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걸드라마 <마스크걸>에서 직장인 김모미가 얼굴을 가리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넷플릭스
전 직장 방송국에서 직원들 일상 브이로그 소개 코너를 만들었다.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의 일과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방송을 통해 회사와 자기가 하는 업무 등을 소개했다. 별 자극 없는 평범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삐딱한 뒷이야기가 터져 나오곤 했다.
'한가하다. 저런 거 할 시간도 있고?'
한 직장에 다니는 동료들 의견이다. 상사에게 허락받은 일임에도 공공의 적은 있다. 하물며 회사 밖에서 '나 이런 사람입니다'라며 얼굴과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간 큰 직장인이 얼마나 있을까.
직장인은 안팎으로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현실판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쓰고, <마스크걸> 김모미는 회사 밖에서 진짜 가면을 쓴다. 회사에서의 가면이 진짜 나를 숨기는 도구라면, 회사 밖 가면은 진짜 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마스크걸>은 직장인의 단순한 일탈이 아닌 용기와 노력이 가미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부지런한 직장인의 자기 계발 모습이다. 설령 마스크의 목적이 하트팡과 성형 수술이었다 해도 이를 위한 노력은 오롯이 그녀가 감당한 몫이다. 춤과 노래 연습을 비롯해 무대 세팅, 화장, 의상 준비 등 게으른 직장인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을 숨기면서 숨겨왔던 끼를 마음껏 분출하는 모습에서 커다란 대리만족을 느꼈다. 김모미의 방송이 원색적이라는 사실을 떠나 진짜 나를 드러내 박수를 받고 싶은 욕구 분출이었기 때문이다. 가짜의 나를 감추고, 진짜 나를 드러내는 일이 주는 묘한 통쾌함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책을 몇 권 냈다. 사내 방송에도 출연하며 여기저기 얼굴도 알렸다. 본분이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누군가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가장 후회된 순간을 묻는다면 "회사에서 내 이름과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글을 썼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직장인이 글을 쓰고, 책을 쓴다는 것. 어쩌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견제와 감시 때문에 괴로웠다. "책 썼다며? 보고서를 그렇게밖에 못 쓰나?"라는 권력자의 비아냥거림에 의기소침해진 경험도 있다.
내 글이 쪼그라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제야 본명을 숨겼다. 글 쓰는 일에도 독서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책 읽는 모습이 책 쓰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상사의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를 숨기고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종종 한다. 지금보다 더욱더 시원하고 화끈한 글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얼굴을 감춘 김모미의 춤과 노래 실력처럼.
회사에서 대부분의 직장인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맞는 마스크를 쓰고 '해야 할 일'에 에너지를 쏟는다. 하지만 직장인이 진짜 갈구하는 삶은 김모미와 같이 분출하는 삶일 것이다.
지금까지 내 업에 맞는 페르소나를 쓰고 '해야 하는 일'에만 에너지를 쏟았다면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은 일'을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해 나갈지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좋아했던 일, 잘하는 일,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한번쯤은 시도하는 삶, <마스크걸>의 김모미처럼 희망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외모, 부디 가치 있는 불평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