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멘탈>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가 모여 사는 대도시 '엘리멘트 시티'. 불들이 모여 사는 파이어 타운에는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레아 루이스)가 있다. 본토를 떠나 엘리멘트 시티로 이민 온 부모님을 도와 잡화점을 운영하는 앰버. 그녀에게는 한 가지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화를 참지 못한다는 것.
어느 날, 앰버 앞에 유쾌하고 감성적인 물 '웨이드'(마무두 아티)가 나타난다. 첫 만남은 악연이었다. 앰버 부모님 가게 수도관이 터지자 공무원인 웨이드가 시청에 고발하고, 앰버가 불처럼 화를 냈기 때문. 그러나 이를 계기로 앰버는 웨이드와 점점 가까워지고, 그녀는 부모님과의 관계부터 자기 꿈에 이르기까지 믿어온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스물일곱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뒷심이 무섭다. 개봉 11일 차에 처음으로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개봉 19일 차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라는 경쟁작이 등장했지만 박스오피스 정상은 여전히 <엘리멘탈> 몫이다.
<엘리멘탈>의 역주행은 사실 예상 밖의 일이다. 부정적인 이슈가 많았기 때문이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공개된 직후 평단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낭패였다. <버즈 라이트이어>에 이어 픽사라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흥행성적도 기대 이하였다. 북미에서는 개봉 후 2주 동안 1억 달러를 채 벌지 못했다.
뒤늦게 <엘리멘탈>을 보니 부정적인 반응의 원인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소재는 지극히 픽사답지만, 정작 이야기는 픽사스럽지 않다. 픽사만의 개성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이 괴리감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하지만 이 역설 덕분에 일반 관객에게 <엘리멘탈>은 오히려 사랑스럽다. 109분 동안 부담 없이 화려한 영상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 몇 방울은 덤이다.
신선한 소재, 이민자의 삶 되돌아보는 영화
픽사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무기는 신선한 소재다. 클리셰를 따르는 안일함은 찾기 어렵다. 대신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는다. 픽사 애니메이션이 아이보다도 어른을 울리기로 유명한 이유다. 일례로 <소울>은 앞만 보고 달리기 바쁜 현대인에게 잠깐의 여유를 줬다. 인생은 무언가 거창한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즐길 때 의미가 있다고 말하면서.
<엘리멘탈>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계에 초점을 맞춰 미국으로 건너 간 이민자의 삶을 살펴본다.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지킬 것인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다른 가치관은 어떻게 공존할지. 기존 사회의 구성원과 이민자는 어떻게 융화할 수 있는지. 영화는 불과 물이라는, 상반된 원소의 만남과 갈등을 통해 이민자의 삶을 되돌아본다.
특히 아시아계 이민자가 주인공이라서 인상적이다. 미국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 차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 오래지 않은 만큼, 픽사가 빠지면 섭섭하다. 실제로 피터 손 감독 본인이 한국계 미국인이다 보니 영화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많다. 큰 절, 매운 음식, 코리아 타운 등을 변형해 활용한다. 앰버네 가족 이야기가 백인, 흑인, 유대인보다도 늦게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또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와 겹쳐 보이는 이유다.
아쉬운 스토리텔링, 픽사답지 않은 이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