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 굵은 일본 조연배우에 대한 기억
 
타나카 민이라는 일본 중견배우를 처음 접했던 계기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를 통해서였다. 두 주인공이 만나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데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히미코의 집'을 세운 주인 '히미코'가 바로 타나카 민의 배역이었다. 그의 등장 장면은 지극히 짧지만 영화 내내 남녀 주인공 다음가는 포스를 뿜어냈다는 데에 이견은 적을 테다. 주인공 '사오리'(시바사키 코우)에겐 성정체성을 깨달은 뒤 어린 자신과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을 버리고 커밍아웃한 아빠로, 사오리가 히미코의 집을 맡아 정착하기를 바라는 젊은 게이 청년 '하루히코'(오다기리 조)에겐 한참 나이가 많은 연상의 동성연인이었으니 히미코의 존재감은 실로 영화 전체를 장악하다시피 했었다. 대개 젊은 꽃 미남 혹은 곰처럼 푸근한 중년을 떠올리게 마련인 게이 정체성 캐릭터 중에서 타나카 민이 구현한 히미코 캐릭터는 이채로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이후 그의 스크린 데뷔작이자 첫 출연작으로 일본 아카데미시상식 남우조연상을 수상케 했던 야마다 요지 감독의 <황혼의 사무라이>에서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만남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목소리 연기이긴 했지만 다카라쵸의 두 악동 '쿠로'와 '시로'에 다음 순번을 예약할 정도로 깊은 각인을 남긴 동네 야쿠자 '네즈미' 역을 소화한 애니메이션 <철콘 근크리트>에서도 돋보였다. 국내 여러 영화제에서 접하고 탄성을 질렀던 츠다 테츠이치로의 35mm 필름으로 구현한 환경영화 <이야 모노가타리>에선 신비한 능력을 가진 채 산에 버려진 주인공 '하루나'의 양아버지이자 그 자신 역시 마치 산의 정령과도 같은 노인 역할을 맡았다.
 
환갑이 다 되어 늦깎이로 연기 데뷔한 이 신인배우의 활약은 계속 이어졌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종이달> 등의 작품으로 일본 인디영화의 계보를 이어가는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양의 나무>에선 한적한 시골마을에 가석방되어 온 살인범 6인방의 일원인 '오노 타츠미'를 맡아 갱생여부를 의심하는 주민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극중에선 전혀 웃지 않고 과묵하게 주어진 일에만 정진하지만 뭔가 엇박자의 상황 연발로 관객을 웃게 만들곤 했다.

장르영화의 거장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일본의 인기만화를 영화화한 <불멸의 검(무한의 주인)>에선 오직 임무에만 충실한 고수 '하바키 카기무라'를 맡아 주인공들을 궁지로 내모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렇듯 출연한 작품에서 주로 선 굵은 조역으로 관객에게 인상을 새기는 배우다. 한국영화 <사바하>에도 출연해 티베트 불교 고승을 맡았고, 최근엔 빔 벤더스 감독의 오랜만의 극영화 재기작품으로 평가받는 <퍼펙트 데이즈>에 등장했다. 소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는 1945년생 고참 배우이지만 배우에 대해 사실 잘 알지는 못했다. 늦깎이 연기 데뷔가 신기했던 정도다.
 
세계를 누비는 댄서
 
 영화 <이름 없는 춤> 스틸 이미지.
영화 <이름 없는 춤> 스틸 이미지.(주)디오시네마
 
런데 알고 보니 그의 본업은 댄서이자 무용가라 했다. 모던 발레를 전공했고 전 세계 투어를 돌 정도의 명망을 가졌다는데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다. 그와 인연이 깊은 이누도 잇신 감독이 타나카 민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단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는 2017-2019년 기간 주인공이 전 세계를 순회하며 벌이는 '로커스 포커스(장소의 춤)' 공연과 그의 생애 및 일상을 기록한 영상, 그리고 유년시절을 묘사한 애니메이션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주인공의 72-74살, 2년의 시간 동안 진행된 나이를 무색하게 여길 수밖에 없을 정도인 5개국 48개소 90회 공연의 정수만 모은 실황에다, 그의 춤에 대한 철학을 소개하는 경력 해설과 일상,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소년이 춤에 매혹되는 계기의 조합이다.
 
