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 “‘난 다른 사람 될 수 없어, 난 그렇게 될 수 없어. 아버지가 원하는 삶 아닌, 그냥 내가 되겠어’라고 볼프강이 노래하잖아요. 제가 항상 뒤에서 대기하면서 듣는데, 가장 마음에 남아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기를 원하는 깊은 욕망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있잖아요. 저도 그런 두려움이 있어요. 진짜 내 모습, 내 밑바닥, 내 단점을 다 보여줬을 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확신 비슷한 것. 저도 사람들이랑 만나면 호감을 얻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어느 정도 가면을 쓰니까요.”

▲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 “‘난 다른 사람 될 수 없어, 난 그렇게 될 수 없어. 아버지가 원하는 삶 아닌, 그냥 내가 되겠어’라고 볼프강이 노래하잖아요. 제가 항상 뒤에서 대기하면서 듣는데, 가장 마음에 남아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기를 원하는 깊은 욕망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있잖아요. 저도 그런 두려움이 있어요. 진짜 내 모습, 내 밑바닥, 내 단점을 다 보여줬을 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확신 비슷한 것. 저도 사람들이랑 만나면 호감을 얻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어느 정도 가면을 쓰니까요.” ⓒ EMK뮤지컬컴퍼니

 

"이제 제 이름은 '모차르트' 부인이 아니라, '니센'이에요."

뮤지컬 <모차르트!>의 무대는 1809년 11월 18일, 빈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서 시작한다. 신이 내린 위대한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묻힌 묘지에 일련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을 안내하는 건 콘스탄체 니센, 한때는 콘스탄체 모차르트였고, 그전에는 콘스탄체 베버였던 여자. 모차르트를 거부하는 콘스탄체는 거래를 했다. 볼프강의 두개골을 원하는 이들에게 그가 묻힌 자리를 알려주고 안내료를 받기로.
 
익숙한 시작, 여러 번 보아온 장면, 그리고 드는 묘한 위화감. 무언가 달랐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서막을 여는 콘스탄체는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듯 두려워했다. 그 기저에 깔린 게 모차르트에 대한 죄책감일지, 아니면 어둠에 대한 공포일지는 불분명하지만,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까지 닿을 듯한 그 불안감이 항상 요동쳤다.
 
"워낙 오래 전 일이잖아요…. 안내료는 5000이에요."
 
하지만 이번의 콘스탄체는 달랐다. 그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제 할 일을 하듯, 딱딱하고 사무적이었다. 또 지나치게 건조하지도 않았다. 배우 선민의 콘스탄체는 뮤지컬 <모차르트!>의 시작을 다르게 만들었다. 아직도 이 작품에는 새롭게 접근할 여지가 이토록 남아 있었다니.
 
"연출이 공포나 쫓기는 듯한 상황을 이야기하신 적은 없으셨어요. 제가 콘스탄체를 이해하는 방식과 비슷한 부분일 것 같아요. 콘스탄체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볼프강을 믿었지만 '볼프강은 언제나 음악이 먼저고, 나는 도저히 이 사람한테 첫 번째가 될 수 없겠구나. 영원히 음악을 이길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헤어졌잖아요. 볼프강을 너무 사랑했고, 저의 구원이었고, 한때 진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냥 옛날 일인 거죠. 어쨌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도 그렇거든요. 저에게 어떤 정이나 의미가 깊었던 예전의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아주 먼 훗날의 제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거든요. 그게 아마 저와 콘스탄체가 가장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콘스탄체도 그런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콘스탄체는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지난 2020년, 10주년을 맞은 여섯 번째 공연을 보면서 더는 이 작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는데,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올라오는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배우의 걸음을 내딛는 방법에 따라 또 이런 변주가 가능했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일곱 번째 시즌에 '콘스탄체'로 합류한 배우 선민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건 소용 없어
 

생각보다 선민과 <모차르트!>의 인연은 오래됐다. 10년 전에도 작품 합류 제안이 왔었지만, 당시는 배우가 국내 활동을 쉬면서 캐나다에 머무를 당시였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불발되었던 작품. 하지만 그저 아쉬움만으로 남을 뻔했던 작품은, 10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찾아왔다. 오디션 제안이 오자, 배우는 감사한 마음으로 오디션에 응했다. 이전에 <모차르트!> 무대를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새로운 접근도 가능했다.
 
