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일본은 잦은 지진과 해일로 고통을 받았었고, 지리적 여건상 여전히 그러한 자연 재해의 위협 속에 놓여 있는 나라이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의 도입부를 보며 든 생각은 이러한 일본의 여건이었다. 단순한 모양이지만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힘을 가진 '미미즈'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미래이자 '불안'이었다. 그 불안은 반복되며 축적된 과거의 경험이 만든,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포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는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 영화가 단순히 상상적인 공포일 뿐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 없는, 언제든 구현될 가능성이 높은 이 공포를 어떻게 그려낼지 무척 궁금해졌다. 머리를 질끈 묶는 저 소녀가 그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까.
스즈메는 뒷문을 통해 새어나오는 이 불안과 공포를 다스려 '철컥'하고 가둔다. 죽음이 두려우나 그것을 인지하며, 그저 지금을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스즈메는 웃으며 지나온 길을 되짚어 일상으로 돌아간다. 스즈메의 용기도, 모두의 도움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받아들임과 감사의 결말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왜 이리 뒷맛이 개운치 않을 걸까. 영화 <너의 이름은>을 보고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나는데, 이 감성에 빠져들기만 해서는 안될 것만 같다. 왜 그런지, 사실 잘 알고 있다. 우리의 과거는 여전히 안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 소재는 재난이지만, '과거'라는 키워드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한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평안을 깨트린다. 문단속은 제 집을 우선해야 겠지만, 다른 집 문을 살펴야 할 때도 있다. 우리의 과거는, 언제쯤 철컥하고 제대로 단속하게 될까. 일단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