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PROJECT MOON

합리적인 의견과 상식에 이 '낙인'이 찍히면 심각한 이슈가 된다. 백래시에 직면한 한국, 이제 '페미니즘'은 이름조차 꺼낼 수 없고 '성평등', '여성 인권' 등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인권 개념은 특정 성별만을 위한 불공정한 특권으로 인식된다. 지난 26일, 모바일 게임 개발에 참여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과거 SNS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페미 낙인',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남성 유저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즉각적인 사용자 평가에 민감한 게임 업계에서 페미니즘 관련 SNS 게시글을 올렸거나 이를 지지하였다는 이유로 성우가 교체되거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이 삭제된 바 있다. 게임 업계에서 끊이지 않는 페미니즘 검열이 성평등 백래시(반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페미니즘 검열'에 계약 종료?
 
 '림버스 컴퍼니' SNS 갈무리
'림버스 컴퍼니' SNS 갈무리LimbusCompany_B
 
26일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를 개발한 게임 개발사 '프로젝트 문'의 김지훈 디렉터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사회적 논란이 생길 여지가 있는 개인 SNS가 회사와 연관될 가능성을 없애달라고 여러 차례 공지한 바 있다'며 논란이 된 일러스트레이터와 계약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게임 캐릭터의 의상. 여름 이벤트로 새롭게 추가된 여성 캐릭터의 의상이 신체 노출이 적은 전신 수영복(해녀복)이고 몸매가 평면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프로젝트 문'이 '페미니즘 개발사'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남성 이용자들은 해당 게임에 평점 '1점'을 주는 별점 테러를 했고, '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메갈(페미니스트)일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그 중, 게임 크레딧에 적힌 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의 SNS 계정을 확인해 과거 게시글이 남성 혐오적이라며 '메갈' 낙인을 찍었다. 해당 SNS에는 불법 촬영 규탄 시위를 지지하는 게시글이 공유됐고, 현재는 삭제된 상태. 이에 남성 이용자들은 직접 회사 본사를 찾아가 '남성 혐오' 논란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해당 일러스트레이터는 논란이 된 여성 캐릭터의 '전신 수영복'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직원을 향한 악의적인 비난에 회사는 보호가 아닌 해고를 택했다. '남성 혐오' 논란이 제기된 지 몇 시간 만에 계약 종료, 사실상 부당 해고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프로젝트 문'이 일부 유저의 '남성 혐오' 논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사실상 게임 업계 내 백래시(반발)에 동조하였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게임 업계의 반복적인 '페미 검열'
 
 김자연 성우가 올렸던 페미니즘 지지 티셔츠. 'GIRLS Do Not Need A Prince(공주에게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김자연 성우가 올렸던 페미니즘 지지 티셔츠. 'GIRLS Do Not Need A Prince(공주에게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문구가 담겼다.김자연SNS
 
게임 업계의 '페미 검열'은 낯설지 않다. 2016년 넥슨은 성우 김자연씨가 SNS에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려 논란이 되자 교체했고, 그를 지지했던 수많은 작가와 게임 캐스터는 퇴출당했다. 2018년에는 '소녀전선', '소울워커', 벽람항로' 등에서 해당 작가에 대한 '페미 의혹'이 제기돼 캐릭터와 일러스트가 교체되기도 했다.   

2020년 카카오 게임즈의 '가디언 테일즈'는 영어판 대사 'You Whore(성매매 여성)'을 한국판 대사 '걸레 같은 X'로 번역하여 비판이 제기되자 이를 '광대 같은 게'로 변경했다. 그러자 일부 남성 사용자들은 '광대'가 남성 혐오적 표현이라고 주장했다(영화 <조커>의 주인공이 '인셀(비자발적 독신남)' 캐릭터라는 점을 들어 급진적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남성을 비하할 때 '광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성계나 페미니즘 운동권에서 '광대'라는 단어에 남성 비하적 표현을 부여한 적은 없다. 이후 해당 게임은 평점 4.9점에서 2점대로 추락했고 개발사 측은 사과문까지 게재해야 했다. 

'페미 낙인'이 찍히면 여성 노동자나 관련 일러스트를 교체하는 게임 업계의 암묵적인 관행은 분명 여성 차별적이다. 더욱이 해당 논란에 동의하지 않는 대다수 사용자에게 오히려 반감을 사고 있다. '림버스 컴퍼니'의 경우, 국내 및 해외 이용자들이 '부당 해고'를 사유로 게임 환불을 요청하고 있고 26일 트위터에서 부당 해고에 반대하는 트럭 시위 모금이 진행되는 등 비판의 움직임이 시들지 않고 있다.

끊이지 않는 '페미 낙인'

누구나 성별과 무관하여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페미니즘의 메시지는 퇴색된 지 오래다. '페미니스트'처럼 보이면 순식간에 '남성 혐오자'라는 딱지가 붙어 누군가의 작업물이 사라지고 직장을 잃게 한다. 문제는 일부 사용자가 제기하는 '페미' 낙인보다 비합리적인 논란을 수긍하는 게임 업계의 관행에 있다.

이와 관련, 청년 유니온은 28일 "SNS와 같이 사적 활동을 근거로 해고하는 것은 엄연히 부당 해고"라고 밝히며 "이와 같은 게임 업계 내에서 발생한 관행들을 사전적으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규제나 사회적 장치는 부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부분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환민 it 노조 부위원장은 "2016년 넥슨이 여성 성우를 교체한 사례가 게임 업계 내 여성 노동자 처우에 대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이라며 "건강한 게임 커뮤니티 문화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오해가 사실이 될 수 없고, 다수의 의견이란 이유로 억측이 진정한 논란이 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게임 업계 내 여성 혐오 및 차별적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제는 게임 업계가 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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