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의 한 장면.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의 한 장면.채널A
 
'부모화된 아이(parental child)'라는 용어가 있다. 부모화란 자녀인 아동이나 청소년이 성인인 부모가 맡아야 할 역할과 책임을 맡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역할 역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부모화된 아이는 과도한 책임을 끌어안기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자신의 유년기를 잊게 되고 가족 내에서 진정한 자리를 잃어 외로움과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 

부모화된 아이의 철들고 의젓한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겠으나, 성장기에 있는 아동이나 청소년은 그 나이대에 맞은 경험이 필요한 법이다. 지난 1일,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에는 초4(여), 초2(남, 금쪽이) 남매의 부모가 스튜디오를 찾았다. 엄마는 금쪽이가 순한 성향이지만, 또래에 비해 사회성이 떨어지고, 울음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잦은 돌발 행동을 한다고 답답해 했다. 

금쪽이는 48개월부터 초2 현재까지 언어, 놀이 치료 및 감각 통합 치료가 진행 중이었다. 엄마는 금쪽이가 가족과 함께일 땐 평범하지만 남들도 평범하게 볼지 우려했다. 그렇다면 금쪽이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독서 논술 학원을 방문한 금쪽이의 평가 결과는 7세 수준이었다. 읽기 독립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눌한 발음과 집중력 부족을 보였다. 엄마는 또래보다 더딘 금쪽이가 걱정스러웠다.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의 한 장면.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의 한 장면.채널A
 
"국어보다 더 선행돼서 먼저 해결돼야 하는 근원적인 문제는 언어기능이에요." (금쪽이)

오은영 박사는 글씨는 보고 따라 쓸 수 있지만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상에서 어려움이 많을 거라고 우려했다. 귀가한 금쪽이는 엄마, 이모와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하다가 게임에서 지자 생떼를 부렸다. 거실 펜트리 뒤로 숨어 울다가 반응이 없자 밖으로 나와 막무가내로 게임 테이블을 치워버렸다. 엄마는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는 자책으로 눈물을 흘렸다. 더딘 금쪽이를 위해 노력했던 5년의 시간이 허사인 것만 같았으리라. 병원마다 다른 진단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ADHD 진단을 받고 현재까지 약물을 복용했지만 차도가 없었고, 몇 달 전에는 이전과는 달리 자폐적 양상이 보인다는 검사 결과를 받아야 했다. 엄마는 인터넷을 통해 자폐 초기 증상에 대해 공부했지만 금쪽이와는 달라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내가 아이를 더 망가트리는 것 같아. 누구 원망도 못하겠어." (금쪽이 엄마)

검도 학원에 간 금쪽이는 맨 앞자리를 선점했다. 하지만 화장실 간 사이 자리를 뺏기자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의 양보를 받은 후에야 눈물을 그쳤다. 검을 고를 때도 원하는 색을 고집했다. 다른 색의 검을 주자 줄행랑을 쳤다. 키즈 카페에서도 기차의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생떼를 쳤다. 그 외에도 장난감 정리 방식에도 집착했다.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면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연 금쪽이는 자폐 스펙트럼일까. 오은영은 엄마가 금쪽이의 증세를 파악하기 혼란스러웠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과거에는 '자폐증'을 별도로 진단했고, 유아 자폐증, 발달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 등의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과 데이터 축적을 통해 위의 케이스들의 선천적인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그 공통점은 기본적인 상호 작용과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3년부터는 훨씬 넓은 개념인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게 됐다. 결국 핵심 증상은 사회적 상호 작용의 어려움인데, 자폐 스펙트럼 아동 중에는 금쪽이처럼 눈 맞춤이 가능하거나 호명에 반응하는 케이스도 있다. 금쪽이 엄마가 헷갈렸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자폐적 핵심 양상 : R. R. F
Repetitive : 의미 없는 행동이나 소리를 반복
Ritual : 의식 절차. 순서대로 진행되어야 만족
Fixation : 색이나 자리 등 특정한 것에 대한 집착


금쪽이는 책상 위에 둔 물건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울음을 터뜨렸다. 심부름을 간 사이 엄마가 정리를 했던 게 화근이었다. 금쪽이는 다시 자신의 방식대로 장난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건 배치가 이전과 오차 없이 동일했다. 또, 관찰 내내 의문의 행동을 반복했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특유이 손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오은영은 종합 분석 결과 자폐 스펙트럼 의견을 밝혔다. 

