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을 다루는 MBC 사극 <연인>에서 청나라 군대의 진격 속도에 놀라는 선비들의 대화가 묘사됐다. 방안에 모여 전황을 이야기하는 선비들의 대화에서 그런 놀라움이 표출됐다. 지난 11일 방영된 <연인> 제3회의 7분경에 나온 장면이다.
 
선비들은 인조 임금이 안전한 강화도를 놔두고 도성 남쪽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청나라군에 포위된 이유를 의아해 하고 있었다. 이때 방문을 열고 들어온 젊은 선비가 "관에서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라며 "사흘 전 적군이 평양을 지나고 이틀 전 송도를 지났다 합니다"라고 보고했다.
 
표정이 긴장된 그는 "그러니 전하께서 강화도를 갈 시간이 없어 남한산성으로 드신 게죠"라고 말했다. 원로 선비인 유교연(오만석 분)은 "오랑캐가 아무리 빠르다고 하나 어찌 삼일 만에 한양에 입성한다 말이냐?"라며 "인심을 소란케 하려는 자들의 헛소문은 아니냐?"라는 말을 던졌다.
 
산과 물을 이용하는 방어
 
 MBC 사극 <연인> 한 장면.
MBC 사극 <연인> 한 장면.MBC
 
 MBC 사극 <연인> 한 장면.
MBC 사극 <연인> 한 장면.MBC
 
한민족의 강역이 한반도로 축소된 이후에, 유목민들의 침입을 방어하는 방식 중 하나는 '산'과 '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국경선에서 도성으로 연결되는 대로를 차단하고 유목민 군대를 산성으로 유인해 장기전을 펼치는 한편, 군주를 비롯한 지휘부는 물 위의 섬으로 들어가 전군을 움직이는 전술이다.
 
유목민에게 불리한 산과 물을 이용하는 이 같은 전술은 몽골군과의 전쟁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고려 무신정권은 군주를 데리고 강화도로 건너간 뒤, 전국의 산성들을 지휘하며 몽골군에 맞섰다. 몽골군은 산성에 숨어든 고려군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그들이 탄 말은 너른 평원에서는 힘껏 내달려도, 산성의 성벽 앞에서는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약 40년간 전개된 고려·몽골 전쟁은 고려가 신하국이 되는 조건으로 종결되기는 했지만, 군사적 대결 자체는 무승부로 끝났다. 중동은 물론이고 동유럽까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몽골 기병대는 고려의 산과 물 앞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 정부도 이 방식을 생각했다. 이대로 실행됐다면, 병자호란의 역사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청나라군이 강화도의 조선군 지휘부를 강 건너에서 바라보며 그냥 철수했다면, 병자호란은 치욕의 역사가 아닌 승리의 역사로 기억됐을 수도 있다.
 
강화도를 무시한 채 조선 방방곡곡을 일일이 점령하러 다니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에 조선의 동맹국인 명나라가 대열을 정비하고 청나라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청나라는 어떻게든 조선 군주의 항복을 빨리 받아내야 했다. 그랬기 때문에 인조가 강화도에서 전쟁을 지휘했다면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조 정권은 강화도 피신에 실패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청산하고 조명동맹을 강화한 인조 정권은 한양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강화도로 피신하는, 결코 어렵지 않은 그런 일에 실패했다. 전쟁 지휘부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지 못한 이 사태는 조선군의 전쟁 수행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인조가 강화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위의 드라마 장면에서 언급된 것처럼 청군의 진군 속도가 예상 외로 빨랐기 때문이다. 헛소문이 아니냐, 유언비어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청군이 움직였던 것이다.
 
병자호란은 음력으로 인조 14년 12월 9일, 양력으로는 1637년 1월 4일 발발했다. 일부 서적이나 드라마·영화에서 발발 일자가 1636년 12월 9일로 표기되는 것은 '인조 14년'만 양력으로 바꾸고 12월 9일은 바꾸지 않은 결과다.
 
인조 14년이라는 연도는 양력이 아니라 음력이다. 이를 양력으로 바꾸면 1636년 2월 2일부터 1637년 1월 25일까지다. 인조 14년의 대부분은 양력 1636년에 걸리지만, 1637년에 해당하는 25개의 날짜도 있다. 병자호란 발발일이 그 25개 중 하나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날은 전쟁 발발일인 1637년 1월 4일로부터 불과 닷새 뒤였다. 음력으로는 병자년 12월 14일의 일이다. 청군의 진격 속도가 그만큼 빨랐던 것이다.
 