"작품이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제가 부르는 '난 예술가의 아내라'는 모든 뮤지컬 지망생이 다 한 번씩 연습해 보는 노래이기도 하거든요.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막상 하려고 하니까 제가 이때까지 해왔던 작품 중에 가장 어려운 역할이었어요. 연습을 시작하면서부터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 연출께서 제가 이 작품의 이전 무대들을 못 봤다고 말씀드리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떤 편견 없이 접근할 수 있어서,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 가는 게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뮤지컬 <모차르트!>의 주인공은 당연히 타이틀 롤인 볼프강 모차르트이다. 볼프강은 콘스탄체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까지 하지만, 그와의 결혼 생활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 주변의 여러 인물 중 하나로, 한때 그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결국에는 여러 상처 끝에 그를 떠나는 이다. 콘스탄체의 존재는 모차르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인물이지만, 상연 시간 중 콘스탄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저도 이제 콘스탄체를 따라가면서 대본을 보니까, 처음에 약간 막막하기는 했어요. 콘스탄체의 여정이 좀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는데, 조금은 생략돼 있다 보니 과연 관객들이 설득이 될지 자신이 없었어요. 콘스탄체와 볼프강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들, '그래, 둘이 저렇게 됐구나' '아, 마음 아프다' 이걸 제 역량으로 보여드리기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제가 나오는 신에서 저를 보여드려서, 그 다음 신에까지 감정과 이야기가 연결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죠."
 
결국 인물을 만들어 나가는 건 배우이다. 배우는 인물과 자신이 지닌 교집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도 하고, 여집합에 속해 있는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없던 자신을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깊은 고민 끝에 나온 그의 콘스탄체는 이전의 콘스탄체와 비슷하면서도 또 선민만의 색깔을 가진, 그래서 색다른 콘스탄체로 완성될 수 있었다. 선민이 연기하고 노래해 왔던 이전 인물들과도 꽤 닮았다. 활짝 웃고 있는데 동시에 고혹적이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내면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어두우면서도 포근한 인간.
 
"되게 좋은 단어들을 골라 주셨네요. (웃음) 제가 기본적으로 조금 어두운 거에 끌리는 편이긴 해요. 예전에 <드라큘라> 때 루시처럼, 마냥 명랑한 내면을 표현하는 건 사실 제가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모습이거든요. 배우마다 가진 고유의 색이나 분위기가 있잖아요. 제가 거쳐 온 캐릭터는 어쩔 수 없이 저라는 한 사람이 역할을 하다 보니까 제가 묻어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제 안에서 인물과 비슷한 면을 발견해서, 제 안에서부터 시작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어떤 분들은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우울해 보인다' '어두워 보인다'라고도 하세요. 그것 역시도, 제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갖고 있는 면이 아닐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사실이 콘스탄체와 친해지기가 좀 어려웠었어요. 다른 작품을 할 때 비해서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결국에는 제 안에서 콘스탄체와 비슷한 부분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었어요.
 
예를 들면, 작품에서는 엄마의 입을 빌려서 콘스탄체가 '게으르다'라고 표현이 됐죠. 하지만 실제로 게으른 아이라기보다는, 정확하게는 그 집을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고, 자기 의지대로 무언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죠. 그냥 그 집에서 태어났고, 집안 환경이 그랬고, 언니에 가려 언제나 주목받지 못했고, 남을 등쳐먹는 이 집이 싫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한통속이 돼야 했죠. 순응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게을러 보이는 건데, 저도 제 인생의 어떤 한 시점에서는 실제 제 성격이 그렇지 않았음에도 그냥 순응하기 위해서 '나 원래 이래'하는 면이 있었거든요. '시키는 대로만 살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저를 떠올리며 콘스탄체를 만들었어요."
 