부모처럼 동생 돌봐야 했던 초등학생 누나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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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만 보면 웃어줬으면 좋겠어." 

한편, 금쪽이네의 또 다른 문제점이 확인됐다. 바로 불균형이다. 두 명이 자녀가 있음에도 부모의 레이더는 항상 금쪽이에게 뻗어 있었다. 아무래도 아픈 손가락인 금쪽이가 좀더 신경쓰였으리라. 그러다보니 누나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누나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소통은 쉽사리 이어지지 않았다. 어색하기만 한 둘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만 감돌았다. 

누나는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했지만, 마치 엄마처럼 동생을 돌봐야 했다. 놀러온 친구와 함께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일터에 있는 엄마는 그러면 동생이 혼자 있게 되니 데리고 나가라고 요구했다. 결국 누나는 금쪽이의 외출 준비까지 마치고 함께 나가야 했다. 친구와 오롯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금쪽이는 이를 계속해서 방해했다. 금쪽이는 11살이 감당하기에 버거웠다. 

"자폐 스펙트럭을 가진 아이들은 안정감 있는 일상생활을 해나갈 때 어떤 길이 만들어지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한 번 만들어진 길을 바꾸는 게 매우 어려워요." (오은영)

그런가 하면 누나는 엄마, 아빠가 없을 때 동생의 배변 후 뒤처리까지 감당하고 있었다. 누나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손에 금쪽이의 변이 다 묻는다며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엄마는 누나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은영은 자폐 스펙트럼의 경우 한 번 습관으로 굳어지면 바꾸기가 어렵다며, 볼일을 본 후 처리를 할 때 스스로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철들고 의젓한 누나가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누나 역시 아직 성장기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이대에 맞는 경험이 필요한데 부모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전형적인 '부모화된 아이'였다. 하고 싶은 게 많을 11살 누나는 왜 자신만 양보해야 하는지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도 엄마, 아빠가 힘들까봐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눌러 삼켰다. 이대로 괜찮을까.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의 한 장면.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의 한 장면.채널A
 
"(엄마, 아빠가) 금쪽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거짓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그냥 저 신경쓰지 마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빨리 어른이 된 누나의 속마음은 엄마의 짐작보다 훨씬 더 곪아 있었다. 오은영은 누나가 부모에게 양가 감정을 가졌으리라 추측했다.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금쪽이로 인해 힘들어 보이는 부모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오은영은 가족들이 각자의 위치에 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누나는 금쪽이의 부모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오은영은 장기적 치료가 필요한 아이의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며, "자폐 스펙트럼은 부모 잘못의 결과가 아닙니다. 지나치게 미안한 마음도, 죄책감도 갖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자폐 스펙트럼의 긍정적 예후를 위해서는 언어 기능의 획득이 매우 중요한데, 금쪽이의 경우 조기 발견과 조기 개입으로 기본적인 언어 소통이 가능한 상태라 긍정적 예후가 보였다. 

금쪽 처방은 '사회성 스펙트럼 넓히기' 프로젝트였다. 엄마는 검도장에서 특정 자리에 집착했던 금쪽이에게 새로운 교칙을 부여했다. 자리에 숫자를 매겨 매번 번갈아 앉는 루틴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 훈련을 통해 금쪽이는 조금씩 사회성을 키워나갔다. 또, 자폐 스펙트럼 자녀를 둔 멘토를 직접 만나 생생한 조언을 얻었다. 엄마, 아빠는 불필요한 죄책감을 갖는 대신 자신감을 얻어 나갔다.

순서와 규칙에 따라 일상의 과제를 해결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 금쪽이가 정한 4가지 속재료를 순서대로 넣으면서 자조 능력을 키웠다. 또, 화장실 규칙 지키기도 시도했다. 아빠는 배변 후 뒤처리 방법을 꼼꼼하게 가르쳤고, 금쪽이는 정해진 규칙을 순순히 따라했다. 키즈카페에서도 기차에 순서대로 타는 법을 익혀나갔다. 이제 금쪽이는 울지 않고 기차에 탑승하게 됐다. 

그런가 하면 누나에게는 특별한 책임감을 갖지 않도록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다. 고른 관심이 필요하다는 오은영의 조언에 따라, 엄마는 장문의 손편지를 전했다. 엄마의 진심을 확인한 누나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건강한 애착을 만드는 '모녀의 날'을 만들어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약속했다. 힘든 날들을 이겨낸 금쪽이네가 그들의 속도에 맞춰 순조로운 나날을 이어가길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금쪽같은 내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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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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