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기실 줄거리는 식상하게 느껴질 만큼 단순하다. 원자탄을 만든 천재 물리학자의 인간적 고뇌와 전쟁의 승리조차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영화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작품이기에 아인슈타인이나 존. F. 케네디와 같은 실존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오펜하이머의 고뇌는 엄청난 인명 살상을 저지른 가해자라는 죄의식에 기인한다. 트루먼 대통령 앞에서 '자기 손에서 피 냄새가 난다'며 수소폭탄 개발 요구를 거절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원자탄 투하 명령을 내린 미국 대통령을 학살자로 낙인찍는 고백이어서다.
하지만 영화에선 원폭으로 인한 피해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원자탄이 투하된 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폐허를 보여줄 법도 하건만, 배우들의 담담한 대사로 대신하고 있다. CG 등 영상 기술이 모자라서일 리 없고, 외려 의도적으로 회피한 듯하다.
이 영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국가는 누가 뭐래도 일본일 것 같다.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원폭 피해를 경험한 나라 아닌가. 1945년 8월 15일을 '패전일'로 부르지 못하고 '종전일'로 규정하는 그들에게 원폭은 굳이 들추고 싶지 않은 아픈 과거다.
듣자니까, 일본에서는 아직 개봉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황폐화한 모습을 묘사하지 않았다"거나 "과학자의 고뇌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둔 탓에 원폭의 위험을 환기하는 걸 간과했다"는 일본 내 언론의 평가가 이어졌다.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본의 그러한 반응이 새삼스럽진 않다. 미국의 시각에서 제작된 영화다 보니, 자칫 '패전'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데다 원폭을 서둘러 결정할 만큼 제국주의 시절의 패악이 극심하다고 여겨질 우려가 크다. 감독은 한사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관객들은 이구동성 '다큐멘터리보다 더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트루먼 정부의 장관이었던 스팀슨이 원자탄을 투하할 일본의 도시들을 선정하는 장면도 일본인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줄 듯하다. '아내와 신혼여행을 갔던 도시여서 교토는 제외한다'는 대사가 귀에 거슬릴 테다. 그는 1920년대 이후 다섯 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명실공히 '미국 제일주의자'다.
우리에게도 적이 부담스러운 대목이 있다. 물론, 상업 영화로서 배급사가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한 전략이었을 테지만, 개봉일이 하필 광복절이어서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곧,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미국의 원폭 덕분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는 점이다.
나아가 두 차례의 원폭이 식민지 조선을 위한 미국의 결단인 양 거짓 포장될 우려도 없지 않다. 실제로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면, 기성세대는 물론, 아이들조차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원폭을 들먹인다. 원폭이 없었다면 해방은 요원했을 거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도시 이름을 모르는 이도 없다. 두 도시가 지닌 다른 수많은 특징에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당장 원폭을 떠올린다. 36년 동안 우리에게 저지른 일제의 만행에 대한 미국의 일벌백계 응징이라고 여기며, 일부에선 통쾌하다는 느낌마저 숨기지 않는다.
미국은 그렇게 우리에게 은인의 나라가 됐다. 5년 뒤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영원한 우방'으로서 미국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더욱 굳건해졌다. 누구든 '아메리칸드림'을 꿈꿨고, 미국에 대한 비판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랬다간 '빨갱이'로 내몰려 치도곤당하기 일쑤였다.
미소 냉전이 지속되고 분단이 고착화하면서 미국의 위세는 날로 커져만 갔다. 우리에게 미국은 늘 '민주주의의 종주국' 그 이상이었다. 순식간에 수만 명을 살상한 원폭조차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한 합당하고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며, 우리가 앞서 미국을 두둔하기 바빴다.
그러나 그것은 '짝사랑'이었다. 영화에서도 누누이 강조되듯, 원폭은 첨예한 미소 갈등 속에 소련의 영향력을 억누르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었을 뿐, 우리의 해방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 분할 점령을 위해 38도 선을 긋자고 먼저 제안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분단될지언정 한반도를 소련의 영향권 내에 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우리나라 해방 전후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