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영화사 진진
 
공교롭게 어린이날 전날 <토리와 로키타>를 관람했다. 다르덴 형제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잔인하고 충격적인 엔딩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거늘,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남을 피부로 실감했다.
 
감독의 그동안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유독 벗어난 결말이다. 꾸준히 불행을 통해 조금은 행복한 사회로 갈 방향을 제시했던 '다르덴 형제' 감독의 힘이 들어간 목소리 갔았다. 그동안의 연출과는 조금 다른 방식을 택한 이유가 아닐까.
 
이미 이민자에 관한 영화를 몇 편 만들었던 감독은 우연히 신문에서 접한 기사를 보고 미성년 이민자가 나오는 첫 번째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유럽으로 많은 난민이 들어오지만 아이들의 인권은 보장되지 못한다고 한다. 실종되는 아이들이 많고 난민 심사도 어려운 아이러니다.
 
난민 체류증 받아 가정부가 되고 싶었던 소녀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영화사 진진
 
로키타(졸리 음분두)는 가사도우미가 되고 싶은 소박한 미래를 꿈꾼다. 고향에 있는 엄마와 동생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그녀를 짓누르지만 토리(파블로 실스)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고 싶다. 때때로 공황장애로 힘든 시간이 찾아와도 열심히 노력해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토리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한국 속담에 어울리는 아이다. 누나를 믿고 사랑하며 오빠처럼 의지할 수 있는 어른스러움과 총명함을 지니고 있다. 셈과 눈치가 빨라 임기응변에 강하고 모험심도 커 거침없이 상황을 돌파하려고 한다. 둘은 1분 1초도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로 의지하며 각별한 가족애를 키워간다. 피를 나눈 남매가 아니지만 가족으로 계속 살아가고만 싶다.
 
낯선 땅에 도착해 새출발을 하려고 하지만 미성년 이민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둘은 생계를 위해 마약 운반책으로 돈을 벌었고 엄청난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어렵게 돈을 벌면 뭐 하나, 로키타는 이민 브로커에게 돈을 뜯기고 힘 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착취도 감내해야만 한다. 
 
게다가 토리는 학대가 인정되어 체류증을 받았지만 로키타는 받지 못했다. 결국, 희망에 부풀었던 로키타의 난민 심사가 좌절되자 모든 게 틀어지게 된다. 위조 서류가 절실해진 로키타는 더 큰 범죄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동안 마약 농장에서 일해서라도 얻어야만 했던 가짜 난민 체류증 때문에 토리와 떨어지게 된다. 
 
이런 영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세상이길...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영화사 진진
 
영화 <토리와 로키타>는 소외계층, 약자를 주인공 삼아 사회 문제를 고발해 왔던 다르덴 형제 감독의 신작이다. 그들이 처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투박한 연출이 돋보인다. 흔들리는 핸드헬드, 롱테이크 촬영기법은 물론이며 주변의 소음이 들리거나 음악으로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다. 칸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75주년 특별기념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거장임을 입증했다. 
 
선정적이거나 직접적인 장면은 피하고, 표현도 삼가며 감히 불행을 전시하지 않는 태도가 두 감독의 시그니처다. 늘 비슷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지만 매번 기다려지고 오프닝이 시작되는 순간 집중하게 된다. 범죄에 노출되어 버린 어린 난민의 그늘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사회의 안전망은 아이들을 보듬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궂은 자리로 내몰기만 한다.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악인처럼 보인다.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관계 그 이상과 이하도 아니다. 이들은 난민이란 이유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미성년이지만 가정과 사회의 울타리는 높기만 하다.
 
유독 난민 이슈에 예민한 한국에서 두 아이의 고결한 우정이 어떻게 느껴질까.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혈연 가족보다 더 진했던 누이와 동생의 애틋함이 어느 때보다 거세게 다가온다. 슬프고도 잔인한 현실에 눈물마저 사치로 느껴질 정도였다. 애써 터져 나오는 울먹임을 삼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왔지만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두 아이가 함께 불렀던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환한 미소와 맑은 음색으로 청중 앞에서 부르던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어른거린다. 이 노래는 오랜 이민자들의 노래였다.
 
영화는 끝났지만 또 다른 '토리'와 '로키타'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더욱이 모호해지기만 한다. <다음 소희>, <토리와 로키타> 같은 영화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필요하다. 30년 동안 영화를 만들었던 거장의 시선이 유독 이 아이들에게 꽂힌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토리와 로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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