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5월 서울 영등포구 KBS별관공개홀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900회 특집' 기자간담회에서 출연진이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건 방송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후배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조그만 무대가 생겼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유재석, 2020년 MBC 연예대상 수상소감 중)
'공개 코미디 부활'을 염원했던 유재석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졌다. 2020년 6월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종영했던 <개그콘서트>가 약 3년 만에 돌아올 예정이다. 지난 4일, KBS 측은 "전 국민의 '웃을 일'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했다"며 <개그콘서트2>(가제)의 론칭을 알렸다. 예정대로 방영된다면 11월 5일부터 매주 일요일 밤 10시 25분에 방영될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코미디의 부활은 당연히 반가운 소식이다. 설 자리를 잃었던 수많은 코미디언들을 물론이고, 공개 코미디 무대를 사랑했던 시청자 입장에서도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다만, 늦은 시간대(밤 10시 25분)에 편성됐다는 점에서 고질적인 시청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활한 <개그콘서트2>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우리의 젊음이었다." (박나래)
반면, 마지막으로 남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tvN <코미디빅리그>(아래 '코빅')는 잠시 사라진다. 2011년 9월 첫 방송을 시작으로 무려 12년 동안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줬던 <코빅>의 퇴장에 초창기부터 함께 했던 코미디언들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상준은 자신이 SNS에 <코빅>의 초창기 포스터 등을 게재하며 "나의 30대"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이은지, 박나래 등도 서운한 마음을 더했다.
한때 최고 시청률 4.03%(닐슨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까지 기록했던 <코빅>은 계속된 시청률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4월, 일요일에서 토요일로 편성을 변경했고, 이후 젊은 타깃 시청층을 확보한다는 계획으로 수요일로 다시 한 번 편성을 변경했다. 이처럼 두 번에 걸친 변화에도 1%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8월 2일 방송(509회)은 0.993%에 그쳤다.
다행스러운 소식은 '폐지'가 아니라 '휴지기'라는 점이다. 4일, tvN 측은 9월 13일 방송 이후 "코미디에 대한 새로운 포맷과 소재 개발을 위해 휴지기를 가질 예정"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약 2달 동안, 그러니까 <코빅>이 휴식에 들어가는 9월부터 <개그콘서트2>가 돌아오는 11월까지 대한민국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없는 시기를 보내게 됐다.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성쇠는 '유튜브 전성시대'와 맞닿아 있다. 현재 코미디언의 절반 이상이 유튜브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동 현상이 뚜렷하다. 김원훈, 조진세, 엄지윤이 출연하고 있는 '숏박스'(구독자 수 263만 명)는 2022년 인기 크리에이터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민수, 이용주, 정재형이 활약 중인 '피식대학'(219만 명)도 빼놓을 없다.
정진하, 박진호의 '퀵서비스'(57만 7000명), 박소라, 황정혜 등의 '쉬케치'(33만 1000명), 김두현, 최지명, 이유미의 '싱글벙글'(11만 명) 등은 수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뿐인가. 구독자 105만 명을 확보한 김대희의 '꼰대희'를 비롯해서 홍윤화, 김민기의 '꽁냥꽁낭'(47만 5000명), 김민경의 '민경장군'(31만 6000명), 오나미의 '나미데이'(1만 700명)도 유튜브에 자리를 잡았다.
공개 코미디 무대가 사라진 것이 이들을 유튜브로 향하게 한 원인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방송 심의, 규제 등이 없는 유튜브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다양한 시도를 하며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어쩌면 개그하기 더 좋은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그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선,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코미디언들의 산실(産室)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없이는 '신인'들이 발굴되기 어렵다. 현재 수많은 코미디 지망생들이 갈 곳을 잃은 상황이다. 지금 저 유명한 코미디언들을 키우고 성장시킨 곳이 어디인지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또, 190개 이상의 스케치 코미디 채널이 존재하는 유튜브 내에서 경쟁하는 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따라서 다양한 코미디언들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다만, 우려스러운 지점도 있다. 과연 유튜브의 자유로운 개그에 익숙해진 코미디언들이 방송 무대에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반대로 자신의 기호에 맞는 코미디를 선택할 수 있었던 유튜브의 시청자들이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돌아올지도 의문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부활은 당위적으로 옳은 일이지만, 그 미묘한 접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개그콘서트2>가 그 해법을 찾아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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