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영화'라는 참을 수 없는 모호함
'한국독립영화'라는 말처럼 모호하기 짝이 없는 용어도 드물다. 대개 개념을 파악하기 헷갈리더라도 단어 자체에 주목하면 실마리가 보이는 편인데, 이 용어의 경우는 오히려 더 혼란해지기 때문이다. '한국'+'독립'+'영화'의 조합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전혀 어려울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3개의 단어가 조합되는 순간 일종의 패러독스가 형성되어버린다. '한국'과 '영화'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데, 중간에 '독립'이 끼어드니 방정식이 복잡해져 버린다. 중간의 '독립'이 대체 어떤 개념을 뜻하는지 혼란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이 모호하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사자성어처럼 이전의 선례를 찾아보게 마련이다. 이제는 아득한 과거가 되어버린 20세기 중후반, 세상이 동서 냉전의 대립으로 구획되던 시절에는 뭐든 차이를 구분해 정리하던 그 시절 척도대로 해석이 간결했던 편이다. 1세계와 2세계로 나뉘어져 대립하던 냉전 시절, 1세계에서 독립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이 기준이었고, 2세계에서 독립은 권위주의 국가 시스템으로부터 독립에 가까웠다. 자본주의 시장구조 하에서 철저하게 수익을 내는 문화상품으로 규정당하는 것을 넘어 작가의 예술적 접근을 강조하는 게 1세계에서 독립을 위한 싸움의 명분이었다. 반면에 국가 검열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창작의 권리를 수호하는 게 2세계에서는 절실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독립'은 이 둘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현재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세대구분은 압축성장을 구현한 한국현대사처럼 전혀 다른 성격의 3가지 유형이 공존한다고 하는데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조부모 세대는 전형적인 3세계 빈곤국가로 출발했고, 부모세대는 마치 동구 사회주의권 계획경제처럼 경제개발에 동원되던 2세계 권위적 통치를 겪었다. 청년세대는 분명히 '선진국'이라 구분되는 국가들의 동 세대와 점점 닮은꼴 사고와 고민에 처하게 된 상태다.
그래서 과거 1세계 진영에 속했지만 실체는 3세계에 가깝던 시절엔 상업자본과 국가검열을 동시에 공히 상대해야 했다. 1공화국 시절엔 '임화수'로 대표되는 정치깡패가 영화제작을 독점하며 관제동원에 시달려야 했고, '반공영화', '국책영화'란 어두운 그림자는 정통성 없이 부당하게 권력을 독점한 정권과 함께 오랜 세월 계승되어 왔으니 말이다.
특히 군부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사회참여와 저항운동의 일환으로 한국독립영화는 창작자의 표현 자유 영역을 뛰어넘어 사회운동(혹은 반정부투쟁)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영화운동'의 시간이 그렇게 도래한 것이다. 그런 배경 때문에 '독립영화'를 한다고 하면 '독립군' 나오는 영화냐고 반문하는 이들의 표현은 반드시 틀린 게 아닌 셈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식민지배와 투쟁하듯 독재정권에 맞서는 '진영'과 전면적으로 결합한 게 초창기 한국독립영화의 전통임은 부인할 수 없다.
형질변환의 과도기 속 한국독립영화의 다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