영화의 시작은 포르투갈의 해안도시 산타크루스다. 여기에서 타나카 민은 '시작의 춤'을 선보이려 한다. 영화 속에서 계속 공연되는 일련의 '장소의 춤' 서막에 해당된다. 도쿄 이케부쿠로의 소극장 '플랜B'에서 1980년대부터 개인 공연 및 후진양성과 프로듀스에도 열심인 그의 일상이 묘사되고, 다음에는 히로시마의 누나쿠나 신사 '노' 공연장에서 드럼이나 기타만을 배경 반주로 삼아 일본 전통춤과 현대무용이 결합된 것 같은 퍼포먼스를 펼친다. 기인의 풍모를 한 타나카 민이 신사로 오르는 계단에서 비틀비틀 온몸으로 표현하는 광경을 숨죽인 채 사방을 둘러싼 인파가 주시한다.
 
타나카 민은 공연이나 촬영이 없을 땐 무엇을 할까? 궁금해 할 이들에게 마침 그의 일상이 소개된다. 그는 야마나시 현 키요쿠라 마을에서 자신이 '도화촌'이라 이름 붙인 오두막에 기거하며 농사일에 매진한다. 물론 생계를 위한 농사는 아니다. 그는 '춤을 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농사를 택했다고 한다. 수확한 채소와 작물을 이웃들과 나누고, 시골의 널찍한 공간을 활용해 소품 창고와 서고도 갖췄다. 인간 가족은 보이지 않지만 1985년, 그의 나이 40에 춤출 힘을 키우고자 시작한 농촌 생활의 곁에는 20살 된 반려묘 '하나'를 비롯해 2살 '타나카 아오', 3살 '타나카 후지오' 3살 '타나카 모모에', 4살 '타나카 치비치비' 고양이 4남매와 5살 먹은 양 '타나카 하루' 같은 식구들이 가득하다.
 
그의 공연은 계속 이어진다. 12년 만에 도쿄에서 극장공연 '형태의 모험'에 도전하고, 서점에서 진행되는 소규모 낭독극과 유서 깊은 사원에서 설치예술과 연계된 실험극에도 가담한다. 연습과 공연의 연속 가운데 애니메이션과 내레이션으로 과거 회상이 넘나들어온다. 그는 자신의 청소년기를 '나의 어린이'라 지칭한다. 춤을 추게 된 시작과 원초적 춤의 정신을 익혔던 홀로 산행의 기억, 남이 스쳐 지나치던 이웃들에 대한 관찰과 기억이 서술된다. 벌목작업 때문에 그의 마음의 고향 산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느꼈던 장벽과 이를 넘고자 하는 분노의 감정, 원만하지 못했던 경찰 아버지와의 추억, 가난했던 과거 생활 회상 가운데에는 이웃의 조선인 가족이나 좀도둑 가족에 대한 회고가 특히 진하게 남는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모던 발레에 정진했지만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게 마치 거울 속 자신에게 갇히는 것처럼 답답했다고 회상한다. 그런 가운데 자유로운 육체의 반란을 추구하는 무용가 히지카타 타츠미의 '부토 댄스'에 매료되고 이후 자신만의 춤을 연마한다. 도쿄 매립지를 배경으로 환경파괴와 인간문명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 사진가와 공연한 나체 퍼포먼스는 일본에서 그를 체포되게 만들었지만 대륙 반대편 프랑스 예술제에서 화제가 되면서 오늘날 그의 예술가로서의 기반이 되어준다. 1978년 파리 공연에는 배자르나 수전 손택 같은 당대 유럽 문화예술계 저명인사들이 잇달아 찾으며 세상이 자신의 춤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좌절했던 타나카 민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가장 시련에 처한 시절에 그에게 손길을 내민 프랑스 예술계에 대한 애착이 진하게 묻어나는 대목이 연속된다. 프랑스 푸아티에 아트비엔날레에서 '장소의 춤'을 추고 관객과 대담을 나눌 때 그의 표정은 행복하고 긍지가 넘친다. 그의 춤을 높이 평가했던 프랑스 작가 로제 카유아의 무덤에 참배하며 그와의 일화를 전할 땐 뭉클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는 자신을 유일한 관객으로 퍼포먼스를 펼친 타나카 민에게 '이름 붙일 수 없는 당신의 그 춤을 멈추지 마시오.'라는 감동적인 평을 남겼으니 말이다.
 
