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권우성
<어우야담>은 이순신이 꿈에서 원귀를 봤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꿈에 나타난 원귀는 셋째아들 이면(李葂)의 혼령이었다. 혼령은 아버지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죽음을 알린다. 가족이 꿈에 나타나 자기의 죽음을 알리는 일은 원귀의 등장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어우야담>은 이 이야기를 귀신에 관한 파트에서 소개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셋째아들 이면은 <난중일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집과 아버지 군영을 오가며 연락을 전해주는 그의 모습이 아버지의 일기에 많이 묘사돼 있다.
임진년·계사년에 이어 전쟁 3년 차인 음력으로 갑오년 5월 1일(양력 1594년 6월 18일)에 쓴 일기에는 아들 이면이 노비들과 함께 군영을 방문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침에 면(葂)과 집안 여자 노비 넷, 관의 여자 노비 네 구(口)가 병중에 심부름할 일로 들어왔다"고 써 있다. 노비를 셀 때 한 사람, 두 사람 하지 않고 동물을 셀 때처럼 한 구, 두 구 하던 노비제 사회의 실정이 반영된 대목이다.
이면의 건강 문제도 일기에 여러 차례 나온다. 음력으로 그해 7월 10일(양력 8월 25일)에 쓴 일기에는 "아침에 들으니 면의 병이 다시 심해지고 또 피를 토하는 증세까지 있다고 하기에"라고 적혀 있다.
사흘 뒤 이순신은 아들 때문에 직접 점을 쳐봤다. "비가 계속 내렸다"로 시작하는 이날 일기는 "홀로 앉아 면의 병세가 어떤지 염려되어 척자점을 치니"라고 말한다. 홀로 있는 시간에 아들의 건강이 염려돼, 글자 적힌 패를 던져 점괘를 얻었던 것이다. "매우 길하다"라고 일기에 적혀 있다.
이처럼 항상 아들을 걱정하던 이순신의 꿈에 이면이 나타나 자신의 죽음을 알렸다고 <어우야담>은 말한다. <어우야담>은 이면이 충청도 아산현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실을 설명하면서, 그가 온몸에 피를 흘린 모습으로 아버지의 꿈에 나타나 자기를 죽인 왜군의 신상정보를 알려주었다고 말한다. "항왜(降倭) 열셋 중에 저를 죽인 자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마침 이순신 군영에 있던 투항 왜군 13명 중 하나가 자기를 죽였다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이순신은 아들의 신변이 걱정됐다. 잠시 뒤 아들이 죽었다는 부음이 왔다. 그제야 이순신은 항왜 13명을 불러내 이들의 최근 행적을 심문했다. 그런 뒤 범인을 찾아내 형을 집행하고 아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어우야담>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