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초기 브로커 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지난해 10월 25일 자로 신규 선임된 한국영상자료원 이사와 감사 3인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영화기관에 대한 첫 번째 인사였다. 한국영화를 보는 윤석열 정부의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이전 보수정권 당시 위인설관 식으로 자리를 만들어 비전문가를 내려보내기도 했던 사례가 잦았기에 앞으로 영화기관 인사를 예측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인들 사이에서 한숨이 나올 만큼 부적합한 낙하산 인사의 재개였다.
이사로 선임된 김재련 변호사는 고 박원순 시장 관련 사건을 변호하면서 알려진 인물이다. 윤문정 이사는 이명박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요원('09~'12) 20대 대선 미래전략특보('22) 이력을 내세웠다. 감사에 선임된 오용식씨는 1998년 괴산군의원, 2006년 충북도의원을 거쳐 현 국민의힘 충북동남4군 조직위원회 위원장이었다.
하나같이 영화와의 연관성이나 전문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임명된 것이었다. 감사의 경우 영화 전문성이 약해도 넘어갈 수 있겠으나, 한국영화에 생소한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영화인들은 "이 사람들이 도대체 한국영화와 무슨 관련이 있냐?"는 의문과 함께 "차라리 윤석열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영화인이라도 넣어주는 게 낫지 않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정부에서 영화 전문가들로 구성됐던 이사회에 비전문가들이 섞이면서 한국영화 아카이빙의 중요한 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은 다시금 이전 시대로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취임 1년을 맞는 윤석열 정부가 한국영화를 보는 시선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영화계는 영화 관련 기관장과 이사, 위원 등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내년의 상황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말잔치로만 끝난 "도와주겠다"
지난 1년 윤석열 정부의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시선도 차이가 없다. 한마디로 '관심 없음'이다. 취임 초기 칸영화제 수상작인 <브로커>를 관람하고, 수상자들에게 만찬을 베풀며 국위 선양을 치하했으나 그때뿐이었다. 당시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일이 있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도와드리겠다"고 했으나 말잔치로 끝날 뿐 구체적인 실행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해부터 한국영화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음에도 실질적인 대책은 부재한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영화발전기금(영발기금) 고갈이라는 시한폭탄이 터질 상황이 다가오고 있으나 아직도 해결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영진위 측은 "문체부에서 체육진흥기금 활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지난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야는 영발기금 800억을 지원하는 정부안에서 200억을 늘려 1000억 국고 지원에 합의했다. 하지만 통과된 것은 최종 정부안인 800억이었다. 팔을 걷어붙여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공허하게 만드는 결과물이었다.
한국영화산업 진흥의 동맥과도 같은 영화발전기금은 11월이 지나면 거의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급한 보충 방안이 논의돼야 마땅하나, 여당의 관심 사안에서는 벗어나 있어 보인다.
영발기금 고갈의 여파는 내년 영진위 예산 큰 폭 삭감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영진위 예산이 6~7년 전 뒤로 후퇴하는 것으로, 제작을 지원하는 모태펀드 투자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지원 사업 축소도 불가피하면서 영화산업의 회복 속도는 더 떨어질 게 뻔하다.
한국영화산업은 코로나19 이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대비 절반 정도만 회복된 상태에서 아시아를 휩쓸었던 K-콘텐츠도 동남아 국가의 추격이 무섭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극장의 관람료 인상으로 인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선택과 집중 현상이 강화되면서 올해 들어 한국영화는 제대로 흥행해 수익을 낸 영화가 한 편도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