난 너를 처음 본 순간, 마법에 걸린 듯
 

모차르트의 고백 “콘스탄체는 사실 그 순간에도 충분히 좋아하지 못해요. ‘내가 이 행복을 누려도 되나?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고 자꾸 의심하죠. 저도 사실 ‘내가 이 행복을 가져도 되나’하는 시기가 있었거든요. 제 인생의 그런 시기에 있었던 마음들로 계속 콘스탄체라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했죠. 그런 순간들이 있었고, 그런 비슷한 부분들을 제가 공감하려고 한 덕분에 지금의 콘스탄체가 나온 것 같아요.”

▲ 모차르트의 고백 “콘스탄체는 사실 그 순간에도 충분히 좋아하지 못해요. ‘내가 이 행복을 누려도 되나?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고 자꾸 의심하죠. 저도 사실 ‘내가 이 행복을 가져도 되나’하는 시기가 있었거든요. 제 인생의 그런 시기에 있었던 마음들로 계속 콘스탄체라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했죠. 그런 순간들이 있었고, 그런 비슷한 부분들을 제가 공감하려고 한 덕분에 지금의 콘스탄체가 나온 것 같아요.” ⓒ EMK뮤지컬컴퍼니

 
작품은 실제 역사와 다르게 창작되고 변형된 부분이 상당하다. 뮤지컬 <모차르트!> 속 베버 가족은, 예술적 재능은 있지만 다른 사람을 속여서 빼앗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집안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처음 베버 가족의 집을 방문한 볼프강은 오히려 돈독해 보이는 이 가족에게 매료된다. 엄격하고 억압적인 아버지, 사랑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시달렸던 모차르트에게 베버 가족은 자신이 꿈꿨던 가족의 모습과 닮은 면이 있었을 테니까. 볼프강과 콘스탄체의 첫 만남은 이때 성사되지만, 처음부터 두 사람이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또 신나서 '하나 물었다' 막 이러니까 저에게는 지겨운 거죠. '그래봤자 뭐가 얼마나 대단한 작곡가인데? 무슨 돈이 있겠어?' 이러면서 관심이 없다가, 처음 그를 보고 일단 관심이 생겨요. 그게 잘생긴 외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아우라 때문에요. 처음에는 '뭔가 조금 신경이 쓰여' '눈길이 가'와 같은 호기심이었는데, 집에서는 볼프강을 언니와 이어주려고 하잖아요. 둘이 같이 나가려고 하니 '추워 뒤질걸?'하고 혼자 심통이 나죠. 첫 번째 만났을 때는 사실 딱 그 정도에서 끝나요.
 
하지만 두 번째 프라터 공원에서 만날 때는 다르죠. 내가 예전에 어느 정도 호감을 느꼈었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에 대한 반가움도 있지만, 사실 그것만은 아니고요. 볼프강이 자신을 괴롭히고 방해하는 아르코 백작에게 한 방 먹이잖아요. 그것도 되게 익살스럽게 그러면서도 카리스마 있게 다른 사람들을 이끌면서요. 콘스탄체는 볼프강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했지? 나는 왜 한 번도 내 인생에서 뭔가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했지? 나는 왜 내가 싫은 거에 대해서 저렇게 싫다고 한 방 먹일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와 같은 생각들을 하는 거죠. 그리고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주변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그 모습에 반해요.
 
그냥 한눈에 '뿅' 반해서 사랑을 하게 된 게 아니라, 정말 콘스탄체한테는 볼프강이 그런 큰 의미인 거죠.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너무 멋있다'라는 것. 엄마인 체칠리아가 막 잘해 보라는 식으로 빗자루도 주면서 뭔가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콘스탄체는 절대 그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볼프강을 원해서 잘해보고 싶었던 거죠. 막 어색함을 깨보기 위해서 청소하는 척도 했다가, 이런 말도 저런 말도 했다가…. 그게 주체적으로 살지 못했던 콘스탄체 본인의 첫 번째 주체적인 선택이죠. 콘스탄체한테는 볼프강이 이제 유일한 구원이거든요."

