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꽃의 전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이번 영화의 주 무대는 제주 성산읍 삼달리다. 이곳에는 87년 물질 경력의 현순직 해녀와 마을에서 가장 젊은 채지애 해녀가 있다. 영화는 이 둘 각자의 내력을 소개하고 그들을 둘러싼 변화의 흐름, 그리고 둘이 혈연관계인 것처럼 의미심장한 그들만의 의례를 치르는 순서로 큰 흐름을 이어나간다.
현순직 해녀는 그야말로 삼달리 해녀들의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다. 96세에 이르기까지 87년이라는 해녀 경력은 듣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다. 해녀의 등급을 구분할 때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뉘는데, 현순직 해녀는 상군 중에도 '대 상군'-'고래상군'으로 꼽히기에 모자람이 없다. 마치 그의 한 몸에 해녀의 역사가 압축된 느낌이다. 실제로 제주 해녀들은 외지에서 초빙을 받아 몇 년씩 원정을 다니기도 하는데 현순직 해녀 역시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다.
반면, 다년간의 제작기간 덕분에 촬영이 막바지에 도달했을 땐 나이가 제법 찼지만 영화 초반에는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막내 채지애 해녀는 현순직 해녀와 비교하면 증손녀라 해도 될 정도로 앳되다. 그의 엄마도 마을 해녀였지만 자식에겐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딸을 육지로 내보내 대학도 마치게 하고 다른 일자리를 얻어 정착시켰다.
하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녀 일을 하겠다는 딸이 영 마뜩찮았다. 환갑 줄에 들어선 채지애 해녀의 엄마도 현역 해녀다. 그는 스파르타식으로 딸을 가르치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이 땅 어머니라면 누구라도 동감할 내용이다. 그런 엄마의 시선은 이 영화에서 세 번째 주인공에 가까운 역할을 선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반부는 그렇게 극명히 대비되는 두 해녀 각각의 삶을 묘사하는데 주력한다. 현순직 해녀의 다사다난한 물질 경력은 제주를 넘어 독도까지, 동해와 남해를 모두 아우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생과 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물질을 해 가족을 부양했다는 것을, 문안전화로 이제 물에 좀 그만 들어가시라고 타박하는 막내아들의 염려가 증언한다. 산전수전 베테랑이라지만 '숨비소리'의 교차 사이로 언제든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고된 일이 수월할 리 없다. 동료 해녀들의 죽음과 자신이 숱하게 겪어온 생사의 갈림길을 그는 담담히 증언하곤 한다. 자식들 모두 집 한 채씩 사주고 번듯하게 독립시켰다는, 실로 심금을 울리는 독백과 함께 눈이 펑펑 쏟아지는 사이로 노쇠한 몸을 이끌고 물질에 도전하는 순간이 교차한다.
반대로 채지애 해녀는 자식들은 이 일을 안 했으면 바랐을 선배 해녀들의 어쩔 수 없는 소망을 배반한 존재다. 하지만 그와 함께 대견하고 기특한 후계자 노릇이다. 전성기에 비해 1/6 이하로 줄어든 제주 해녀의 명맥을 잇는 몇 안 되는 희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하나씩 배워나가는 해녀로서의 기본기는 그저 아련하게 사라져가는 전통을 넘어 영화 전체에 계승과 복원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해녀들만 접근 가능하다는 비밀의 정원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