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필연적으로 일어날 사건이기도 하다. 다가올 끔찍한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애써 모른척하며 실행에 옮긴 뒤 수습하는 과정은 역사가 증명하듯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했음에도 종전 후에는 반핵운동을 펼친 경험. 부인 키티(에밀리 블런트)를 두고 진 태틀록(플로렌스 퓨)과의 오랜 기간 외도를 하고, 그녀의 마지막을 사실상 방치한 뒤 후회하는 모습으로 반복된다.
이는 10분 전 일을 기억 못 하는 선행적 기억상실증을 보완하기 위해 자기 몸에 문신을 새기고(<메멘토>), 자경대가 되어 도시의 악당들을 소탕하고(<다크나이트 시리즈>), 아내를 구하기 위해 기억의 심연에 접근(<인셉션>)하는 등 자신이 구원이라 믿었던 행동이 사실은 자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는 놀란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과도 맞닿는 부분이다. 오펜하이머에겐 자기 구원이란 착각의 요소가 물리학이자 원자폭탄 개발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