 
콘스탄체에게 볼프강은 구원이었다. 계부가 자신을 때려서 갈 데가 없을 때 찾아갈 수 있는 피난처, 자신의 어둡고 못난 모습도 다 고백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모습조차도 괜찮다며 받아주는 남자. 베버 가족은 꼬투리를 잡아 볼프강을 협박하지만, 볼프강은 강요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콘스탄체를 원했다. 모차르트는 베버 가족이 서명을 요구한 결혼 계약서에 펜을 댄다.
 
머리엔 장미꽃을 꽂고 샴페인에 취해
 

 

"난 예술가의 아내라, 영감을 줘야해. 하지만 어둠이 오면, 날 위한 밤을 준비해…. 언젠가 그가 신의 부름을 받아 눈을 감는다 해도, 난 내 방식대로 슬퍼하리라. 그 무덤에서 절대 울지 않으리." - 뮤지컬 <모차르트!> 2막 No.33 '난 예술가의 아내라' 중에서

 
두 사람은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가 있어"라고 노래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은 얼마 가지 못한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콘스탄체는 몹시 지쳐 있는 채로 등장한다. 너저분한 집안의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주워 담더니 노래하는 그. 벌써 닳고 닳은 듯, 그 한숨에는 체념과 낙담이 가득하다. 그렇게 콘스탄체의 시그니처 넘버인 '난 예술가의 아내라'가 울려 퍼진다.
 
"이 노래를 연기적으로 풀 때 되게 어려웠어요. 콘스탄체의 성격이나 개성을 알 수 있는 신이나 대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독창곡에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야 하잖아요. 이 노래 가사를 통해 상상을 해봤을 때, 콘스탄체는 늦게 일어나는 것 같고, 치장하는 거 좋아하고, '햇빛은 피부에 안 좋다' 그러고, 가난하게 살다가 돈 많은 남편 만나서 별로 집안일에 관심도 없어 보이고 이렇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게으르고 좀 속물적인 캐릭터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콘스탄체를 점점 알아가고 가까워지면서, 사실 콘스탄체가 이 노래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맨날 파티에 가서 술에 취해서 놀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콘스탄체는 사실 볼프강과 사랑하고 싶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 거죠.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나 그냥 막 살래. 나 너 없어도 돼. 다른 데서 행복을 추구할 거야. 재밌는 거 많아'라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되게 철없어 보이고, 볼프강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을 하고, 이 결혼 생활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다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사실은 너무 주목받고 싶었고, 사실은 언니처럼 오페라 가수도 하고 싶었고, 나도 음악에 너무 관심이 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이 노래에서 전부 다 반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풀었어요. 그 장면에서 제가 막 모차르트가 남긴 악보를 보면서 가슴에 안다가도 '아니, 아니야. 나 음악 안 좋아해. 관심 없어' 그러고, 또 그러다가도 '그런데 언니는 나도 재능이 있다고 했는데…'하고 생각하는 거죠. '나 그런 거 관심 없어'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진짜로 관심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콘스탄체는 그 노래에서 되게 절규하는 거로 생각했어요. 볼프강은 콘스탄체를 사랑하지만, 콘스탄체가 1순위는 아니잖아요. 음악을 해야 하고, 밖에 나가면 친구들도 많죠. 하지만 콘스탄체에게는 모차르트밖에 없거든요."

 
콘스탄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이다 보니, 배우는 이 장면을 표현할 때 가장 힘을 많이 쏟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모차르트의 코트를 들고 춤을 출 때, 선민은 단순히 무도회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볼프강과 춤을 추는 상상을 한다. '내 인생 즐겨라'라고 노래하지만, 사실은 즐기지 못하는 삶, 볼프강의 코트를 내려놓는 순간, 음악을 느려지면서 음표에 슬픔을 담는다. 3층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에게까지 '노래 가사는 이렇지만, 제 속마음은 달라요'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선민의 콘스탄체는 그 순간 온 마음을 담아 절규한다.
 