포르투갈과 일본, 프랑스 등 세계를 누비던 그의 영화 속 '마지막 춤'은 후쿠시마로 향한다. 후쿠시마 현 우케도 마을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이전에는 600여 호가 살던 큰 마을이지만 이제 그 마을엔 아무도 살지 않는다. 하지만 타나카 민은 마을에서 새로 큼직한 집을 지은 거미를 관객으로 대자연의 회복을 희구하는 춤사위를 한판 펼친 뒤 이번에는 타키네 마을의 마치 그 한 그루로 원시림의 태고를 간직한 것만 같은 벤텐 벚나무를 위로하는 춤을 이어간다. 그렇게 점점 노장 댄서의 윤곽은 자연의 풍경과 섞여 들어간다.
 
배우로서의 매력을 형성케 한 노장 댄서 인생의 자국
 
 영화 <이름 없는 춤> 스틸 이미지.
영화 <이름 없는 춤> 스틸 이미지.(주)디오시네마
 
아쉽게도 연기자의 길에 한발 걸치게 된 최초에 대한 인증 외엔 배우로서 주인공의 경력에 대한 소개는 생략되어 있다. 그 대신 타나카 민의 댄서로서의 경력에 오롯이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개성 넘치는 중견배우의 영화열정 연대기를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서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공연예술가의 생애와 활동상을 다이제스트로 보는 계기로 활용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충실한 압축비율을 자랑하는 작업일 테다. 1945년생 노익장 댄서의 지난한 삶과 장대한 활동경력을 그저 전기 형태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확고하게 작가적 시각을 투영해 해석하기에 예술가의 전기영화 단품으로 하등 손색이 없는 구성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근래 들어 더 자주 접하게 된 콘텐츠라 할, 극장이나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는 각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 전기 성격의 기록영화 중에서도 본 작품은 모범적인 작례로 손에 꼽을 만하다. 그저 개성파 연기자와 독립예술영화 애호가들에게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감독의 조합이라는 화제성에 그치지 않는 완성도를 품었다는 이야기다. 그저 연대기적 나열에 그친다거나, 성공한 인생의 자화자찬 홍보영상 수준에 그쳐 실망감을 안기는 콘텐츠가 적지 않은데, 그런 속류 작업들에 지친 이들이라면 눈에 힘주고 본 작품에 도전해볼 만하다.
 
일차적으로는, 특정인물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가 나오려면 그 중심축이 되는 인물의 개성과 매력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타나카 민의 댄서로서의 경력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가 소화했던 영화 배역들은 하나같이 묘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고집 세고 사연 가득한 인상,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과 마치 그가 거쳐 온 삶의 무게만큼 문신처럼 파여진 주름이 형성하는 특유의 표정은 선악을 넘어서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 얼굴이 등장하기만 하면 호기심을 잔뜩 풍기며 해당하는 배역의 역할에 대해 관객을 긴장시키는 몰입감이 진하게 풍겨오곤 했다. 이 전기영화를 통해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파악하니 그 원천에 대해 비로소 터득하게 되었다. 마치 나이테처럼 형성된 그의 얼굴과 캐릭터가 어떤 원천과 통과의례를 거쳤는가에 대해 더 잘 깨달을 수 있었다.
 
