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악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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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란 말이 있지 않나. 특히나 끔찍한 범죄를 보다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은희 작가)

지난 7월 29일 종영한 SBS 드라마 <악귀>는 악귀에 씌인 청년 구산영(김태리 분)과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민속학자 염해상(오정세 분)이 연이은 의문의 죽음들을 파헤치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 극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악귀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보이스피싱범, 사채업자 그리고 돈에 눈이 멀어 악귀를 만들어낸 자본가들이었다.  

김은희 작가는 <악귀>의 기획이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며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가는 범죄자들을 귀신에 빗대어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악귀>를 집필한 김은희 작가와 연출을 맡은 이정림 감독을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SBS <악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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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는 드라마 <싸인> <시그널> <킹덤> 등 장르물의 대가로 불리는 김은희 작가와 드라마 < VIP >를 통해 세심한 연출로 화제를 모았던 이정림 감독이 손을 잡은 작품으로 첫 회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마지막 12회는 11.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은희 작가는 "기획부터 '이런 아이템이 괜찮을까', '지상파에서 오컬트 드라마라니, 시청자들이 받아들일까' 고민한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부족한 부분까지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정림 감독 역시 "부족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작가님, 배우들 그리고 훌륭한 스태프들을 믿고 촬영에 임했다"며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극 중에서 사람의 손목에 멍을 만들며 스스로 자살하게 만드는 악귀를 없애려면, 그 악귀의 이름과 다섯 개의 물건을 봉인해야 한다. 그러나 구산영의 아버지인 구강모 교수(진선규 분)와 염해상의 어머니 등 여러 사람이 이를 실패하면서 악귀의 숨겨진 이름이 무엇인지, 악귀 봉인 방법에 오류가 있는 것인지 등을 추측하는 팬들이 많았다. 이정림 감독은 "시청자들이 추리하는 내용들도 흥미롭게 봤다. 지인들로부터 연락도 많이 받았다. '진짜 비밀로 할 테니 나한테만 몰래 말해줘'라는 문자만 여러 개 받았다"는 후문을 전하기도 했다.

"귀신보다는 사람 보이는 드라마 만들고 싶었다"
 
 SBS <악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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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는 악귀를 쫓는 오컬트 장르이지만 드라마에서 귀신은 거의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주인공 구산영에게 씌인 악귀 역시 산발한 머리의 그림자로만 보일 뿐이다. 김은희 작가는 이에 대해 "대본작업부터 기획의도에 최대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등장하는 귀신들도 각자의 사연을 보여주려고 고민을 했다. (염)해상이 보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핏자국, 걸어다니는 물에 젖은 발자국, 회전문을 떠나지 못하는 손자국들도 누군가를 찾고 있거나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연을 생각하고 썼다. 그래서 (귀신의)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인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귀신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귀신도 한때는 사람이었던 존재니까 그 귀신들에게도 나름의 이야기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정림 감독은 납량특집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전설의 고향> 포스터에서 악귀 그림자에 대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스스로 '공포'나 '오컬트'라는 장르에 강점이 있는 연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4,5부에 등장하는 박씨 할머니의 딸 정희의 경우도 흉측한 모습은 최대한 보여주지 않고 할머니의 시선으로 보이는 곱디 고운 아름다운 시절의 딸로 보여주고 싶었다. 저렇게 예뻤던 딸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면 엄마로서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좀 더 치중했던 것 같다.

악귀를 표현하는 그림자도 섬뜩하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악귀 그림자의 모티브는 <전설의 고향> 포스터였다. 한을 품고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향이도 저런 모습이 아닐까 했다. 그림자엔 표정이 없지만 향이의 한이 점점 커져 산영과 시청자를 압도하길 바랐다. 옥비녀와 향이의 백골사체가 발견되는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눅눅하고 축축한, 어둡기만한 지하 창고가 아니라 향이의 한이 담긴 공간처럼 보였으면 했다. 마치 누군가 오길 간절하게 기다렸던 것처럼 한송이 피어있는 꽃이나 이끼처럼 생명력이 있는 뭔가가 반드시 있었으면 했고 미술감독님이 완벽하게 구현해 주셨다." (이정림 감독)


한편 <악귀>는 돈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염승옥(강길우 분)과 나병희(김해숙 분)가 큰 돈을 벌고 싶은 욕심에 어린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하면서 악귀를 만들었고, 악귀에 씌인 사람들은 모두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악귀를 없애려 노력하는 구산영 역시 할머니의 죽음으로 많은 돈을 얻게 되었을 때 "사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김은희 작가는 이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의 솔직한 심경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뭔가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 돈을 받으니까 알겠더라고요. 내가 원한게 이런거라는 걸'이라는 구산영의 대사는 솔직한 제 심경이기도 하다. 돈이란 건 계속 누군가를 쥐고 흔드는 욕망인 것 같다. 만약에 나에게 악귀가 씌였다면 산영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계속 흔들리게 된다. 나보다 용감했던 염해상과 구산영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대본의 결말을 써 내려갔다." (김은희 작가)
 
 SBS <악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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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악귀를 없애고 일상으로 돌아온 구산영은 안동의 전통 문화인 선유줄불놀이를 바라보다가 점차 앞이 어두워진다. 이를 두고 구산영이 악귀와 함께 결국 시력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김은희 작가는 "구산영은 스물 다섯, 아직은 인생의 시작점에 있는 청춘이다. 극 중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아무리 옳은 선택을 했다고 해도 희망만이 가득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현실을 흑암시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정림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들이 질문을 많이 던진 덕분에 해답을 찾았던 적이 많았다며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김태리, 오정세, 홍경과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눴다. 셋 다 질문이 엄청났다. 촬영 막바지쯤 배우들에게 고백했는데 주연들이 꿈에서까지 나타나 질문을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거기서 또 다른 생각들이 파생되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막막했던 순간들이 해결되기도 했다. 김태리는 열정적으로 현장을 이끌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내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숲 전체를 보고 있는 배우라 함께 작업하며 많이 의지하고 배웠다. 오정세는 고요하지만 단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다. 홍경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하고 진중하며, 태도만으로도 본받을 점이 많다. 극 중 서문춘 형사가 죽은 뒤 시청자들이 더 슬퍼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 홍경이라고 생각한다. 

김원해는 현장에서 등불 같은 존재로 후배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 김해숙은 화면 속에선 정말 무서워 보이지만 컷, 하면 호호 하고 웃는 소녀 같은 배우로 스태프들이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배우였다. 진선규는 첫 만남부터 이미 알고 있던 옆집 형님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부드럽고 우아한 말투로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사람이다. 제 나이보다 12살이나 많은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엄마처럼 늘 보듬어 주시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해해 주신 박지영 선배님께도 감사드린다." (이정림 감독)
김태리 악귀 김은희 이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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