음악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
 

모차르트를 떠날 때 “콘스탄체가 조금 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었다면 달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콘스탄체에게 볼프강은 너무 ‘구원’이었는데, 실제로는 그 환상에 미치지 못했죠. 그 공허함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거죠. 콘스탄체가 볼프강을 떠나는 그날도, 콘스탄체에게는 굉장히 여러 번 겪었던 일이죠. ‘아, 난 영원히 이 사람한테 첫 번째가 될 수 없구나’ ‘난 언제나 음악 뒤에서, 이 사람이 음악을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있어 주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걸 크게 깨닫죠. ‘바뀌지 않는 사람을 내가 붙잡고 혼자 스스로를 고문하는 걸까’라고 느끼니까 결국 마지막을 고하는 게 아닐까요.”

▲ 모차르트를 떠날 때 “콘스탄체가 조금 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었다면 달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콘스탄체에게 볼프강은 너무 ‘구원’이었는데, 실제로는 그 환상에 미치지 못했죠. 그 공허함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거죠. 콘스탄체가 볼프강을 떠나는 그날도, 콘스탄체에게는 굉장히 여러 번 겪었던 일이죠. ‘아, 난 영원히 이 사람한테 첫 번째가 될 수 없구나’ ‘난 언제나 음악 뒤에서, 이 사람이 음악을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있어 주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걸 크게 깨닫죠. ‘바뀌지 않는 사람을 내가 붙잡고 혼자 스스로를 고문하는 걸까’라고 느끼니까 결국 마지막을 고하는 게 아닐까요.” ⓒ EMK뮤지컬컴퍼니

 

발트슈테텐 남작 부인이 노래한 것처럼, 왕자는 황금별을 찾아 성벽을 넘어갔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주변 인물들이 상처받아야 했다. 예컨대, 누나인 난넬 모차르트도 음악적 재능이 있었지만, 볼프강 모차르트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다. 볼프강은 콘스탄체에게 사랑을 속삭였지만, 그에게는 오페라나 교향곡을 쓰는 게 더 중요했다. 콘스탄체는 그저 모차르트의 음악적 영감을 위한 뮤즈에 지나지 않았을까. '예술가의 아내'라는 기능을 위해 소비되고 버려진 인물일까.
 
"저도 사실 볼프강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정말로 콘스탄체를 사랑했는지, 모차르트에게 콘스탄체는 어떤 존재였는지 말이죠. (웃음) 볼프강도 콘스탄체를 분명히 좋아했겠죠. 베버 가족이 돈 달라고 그러면 본인이 하기 싫은 거짓말도 해야 하고, 친구들에게 쓰기 싫은 편지도 써야 했죠. 볼프강도 자신이 고통받으면서 이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콘스탄체와 붙어 있기 위해 감내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죠.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희생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볼프강이 저를 원한 것보다, 제가 더 볼프강을 원했을 것 같아요. 단순히 누가 더 사랑했다가 아니라, 볼프강의 인생에서 콘스탄체가 필요한 정도와 저의 콘스탄체가 인생에서 볼프강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아주 다르지 않았을까요? 콘스탄체에게는 볼프강만이 구원이었으니, 그를 향한 열망이나 기대나 희망, 그런 것들이 더 크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처음부터 잘못된 인연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너무 다양하게 펼쳐지니까요. 결과가 안 좋으니까, 그 선택도 잘못됐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게, 꼭 실패라거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냥 그런 과정들이 있었고, 삶의 어떤 시기에서는 그런 일들이 있었던 거죠. 콘스탄체는 볼프강을 만난 덕분에, 자기가 혼자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배웠을 수도 있어요."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쉬운 오페라를 쓰겠다며 매진하고 있는 볼프강, 자신과의 약속을 또 잊어버린 콘스탄체는 결국 볼프강을 떠나 버린다. 모차르트는 그런 콘스탄체를 붙잡으려고 하지만, 쉬카네더는 모차르트를 만류하며 작품을 완성하도록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끝내 이별하고 말았지만, 선민은 콘스탄체가 볼프강 때문에 불행했다고, 그러니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콘스탄체는 볼프강 때문에 본인의 인생에서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자기 스스로 볼프강을 떠날 결심도 할 수 있었다. 자기 가족을 싫어하면서도 그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 채 순응했던 인물은, 이제 자신이 한때 너무나 사랑했지만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려운 남자를 제 선택으로 떠나보낸다.
 
