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기억, 그리고 궁금증
누구나 대개 그러하듯 달리의 작품 중 처음 접한 것은 녹아내리는 시계의 이미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1931년 작업 '기억의 지속'이었다. 교과서에 기재된 대로 '초현실주의'의 표상이 된 역사에 남을 그림이다. 작품의 배경과 함축된 의미 같은 걸 제대로 이해하기엔 턱없이 일천한 시절이었지만 (사실 딱히 지금이라고 얼마나 더 잘 이해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갓 청소년기에 진입하던 당시에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작업이었음은 분명하다. '초현실주의'가 맞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되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두 번째로 그의 작품 가운데 각인된 건 허영만의 역사만화 <오! 한강> 중 전반부에서 주인공 이강토가 그림을 배우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토론모임 선배인 김희중이 빌려준 서양화 화집 속에 수록된 '내전의 전조'였다. 주인공이 그 그림의 역사적 배경 같은 건 알 턱이 없는데도 강렬하게 빨려들 듯 도판을 응시하는 장면은 곧 본인의 체험과도 잇닿는 수준이었다. 만화에서는 곧 터질 동족상잔의 내전을 징후로 묘사하는 장치로도 활용되는 순간이었다. 이강토는 자신이 왜 그 그림에 그렇게나 충격을 받았는지 당시엔 몰랐을 테지만 그 이후 일평생 그 그림의 중력장 하에서 속박당한 삶을 살게 된다. 예술이란 그런 위력을 가진 것이다.
작품을 창조한 조물주 격인 그 이름, '살바도르 달리'는 20세기 미술계를 뛰어넘어 대중문화와 현대예술 전반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미술에 대해 별로 친숙하지 않은 이들이라도 그의 대표작으로 어느 미술 교과서에나 빠지지 않고 수록되는 <기억의 습작> 같은 작품을 보지 않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그 정도로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과 문화적 위상은 대체 불가능할 만큼 거대한 경지에 올라서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의 대표작 한두 편 외에는 오히려 본인의 작품보다 (그 특유의 콧수염과 부릅뜬 연극적 표정의) 화가 본인이 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게다가 대중적으로는 초현실주의 미술 경향의 대표 격인 작가로 손꼽히지만 사실 그의 작업 스타일은 동시대의 초현실주의 경향에서 살짝 빗겨나 있기도 하다(또 다른 영향력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에게도 해당되는 지점이다). 반면에 20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달리의 동료 작가들이 생명력을 잃고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바도르 달리의 영향력과 창작욕은 그칠 줄 몰랐다. 과연 그만이 이룩한 생명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살바도르 달리에 대해 다룬 책과 영상물이 이미 적지 않게 세상에 나와 있음에도 새로운 다큐멘터리 기록영화 소개는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대중의 기대를 '배반'하는 이 영화의 의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