서서히 예열되는 '장소의 춤'의 공감각적 매력 속으로
 
 영화 <이름 없는 춤> 스틸 이미지.
영화 <이름 없는 춤> 스틸 이미지.(주)디오시네마
 
이차적으로는, 노장 댄서의 공연실황을 주요 정거장으로 삼아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기에 그가 보여주는 춤에 관객의 눈이 집중되어야 한다. 처음엔 이 부분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의 춤은 스트릿 댄스의 도회적 현란함과 속도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클래식한 순수무용의 압도감도 결여되어 있었다. 쉽게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스타일과는 동떨어져 있다. 낯설기 짝이 없으니 몰입하기가 수월할 리 없다. 게다가 초반 도입부에서는 그의 전반적인 윤곽을 크로키 소묘하듯 담아내야 했기에 춤의 퍼포먼스에 온전히 몰입하기엔 애로가 많았다.
 
이런 취약성은 타나카 민의 춤이 순수무용의 진입장벽처럼 고답적이지는 않지만 독창적 철학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연을 돋보이고 집중하게 할 요소가 지극히 절제된 상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의 춤은 '장소의 춤'이라는 명명법처럼 안정된 공연장이나 춤사위를 뒷받침하는 무대 및 연주 등을 거의 배제한 채로 즉흥적 형식으로 행해진다. 스트릿 댄스와 형태는 다르지만 특정한 시공간에 조응해 'Free Style'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지점이 있다. 얼핏 무정형으로 보일 만큼 때와 장소에 따라 상이한 형태를 취하기에 처음엔 혼란스럽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의 춤은 그가 공간을 해석할 수만 있다면 어디에서건 공연 가능한 가변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저 특정 장소에 가서 그곳의 시공간을 인식하고 즉석에서 해석해 즉흥 안무를 펼친다. 음악에 맞추거나 동료 댄서의 군무 지원은 일절 받지 않는다(관객이 즉석에서 맞장구를 춰 춤사위를 펼치는 것 외에는 거의 대부분 단독 공연의 형태를 띤다고 한다). 그는 고도의 생체연산 활동을 수행하듯 자신이 속한 시공간을 파악하고 그의 여백을 채우며 소통하는 형태로 즉흥 창작에 의지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퍼포먼스는 공연예술 형태의 극한을 추구하듯 (이번 영화를 위해 기록하는 팀이 따라붙지 않는 한) 대부분 그 찰나에만 온전히 확인 가능한 성질을 취한다.
 
타나카 민의 춤은 댄서가 진행하고 관객이 구경하는 게 아니다. 인류의 언어가 온전히 정립되기 이전 시원의 소통수단이었을 춤의 형태를 재현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정교한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 통상적인 의사소통수단이 취약한 상태에서 타자와 교류하기 위해 '말'의 기능을 춤으로 구현하던 태고에 그 근본이 있다. 그런 배경 덕분에 그의 춤은 답가로서의 춤을 관객의 반응으로 기대한다. 즉 춤사위는 그와 (인간과 비인간을 불문하고) 상대를 동시에 호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춤의 무대이자 공간은 양자의 '사이'에 존재하는 개념이 된다. 처음엔 저게 대체 뭐하는 걸까 하며 마임 보듯 응시하게 되지만 점점 그의 퍼포먼스 개념이 막연하게나마 와 닿기 시작할 테다. 그리고 그 깨달음 이후로는 빨려들 듯 '장소의 춤'에 매료되고 말 것이다.
 
거장 × 거장 × 거장의 한판 공연을 보는 듯 조합의 결실
 
 영화 <이름 없는 춤> 스틸 이미지.
영화 <이름 없는 춤> 스틸 이미지.(주)디오시네마
 
<이름 없는 춤>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이나 <메종 드 히미코> (2005), <구구는 고양이다> (2008), <무사 노보우: 최후의 결전> (2014) 등으로 국내에도 인지도가 높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1960년생으로 이제 노장 반열에 접어든 고참 감독이 극영화 위주 작업에서 다큐멘터리에 도전하게 할 만큼 타나카 민의 인생역정은 매혹적인 피사체임을 영화를 보고 나면 동의하게 될 법하다. 자신의 즉흥공연 현장을 2년간 귀찮을 법한 손님들을 동행해 다녀야 했던 주인공 타나카 민의 인생 황혼기를 맞이하는 결의도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여기에 인물의 출발점이 된 청소년기를 재연하는데 또 한 명의 거장이 합류해 화룡점정을 완성한다.
 
