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펜데믹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던 시절,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와 지내며 닥친 실존적 고민은 이거였다. '아이랑 매일 뭐 하고 놀지?' 집에서 뽀로로를 봐도, 블록을 쌓아도 한두 시간이지, 도대체 뭘 하며 이 긴긴 시간을 보낸단 말인가.
아침밥을 먹은 후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집 앞 작은 공원에서 아이는 어른들 운동기구에 흔들흔들 매달리다 풀밭에 철퍼덕 주저앉아 나뭇가지도 줍고 나뭇잎도 모았다. 흩날리는 벚꽃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고, "엄마, 구름이 움직여" 감탄하며 작은 손으로 구름을 가리켰다. 한 뙈기의 풀밭과 햇빛, 바람만 있으면 아이는 그 속에서 경이와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때 어렴풋하게 알았다. 놀이는 아이에게 뭔가 '해줘야' 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세상의 빛나는 것들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이 시간이 목표와 성과, 효율과는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세계에 접속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것도.
이 시대의 놀이법
유엔아동권리협약 43조는 아동에게 놀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놀이를 '아동이 스스로 시작해서 만드는 활동으로 언제 어디서건 가능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즐거움과 의욕을 주는 특징을 가져야 한다'고 정의한다. 나만의 소박한 정의로 바꾸자면, 뚜렷한 목적이 없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재미있고 즐거운 활동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놀이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정의와는 사뭇 다르다.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사교육 산업은 이렇게 말한다. '놀이를 통해서 가르칩니다!' 영유아가 놀이를 통해 영어, 한글, 한자, 코딩, 수학 등을 스트레스 없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으며, 학습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는 이 활동을 과연 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의문과 달리, 놀이식으로 배운다는 영어 학습지, 수학 전집, 영어 유치원(정확한 명칭은 유아대상 영어학원이다.) 등의 사교육 상품이 성행하고 있다. 여기서 놀이란 인지학습에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한 미끼이며, '뭐 하나라도 더 배웠으면' 하는 부모의 욕망을 죄책감 없이 실현하기 위한 도구다.
어른들의 놀이는 어떨까? 긴 노동시간에 허덕이는 어른들에게는 놀 시간이 없다. 한 직장에 충성하는 것을 넘어 '셀프 브랜딩'을 하는 1인 기업가가 되어야 하는 시대, 여행을 가거나 취미 생활을 해도 이것이 자신의 커리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자신을 브랜딩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커리어 계발의 필요성이 아니라면, 놀이는 자신을 과시하려는 욕구를 경유해서 온다. 여행, 운동, 맛집 투어, 연극이나 영화 관람 등 대다수의 놀이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 자신의 취향(그리고 그 취향을 실현할 수 있는 부)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