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름 없는 춤>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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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 알고 보니 그의 본업은 댄서이자 무용가라 했다. 모던 발레를 전공했고 전 세계 투어를 돌 정도의 명망을 가졌다는데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다. 그와 인연이 깊은 이누도 잇신 감독이 타나카 민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단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는 2017-2019년 기간 주인공이 전 세계를 순회하며 벌이는 '로커스 포커스(장소의 춤)' 공연과 그의 생애 및 일상을 기록한 영상, 그리고 유년시절을 묘사한 애니메이션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주인공의 72-74살, 2년의 시간 동안 진행된 나이를 무색하게 여길 수밖에 없을 정도인 5개국 48개소 90회 공연의 정수만 모은 실황에다, 그의 춤에 대한 철학을 소개하는 경력 해설과 일상,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소년이 춤에 매혹되는 계기의 조합이다.
영화의 시작은 포르투갈의 해안도시 산타크루스다. 여기에서 타나카 민은 '시작의 춤'을 선보이려 한다. 영화 속에서 계속 공연되는 일련의 '장소의 춤' 서막에 해당된다. 도쿄 이케부쿠로의 소극장 '플랜B'에서 1980년대부터 개인 공연 및 후진양성과 프로듀스에도 열심인 그의 일상이 묘사되고, 다음에는 히로시마의 누나쿠나 신사 '노' 공연장에서 드럼이나 기타만을 배경 반주로 삼아 일본 전통춤과 현대무용이 결합된 것 같은 퍼포먼스를 펼친다. 기인의 풍모를 한 타나카 민이 신사로 오르는 계단에서 비틀비틀 온몸으로 표현하는 광경을 숨죽인 채 사방을 둘러싼 인파가 주시한다.
타나카 민은 공연이나 촬영이 없을 땐 무엇을 할까? 궁금해 할 이들에게 마침 그의 일상이 소개된다. 그는 야마나시 현 키요쿠라 마을에서 자신이 '도화촌'이라 이름 붙인 오두막에 기거하며 농사일에 매진한다. 물론 생계를 위한 농사는 아니다. 그는 '춤을 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농사를 택했다고 한다. 수확한 채소와 작물을 이웃들과 나누고, 시골의 널찍한 공간을 활용해 소품 창고와 서고도 갖췄다. 인간 가족은 보이지 않지만 1985년, 그의 나이 40에 춤출 힘을 키우고자 시작한 농촌 생활의 곁에는 20살 된 반려묘 '하나'를 비롯해 2살 '타나카 아오', 3살 '타나카 후지오' 3살 '타나카 모모에', 4살 '타나카 치비치비' 고양이 4남매와 5살 먹은 양 '타나카 하루' 같은 식구들이 가득하다.
그의 공연은 계속 이어진다. 12년 만에 도쿄에서 극장공연 '형태의 모험'에 도전하고, 서점에서 진행되는 소규모 낭독극과 유서 깊은 사원에서 설치예술과 연계된 실험극에도 가담한다. 연습과 공연의 연속 가운데 애니메이션과 내레이션으로 과거 회상이 넘나들어온다. 그는 자신의 청소년기를 '나의 어린이'라 지칭한다. 춤을 추게 된 시작과 원초적 춤의 정신을 익혔던 홀로 산행의 기억, 남이 스쳐 지나치던 이웃들에 대한 관찰과 기억이 서술된다. 벌목작업 때문에 그의 마음의 고향 산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느꼈던 장벽과 이를 넘고자 하는 분노의 감정, 원만하지 못했던 경찰 아버지와의 추억, 가난했던 과거 생활 회상 가운데에는 이웃의 조선인 가족이나 좀도둑 가족에 대한 회고가 특히 진하게 남는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모던 발레에 정진했지만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게 마치 거울 속 자신에게 갇히는 것처럼 답답했다고 회상한다. 그런 가운데 자유로운 육체의 반란을 추구하는 무용가 히지카타 타츠미의 '부토 댄스'에 매료되고 이후 자신만의 춤을 연마한다. 도쿄 매립지를 배경으로 환경파괴와 인간문명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 사진가와 공연한 나체 퍼포먼스는 일본에서 그를 체포되게 만들었지만 대륙 반대편 프랑스 예술제에서 화제가 되면서 오늘날 그의 예술가로서의 기반이 되어준다. 1978년 파리 공연에는 배자르나 수전 손택 같은 당대 유럽 문화예술계 저명인사들이 잇달아 찾으며 세상이 자신의 춤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좌절했던 타나카 민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가장 시련에 처한 시절에 그에게 손길을 내민 프랑스 예술계에 대한 애착이 진하게 묻어나는 대목이 연속된다. 프랑스 푸아티에 아트비엔날레에서 '장소의 춤'을 추고 관객과 대담을 나눌 때 그의 표정은 행복하고 긍지가 넘친다. 그의 춤을 높이 평가했던 프랑스 작가 로제 카유아의 무덤에 참배하며 그와의 일화를 전할 땐 뭉클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는 자신을 유일한 관객으로 퍼포먼스를 펼친 타나카 민에게 '이름 붙일 수 없는 당신의 그 춤을 멈추지 마시오.'라는 감동적인 평을 남겼으니 말이다.
포르투갈과 일본, 프랑스 등 세계를 누비던 그의 영화 속 '마지막 춤'은 후쿠시마로 향한다. 후쿠시마 현 우케도 마을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이전에는 600여 호가 살던 큰 마을이지만 이제 그 마을엔 아무도 살지 않는다. 하지만 타나카 민은 마을에서 새로 큼직한 집을 지은 거미를 관객으로 대자연의 회복을 희구하는 춤사위를 한판 펼친 뒤 이번에는 타키네 마을의 마치 그 한 그루로 원시림의 태고를 간직한 것만 같은 벤텐 벚나무를 위로하는 춤을 이어간다. 그렇게 점점 노장 댄서의 윤곽은 자연의 풍경과 섞여 들어간다.
배우로서의 매력을 형성케 한 노장 댄서 인생의 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