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마켓(TSM: True Stories Market)' 모습왼쪽부터 발칸반도의 주요 탐사보도기관 네트워크인 BIRN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부 소속 라미야 그레보 기자, 레일라 가차니차, 크로아티아의 테나 페리신 교수.
클레어함
발칸반도의 주요 탐사보도기관 네트워크인 BIRN(Balkan Investigative Regional Reporting Network)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부는 올해 8회를 맞는 '실화 마켓' (TSM)에서 두 편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단체의 발표를 요약하면,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피해자들에게 트리거가 되어 고독감, 악몽을 재현시키는 등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세가 심해졌다. 즉 팬데믹 초기에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런 경험은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 때도 겪었던 기억을 재생시킨다는 점, 언론에서 보도되는 우크라이나 전쟁 참상의 이미지들은 과거 직접 겪었던 악몽같은 전쟁의 기억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증후군을 겪는 이들에 대한 공식통계도 없을 뿐더러 정부의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쟁이 야기한 물가상승은 또한 이미 최소한의 생계도 어려운 낮은 연금 생활자들의 생활고를 악화시키고 있다. 소수의 엔지오들의 지원에 의존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이 기관의 또 다른 프로젝트는 1992년 200여 명의 주민이 살해된 빌랴니(Biljani)대학살 이야기다.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성이 가족과 작별하던 괴로운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감동적인 실화도 있다. 전쟁 중 파괴된 크로아티아의 리피크(Lipik) 보육원을 재건했던 한 의사, 마리차 토피치(Marica Topić)의 실화가 그것이다. 당시 파괴된 보육원을 탈출했던 아이들과 동갑내기인 그녀의 조카 다니엘 토피치는 당시 이모의 행적을 찾아나서는 개인적인 여행을 나선다. 이 과정에서 당시 직원들과 고아들의 현재 모습을 접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논하려고자 하는 것이 발표자들의 취지다. 이 자료를 소개한 크로아티아의 테나 페리신 교수는 자신의 차고에서 우연히 옛 사진들을 발견한 것에 영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역사적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 과거의 전쟁범죄로 아직까지 고통을 겪는 북부 도시 바냐루카 주민들의 이야기도 소개되었다. 바냐루카는 보스니아 제2의 도시로 세르비아계가 절대 다수인 스릅스카공화국의 사실상의 수도다. '레드 밴(Red Van)'이라는 제목의 연구자료를 제시한 레일라 가차니차씨의 발표에 의하면, 바냐루카는 1990년대 전쟁 당시 평화로운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장례식 승합차로 이용되던 빨간 승합차를 몰던 일단의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들은 모슬림과 크로아티아인들 같은 비세르비아계, 본인들의 사상과 다른 세르비아인들을 납치해 구타, 고문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일부는 행방불명되기도 하는 등 지역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생존자들은 아직도 끔찍했던 기억을 말하지 못하고 인터넷에 익명 댓글로만 소극적으로 저항할 뿐이다. 그 이유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주류인 이 도시에서 과거 전쟁범죄자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보복의 공포와 트라우마가 여전히 전후에도 현존하는 것이다. 한 예로 전범으로 언급된 바 있는 네나드 스테반디치(Nenad Stevandić)는 현 스릅스카공화국의회의 의장이다. 이 지역의 전쟁범죄는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ICTY)의 공식 판결기록으로도 인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