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 이미지
㈜엔케이컨텐츠
그런 그들의 생을 향한 의지는 '밥'에 온전히 구현된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들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먹을거리 미장센을 협연해온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의 솜씨는 <강변의 무코리타>에서 소박한 먹방 묘사의 절정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도 무수하게 유튜브를 떠도는 먹방 이미지 클립을 창조해 왔지만 이 영화에선 야마다의 밥상 풍경만으로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이끌어내는 위용을 드러낸다. 주인공 야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의 심리와 변화 묘사가 거의 먹방 장면으로 해결될 정도다. 그런 작가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돋보기를 집어 드는 것처럼 관객은 누구든 먹는 행위가 화면에 펼쳐지는 순간 긴장하며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같이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곧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웃들 사이의 우애를 상징하는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오기가미 나오코와 이이지마 나미 콤비의 협업은 소박한 일본 가정식 묘사에서 한 정점을 이뤄왔지만 이제는 숫제 '혼밥'의 풍경 반복으로도 원하는 이미지를 뽑아내기에 이른다. 야마다는 '밥'에 특별한 집착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후반부에 설명되는데 초반에는 그런 설명 없이도 그저 밥솥에 밥을 짓는 과정 전체에 그런 기운이 농축된 것처럼 묘사된다. 고작 국과 젓갈만으로도 야마다 역을 맡은 배우 마츠야마 켄이치가 생존을 넘어서는 즐거움을 누리는 게 여실하다. 그리고 이웃 시마다가 텃밭에서 바로 따다준 싱싱한 과일과 채소, 공장 사장이 선물해준 최고급 오징어 젓갈로 점점 식단이 풍성해진다. 곧 야마다의 일상이 풍요로워진다는 무언의 해설로 기능하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그저 야마다의 단출하던 식탁이 풍성해지는 것만으로 설명은 끝나지 않는다. 이웃의 욕실을 노리던 시마다는 이제 젓가락과 밥그릇을 들고 천연덕스럽게 야마다의 맞은편에 앉아 있다. 밥 냄새가 좋다며 끼니 때만 되면 스르륵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텃밭 농사에 야마다를 일손으로 끌어들인다. 늘 자신은 빈털터리라 내세우며 아무렇지 않게 이웃들의 식사에 '침입'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 시마다의 행패에 어느 순간 야마다가 동참하는 장면은 그냥 보면 썰렁한 개그 코드 같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면 야마다가 타인과 어울리려는 거대한 도전의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그들이 염치 불구하고 끼어든 미조구치 가족의 쇠고기 전골 만찬에 어느새 미나미 가족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밥'을 같이 먹는 '식구'의 정겨운 풍경이 이 낯선 이웃들 사이에서 구현되는 '역사적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밥상의 이미지만이 아니다. 영화 내내 주요하게 기능하는 (자살방지를 위한) '생명의 전화'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기상천외한 답변, '하늘을 나는 금붕어'가 되어 날아간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 구현되기에 이른다. 오징어 역시 단순히 야마다가 생업으로 출근하는 공장의 젓갈 재료로 그치지 않고 판타지의 재료로 제 몫을 톡톡히 소화한다. 이런 치밀한 연결고리들을 적절히 활용해 감독은 삶과 죽음의 간격을 무화시키고 오직 생의 의지만을 남긴다.
일본의 전통적 주거형태 중 하나인 '나가야'를 현대화한 것 같은 모양의 '무코리타' 공동주택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일본 시대극에서 정감 넘치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서민들의 풍경을 재현하려는 것 같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옛 입주자도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곳, 벽간소음 때문에 이웃이 뭘 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곳, 누가 맛난 것을 해먹으려면 들키지 않는 게 불가능한 그런 공간이다.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 역할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이 길게 늘어진 단칸방 집합단지는 영화 전반에 걸쳐 제 역할을 수행해낸다.
아파트 계급사회에 대안을 제시하는 영화의 매력
전작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에 이어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세계는 <강변의 무코리타>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횡단하듯 일상과 휴식처의 공존이 짙어지는 경향을 드러낸다. 본 작품이 촬영되던 코로나19 시절의 사회적 분위기 또한 일정 부분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한적한 도야마 바닷가에서 제작진은 촬영으로 분주한 가운데에도 전 세계를 뒤덮은 역병의 그림자 속에서 삶과 죽음을 작품 속 등장인물들처럼 사색하지 않았을까 싶다. 종교적 색채와 함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전과자, 자발적 고립, 노숙인까지-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재활을 따스하게 관찰하는 풍경은 그저 소재나 기교적으로만 다뤄지지 않았다.
현대 한국인의 과반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거주한다. 그야말로 21세기 한국인은 '아파트 민족'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 아파트 또한 과거의 것과 현재의 신축 구조는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복도식이라 불리는 아파트가 서민들의 대도시 주거로 기능했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의 풍경을 형성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아파트 단지이건 주택가 골목이건 이웃들 흉을 볼지언정 서로 경조사를 챙기거나 급한 사안은 협조하곤 했다. 심지어 과거엔 아파트 복도 이웃들끼리 공동육아를 도맡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대도시의 삶은 그런 정겨움과 피곤함 대신 마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혹은 낯선 타인에 대한 공포만 남은 듯하다. 가능한 이웃들과 얽히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다. 당장 매일 온라인 공간에 횡행하는 층간소음이나 주차 분쟁 같은 논란이 넘쳐날 정도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건 쓸데없는 간섭으로 치부되고, 심지어 신고대상이나 물리적 폭력을 촉발시킬 정도로 경계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타인이 된 작금 현실에서 누군지도 모를 이웃이 다가오면 불안하고 두렵기만 하다. 그렇게 우리는 예전에 비해 가족 개념도 약해진 데다 이웃사촌이란 용어도 낯설어져버렸다.
하지만 종종 네트워크 이론을 언급할 때 예시로 거론되곤 하는 고슴도치들의 동면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굴 안에서 최대한 서로 바싹 붙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달라붙으면 바늘에 서로 찔린다. 그래서 거리가 멀어지면 또 냉기를 견딜 수 없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비로소 최적의 간격이 형성된다. 그런 고슴도치들의 밀고 당기기 과정처럼 <강변의 무코리타>는 과거의 상처를 가진 이들을 천천히 소통과 이해의 경지로 이끌어 나아간다.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웃 간 단절과 가족의 해체, 고독사의 위협을 풀어나갈 단초를 모색하기 시작할 테다.
<작품정보> |
강변의 무코리타
川っぺりムコリッタ
Riverside Mukolitta
2021|일본|드라마
2023.08.23. 개봉|120분|12세 관람가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마츠야마 켄이치(야마다 역), 무로 츠요시(시마다 역), 미츠시마 히카리(미나미 역),
요시오카 히데타카(미조구치 역), 오가타 나오토(젓갈공장 사장 역),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