"콘스탄체는 그전까지 결핍에 의한 것이든, 과한 욕망이나 환상을 채워주지 못해서든, 미성숙해서든, 어쨌든 정말 한 번도 주변을 거슬러서 주체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모차르트를 떠나겠다는 선택을 했으니, 이건 성장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연기했던 인물들이, 어떤 한 사람을 통해서 변화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게 순간이었든, 긴 시간이었든, 사랑을 받으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였죠. 그게 꼭 남자의 사랑을 받아서 변화한 여성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더라도, 사람은 자신을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는 누군가를 자양분 삼아서 혼자 살아갈 힘을 갖게 되잖아요. 어린 시절에는 잘 받아내지 못했지만, 어떤 시점에 타인을 통해 힘을 얻고 변화하는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볼프강도 콘스탄체 덕분에 음악을 할 수 있었고, 콘스탄체도 볼프강 덕분에 결국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나아간다고 봐요.
 
타인에게 조건 없이 어떤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거든요. 지지와 응원을 받았고, 그게 분명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됐고, 그 성장 덕분에 제가 성찰하게 되고, 새로운 누군가를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제대로 바라볼 방법들을 배웠어요. 이제는 그 사람이 꼭 없더라도,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충분히 성장하고 혼자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극장을 나가시는 관객분들도 그런 점을 알아주고 기억해 주시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가 그랬던 것처럼, 선민은 자신이 맡은 인물에 새로운 결을 만들고, 그 결은 흐름이 되어 작품 자체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일곱 번째 시즌은 끝났지만, 다음 시즌에 <모차르트!>를 또 볼 이유가, 그리고 그때에도 배우 선민이 돌아오기를 기대해 볼 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배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힘을 주는, 그래서 스스로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배우였다.  

배우로 사랑받고 싶은 모습 
“배우로서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이런 목소리를 내면, 저렇게 표정을 쓰면 더 사랑받지 않을까,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그냥 있는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이죠. 저는 제가 색이 강하다는 생각은 배우 하기 전까지 평생 못 하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뮤지컬을 하고 나니, ‘조금은 다르다’라고 분류되는 부분들이 있었죠. 옛날부터 그래서 ‘뮤지컬은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고민도 많았죠. 하지만 결국 고집을 마음속으로 좀 부렸던 것 같아요. 그냥 제 색깔대로 인정받고 싶었는데, 실제로 그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돌아보면 ‘이렇게 하길 잘한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웃음)”

▲ 배우로 사랑받고 싶은 모습 “배우로서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이런 목소리를 내면, 저렇게 표정을 쓰면 더 사랑받지 않을까,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그냥 있는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이죠. 저는 제가 색이 강하다는 생각은 배우 하기 전까지 평생 못 하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뮤지컬을 하고 나니, ‘조금은 다르다’라고 분류되는 부분들이 있었죠. 옛날부터 그래서 ‘뮤지컬은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고민도 많았죠. 하지만 결국 고집을 마음속으로 좀 부렸던 것 같아요. 그냥 제 색깔대로 인정받고 싶었는데, 실제로 그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돌아보면 ‘이렇게 하길 잘한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웃음)” ⓒ EMK뮤지컬컴퍼니

 
 

콘스탄체 모차르트 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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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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