주인공이 유-청소년 시절 댄서의 꿈을 형성하는 과정은 일본 아트 애니메이션의 거장 야마무라 코지의 손끝을 거쳐 온전히 구현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지만 미국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수상 타이틀은 흔한 게 아니다. <마운틴헤드>, <카프카> 등의 예술적인 단편 애니메이션과 그림책 작업을 병행하는 세계적 거장의 손끝을 거쳐 매끈한 3D 이미지와는 거리가 까마득히 먼, 전통 수묵화의 필치를 닮은 수작업으로 완성된 2D 애니메이션은 주인공의 굴곡 가득한 삶의 궤적을 표현주의적으로 온전히 각인시키는 괴력을 선보인다. 실사나 재연이었다면 주인공이 누누이 강조하는 바대로 '나의 어린이'를 독자적 캐릭터로 소화하기란 쉽지 않았을 법하다.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일본 아트 애니메이션의 숨결을 느껴볼 기회라는 점에서도 눈요기를 넘어 효용이 탁월하다. 더군다나 주인공의 내면 묘사에는 더없이 효과적인 기용이다.
 
타나카 민은 특별한 개성의 소유자였을 뿐더러, 2차 세계대전 말 일본제국의 패망을 결정지은 동경대공습이 절정에 달한 1945년 3월 10일에 태어난 그의 운명은 출발점부터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은 그런 기구한 사연 때문인지 또래들과는 '다르게 보기'가 가능했다. 그 특이한 시선으로 주변 세상을 응시함으로써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출 수 있었다. 끊임없는 질문과 장벽을 넘고자 하는 도전은 1978년 프랑스에서 개화하고, 예술적 성취를 평가받으며 다채로운 시도를 거듭해나간다.

이런 소년기의 맹아와 성인이 된 후의 연결 링크는 처음에는 유년기 부분은 애니메이션, 성년기는 실사 사진과 영상 등의 자료로 구분해 해설된다. 종종 실제 타나카 민의 내레이션이 가미되어 할아버지의 이야기보따리처럼 구수하게 귀에 감겨들기도 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과 실제 현실 이미지로 뚜렷하게 나뉘던 이미지는 결정적 전환점에서 서로 혼합되고 교차되는 찰나를 맞는다. 마치 맹아를 형성하던 첫 단초와 결정적 행동으로 귀결되는 순간이 대화하듯 말이다. 영화 속에서 세 차례 정도 발견되는 이미지의 혼성 구현을 발견하면 주시해야 한다. 그 찰나가 시간을 초월해 주인공의 삶과 예술의 정점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유독 일반인이 도전하기 힘든 전문분야에서 숙련을 넘어 '기예'의 영역에 도달한 이들을 대우해주는 문화가 있다. 가부키나 노, 전통공예 대가들은 물론, 몇 대를 이어져 내려온 음식점 장인들의 처우가 포함된다(그 대신 '장인'들에겐 마치 무림고수 같은 혹사와 특출한 수준을 요구하긴 하지만). 오랜 인연을 주인공과 맺어온 이누도 잇신 감독이 자신에겐 낯선 다큐멘터리 작업에 도전하면서까지 이 노장 댄서의 정수를 영상에 담아내려한 것 또한 그런 대가에 대한 예우가 바탕이 되었을 테다. 그리고 화면에 구현된 타나카 민의 지난한 삶과 예술 도전기는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고 관객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경탄하게 될 것이다.
 
<작품정보>
 
이름 없는 춤
The Unnameable Dance, 名付けようのない踊り
2021|일본|다큐멘터리
2023.08.09. 개봉|115분|12세 관람가
감독 이누도 잇신
출연 타나카 민
애니메이션 야마무라 코지
수입 (주)디오시네마, 게이트식스
배급 (주)디오시네마
공동배급 게이트식스
 
2021 26회 부산국제영화제
2021 34회 도쿄국제영화제
이름 없는 춤 이누도 잇신 감독 타나카 민 야마무라 코지 히지카타 타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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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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