인조 정권은 병자년 12월 14일 오전까지도 해도 '강화도에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에 인조가 강화도를 향해 떠나게 됐던 것이다.
 
그런데 인조는 엉뚱하게도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인조가 한양 남대문을 나선 시각에 청나라군이 서대문 근처 홍제원에까지 당도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당시의 남한산성 상황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산성일기>는 강화도를 향했던 대가(어가) 행렬이 남한산성에 가게 된 사연을 이렇게 들려준다.
 
"14일 오후에 대가가 어찌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남대문을 나서 강화도로 향하는데, 적장 마부대가 수백 기병을 거느리고 이미 홍제원에 다다랐다. 임금이 도로 들어오시어 남문에 옥좌를 놓고 앉으시니, 위아래 사람들이 마음이 급하여 허둥지둥하고 성중에 곡소리가 하늘에 사무쳤다. 이조판서 최명길이 자청하여 적장에게 나아가서 만나는 사이에, 훈련대장 신경진에게 모화관에 진을 치도록 하고, 대가는 광희문으로 나와서 남한산성에 들어가셨다."
 

최명길이 청나라군을 만나 시간을 끄는 사이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급히 피신했다. 갑작스레 한양 근처에 출현한 청나라 기병대로 인해 그런 혼란이 벌어졌던 것이다.

진격 속도가 빨랐던 청군
 
청군의 진격 속도가 빨랐던 것은 청군이 비싼 말들을 타고 왔기 때문이 아니다. 산과 물을 이용하는 조선군의 방어 전략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조선군은 산성 방어에만 신경을 쓰고 대로변 방어에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인조 정권이 조명동맹 강화만 외칠 뿐 실질적 안보는 소홀히 했던 결과다.
 
청군은 그런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산성 공략에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대로를 이용해 한양으로 진격하는 편을 선택했다. 대로가 막혀 있어야 산성에 가서 전투를 해볼 텐데, 대로 방어가 허술하니 굳이 산성으로 군대를 돌릴 필요성이 적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청나라가 군사력 증강의 결과로 우수한 대포를 보유하게 돼 전투 시간이 단축된 데에다가 대로변 방어의 허점까지 겹쳐 청군의 진격 속도가 빨라지게 됐던 것이다.
 
역사학자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는, 신채호가 공부할 당시만 해도 이 땅에 있었지만 지금은 찾기 어려운 <해상잡록> 같은 고서가 등장한다. 1910년부터 2년간 일본이 군경을 동원해 수거해간 20만 권 이상의 고서적 중에 그런 책들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해상잡록> 등을 이용해 살수대첩 이후의 고구려 조정에서 벌어진 일대 논란을 소개한다. 승리의 주역 중 하나인 을지문덕파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 수나라로 밀고 들어가자'고 주장하고, 또 다른 주역인 고건무파는 '이대로 상황을 종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을지문덕파는 수나라 정복을 자신했다. 이들은 이런 논리를 내세웠다.
 
"신라와 백제는 산천이 험해서 방어하기는 쉬워도 공격하기는 힘들며 인민들도 강고해서 좀처럼 굴복하지 않지만, 중국대륙은 이와 달리 평원과 광야가 많아 군대를 움직이기 좋고 인민들도 전쟁을 무서워해서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동요한다."
 
중국은 국토는 넓지만 적군의 이동이 빠르다는 점에서는 '좁은 땅'이었다. 한반도는 국토는 좁지만 적군의 이동이 더디다는 점에서는 '넓은 땅'이었다. 을지문덕이 수나라 정복을 자신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병자호란 때의 청나라군이 볼 때 조선 국토는 '좁은 땅'이었다. 청나라가 신형 무기를 들고온 데다가 조선군이 대로변 방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산천은 여전히 험했지만, 대로변 방어에 생긴 허점으로 인해 청군의 진격 속도가 예상 외로 빨라졌다. 인조 정권이 '넓은 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강화도 가려고 채비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발길을 돌리는 원인이 됐다.
연인 병자호란 남한산성 청나라 여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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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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