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 스틸컷(주)NEW
"권 상사 액션은 장르적 멋과 쾌감이 넘쳤으면 했다. 제 영화에서 가상 도시를 주요 배경으로 설정한 게 <짝패>랑 이 영화다. 그만큼 실제 현실을 빗대기보다 장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액션이 아무리 화려해도 인물에 몰입 안 되면 소용없다. 권 상사만의 품의는 조인성 배우가 잘 채워줬다. 반대로 박정민의 장도리는 아주 달랐다. 처절한 몸부림, 활어의 파닥거리는 맛이 있었으면 했다. 후자는 사실 부상 위험이 크거든. 근데 제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게 정민 배우가 해냈다.
권 상사의 액션 동력은 일종의 기사도였다. 지금은 사라져 가는 가치지.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게 지금은 뭐 대수냐 그럴 수 있는데, 그래서 일부러 영화 속에서 춘자와 권 상사 로맨스를 안 만든 것이다. 남녀 관계가 아닌 동료로서 권 상사의 패가 더 유리하니까 춘자를 숨겨주는 것이다. 로맨스보다 그게 더 큰 가치라고 본다. 성별을 뛰어 넘은 의리의 감정이라는 게 두 캐릭터 사이에 있었다.
여기에 더해 수중 액션은 김희진 싱크로나이즈 코치 도움이 컸다. 무술 감독과 둘이었으면 그런 액션을 못 만들었을 것이다. 제가 지상에서는 칼싸움도 총싸움도 맨몸도 다 해봤잖나. 물에서는 중력 제약 없이 자유로운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물의 저항이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멋있게 보이려 슬로우모션을 일부러 걸기도 하잖나. 서스펜스를 수중 액션으로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패로부터 배운 용기
액션과 해녀와 함께 <밀수>에서 또다른 주인공은 바로 시대성이다. 처음 접했던 역사 자료가 1970년대 해녀라고 해도 굳이 현재 관객에게 거리가 먼 당대를 소환한 이유가 있었을 터. 류승완 감독은 "그때의 밀수와 지금의 밀수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너무도 달라진 것 같다"며 운을 뗐다.
"70년대 밀수품이라봐야 미제 카라멜, 담배, 바나나, 일제 전축과 워크맨 정도였다. 저도 들은 얘긴데 양담배 단속반이 다방에서 꽁초 색깔로 잡았다고 하더라. 007가방에 담아 팔곤 했던 라이방 선글라스, 잡지들도 다 밀수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왜 밀수품이지 싶은데 그만큼 우린 개발 도상국이었다. 우리 산업이 약하니까 밀수품을 막아서 자국 산업을 보호한 것이지. 지금에야 밀수라고 하면 마약, 금괴 등 아주 센 거잖나.
밀수라는 게 지금처럼 큰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조금씩 선을 넘다가 스스로 위험으로 몰아가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더불어 70년대 패션과 음악을 좋아했다. 복고풍이라고 하면 촌스럽게만 생각하는데 제가 기억하는 70년대는 되게 멋있는 세상이었거든. 부모님 옛날 사진을 봐도 나팔바지에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이더라. 그때 미니스커트는 줄자로 재고, 장발도 단속하던 때잖나. 사회적 금기를 강요당하고, 개인은 반대로 벗어나려 하는 그런 에너지가 흥미로웠다."
류승완이 중견 감독인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부담과 압박도 커질 법한데 정작 류승완은 "제가 했던 것에서 가급적 멀리 가고픈 욕망이 있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열 편 넘게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류승완은 이럴 것이다 선입견이 생기잖나. <베테랑>을 좋아하는 분이 많긴 하지만, <다찌마와리>도 있고, <주먹이 운다>를 좋아하는 분도 계신다. 한때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취지다. 최근에 <베테랑> 속편을 찍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속편 제작을 피하던 때도 있다. 균형이 중요하다. 관객이 요구하는 익숙함과 제가 원하는 새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얼마나 맞출 것인가. 너무 낯설면 당황하시고, 공식대로 하면 서서히 침몰하겠지. 저도 매번 새로운 걸 하기가 두렵다. 근데 구력이 쌓이고 실패도 해보니, 뭐 안되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류승완 감독은 본인을 옛날 사람이라 표현했다. OTT 플랫폼 급성장으로 그 또한 해당 콘텐츠 연출 제안을 받았던 사실을 전하며,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처럼 2시간 안에 못담는 이야기라면 해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극장 상영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옛날 사람을 바꿔 말하면 곧 극장주의자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그의 말대로 <밀수>는 올 여름을 노린 체험형 극장 콘텐츠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1970년대 음악을 실컷 들을 수도 있고, 수중 액션으로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다. "11곡의 삽입곡 중 단 한 곡이라도 귀에 들어오는 게 있을 것이라 믿는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음악은 일부러 과잉으로 했다. 이 영화가 아주 매끄럽기보단 개성 넘치길 원했거든. 매끄러운 데 개성 없는 것과 거칠지만 개성 있는 영화라면 난 후자가 좋다. 제가 극장 관람을 부탁드리는 것은 만든 사람 입장이다.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대 관객은 어린 시절부터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고 자랐고, 코로나19가 지나면서 영화라는 개념이 바뀌는 것 같긴 하다.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다만 가급적 만든 사람의 의도가 잘 담길 수 있는 매체로 봤으면 하는 거지. 물론 아예 안 보는 것보단 감사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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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