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아파트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시작해 파리 등 유럽 부르주아 주거지에서 근대로 오며 노동자의 주거 양식으로 진화했다. 현대로 넘어와 한국에서 정점을 이루게 되었는데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밀집되어 살 수 있는 아파트는 매우 유용했다.
70년대 여의도의 시범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강남 아파트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70- 80년대 투기 대상이 되었다. 현재 아파트는 대한민국에서 집 이상의 의미를 투영한 꿈이 되었다.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고급 아파트에 사는 자와 못 사는 자 같은 새로운 계급, 부의 척도다.
황궁 아파트 주민이 아니면 빌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를 무대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을 다룬다. 한정된 공간이라 연극적인 느낌이 강하고,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며, 피부로 체감되는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여름 성수기에 개봉하는 텐트폴 영화로는 무겁다. 밝고 경쾌하며 때로는 신파와 감동의 도가니를 만드는, 웃고 즐길만한 엔터테인먼트 요소의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어느 날,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세상.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마치 융기한 듯 보이는 103동은 주민과 외부인이 뒤엉키며 전쟁터가 되어간다. 아파트 입구에 암시장이 열렸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 연료 등이 물물교환 되었고 돈이나 금, 명품은 무용지물이었다.
활기도 잠시. 추위와 굶주림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지쳐간다. 구조대를 기다리지만 헛된 희망일 뿐 불신만 커진다. 그러던 중 화재로 타고 있는 어느 집을 향해 자기 일처럼 뛰어들었던 영탁(이병헌)과 이를 도왔던 민성(박서준)의 활약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 스타가 탄생한다. 이후 부녀회장 금애(김선영)의 주도 하에 주민 회의가 소집된다. 희생정신 투철하고 믿음직한 영탁을 주민대표로 선출해 대책을 마련하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생존자들이 몰려들며 트러블이 생긴다. 위협을 느낀 주민들은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기에 이른다. 우리 아파트 주민이 아니면 빌런이라 선언한다. 황궁 아파트 주민은 자가, 전세할 것 없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때보다 똘똘 뭉쳐 수칙을 정하고 살기 좋은 곳을 만들어 갔다. 힘겨웠던 대대적인 정비 사업 이후 황궁 아파트는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가 되어 갔다. 그 선두에 있는 사람은 영탁이다. 처음에는 구석에서 귤이나 까먹고 있던 어리숙한 사람이 리더로서 카리스마를 발휘하게 된다. 점차 권력 맛을 보면서 더욱 대담하고 독단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할 때쯤 생존자 혜원(박지후)이 황궁으로 돌아오며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다. 겨우 평화를 찾았던 황궁 아파트에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의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