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자랑' 단원고 특별 상영회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의 이소현 감독과 출연진인 세월호 참사를 겪은 엄마들이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단원고에서 열린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특별 상영회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수인 엄마(김명임), 예진 엄마(박유신), 영만 엄마(이미경), 순범 엄마(최지영).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들이 얼떨결에 연극을 시작하며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 이정민
세월호 참사 9주기, 우린 이 사고를 어떻게 기억하고 마주해야 할까. 이 물음에 11일 저녁 7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 모인 80여 명의 학생과 교사, 학부모는 눈물과 웃음으로 답했다. 세월호 가족 극단인 '노란리본' 이야기를 다룬 영화 <장기자랑> 공동체 상영회가 이곳에서 열린 덕이다.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들이 재능을 마음껏 뽐낼 준비를 하는 과정을 다룬 동명의 연극을 단원고에서 공연한 지 약 1년 만이었다. 희생자 유가족인 엄마들이 직접 자신의 아이들을 연기했고, 이 과정을 영화화한 <장기자랑>은 3년 6개월여의 제작 기간을 거친 뒤 지난 5일 개봉했다. 극장 개봉 초기 이례적으로 공동체 상영회를 연 것은 다름 아닌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1년 만에 다시 안산 단원고등학교를 찾은 유가족 엄마들은 되려 학생들의 밝은 인사에 큰 위로를 받은 듯했다. 상영회 간담회가 열리기 전 대기실에서 "울지 말자"며 다독이는 모습이었다. 다섯 엄마들은 기자에게 "영화 개봉하고 이렇게 단원고에 오게 될 걸 상상도 못했다",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행사가 진행되면서 열린 마음을 한껏 내보였다.
가장 멋진 이름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팝콘이 제공됐다. 이번 행사는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 협동조합인 시나브로가 주축이었는데 행사 준비와 안내, 진행에 모두 학생들이 참여했다는 게 특징이었다. 안내를 맡은 학생들은 앞치마를 두른 채 입장하는 관객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상영 공간을 알렸고, 교사들과 인근 주민들 또한 하나둘 좌석을 채웠다. 이윽고 약 80여 명의 관객이 모인 상영회가 시작됐다. 현장에선 내내 웃음소리와 흐느낌이 교차했다.
<장기자랑>을 연출한 이소현 감독은 상영 직후 "학생들이 너무 반겨줘서 놀랐다. 굉장히 밝고 긍정적인 영혼이 모여있다고 느꼈다"라며 뒷좌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모여주셨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앞자리가 다 채워지자 이 감독은 "다큐를 만들 때 우리 어머님들을 너무 먼 희생자가 아닌 우리 이웃처럼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라며 "아이들이 뛰놀던 단원고이기에 응원하는 마음으로 왔다, 봐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전했다.
단원고 마을공동체 협동조합 주영화 이사장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써놨는데 이대로 읽지 않겠다, 느낀 것 딱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일단 많이 울었다, 진짜 많이 감동받았고 너무 감사하다"라며 "두 번째는 엔딩 크래딧에 누구 엄마라고 나오는데 이만큼 멋있는 배우 이름이 없었던 것 같다, 어려운 자리였을 텐데 와 주셔서 아이의 부모로서 너무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라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장기자랑' 단원고 특별 상영회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의 이소현 감독과 출연진인 세월호 참사를 겪은 엄마들이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단원고에서 열린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특별 상영회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수인 엄마(김명임), 동수 엄마(김도현), 예진 엄마(박유신), 영만 엄마(이미경), 순범 엄마(최지영), 이소현 감독.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들이 얼떨결에 연극을 시작하며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 이정민
순범 엄마 역의 최지영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울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같이 뛰놀던 곳에 와 있는데 지금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니 더욱 건강하게 학교 잘 다니고, 좋은 일이 많이 있었으면 한다"던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엄마들이 할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돌아오지 않지만 (안전한)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더한 일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만 엄마 역의 이미경씨는 "재작년 이곳에서 연극 공연했을 때도 큰 용기를 냈고, 여러 마음이 들었다"며 "9년 세월이 흐르며 세월호 참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기에 누구는 피하고 싶겠지만 <장기자랑>은 그 마음을 깨는 따뜻하고 유쾌한 작품이다. 보러 오시는 발걸음이 힘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위로가 되셨을 거라 생각한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예진 엄마 역의 박유신씨는 "예진이가 1학년 때 학교에 데려다 주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연극 단원끼리 갈등도 있었고, 어렵게 공연하기도 했다. 그런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오늘 이렇게 온 건 잊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리기 위해서다"라며 "너무 아프게만 기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참사가 올 수도 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 선배들 잊지 말아달라"고 마음을 드러냈다.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던 동수 엄마 역 김도현씨는 "<장기자랑>을 보면 아이들 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뮤지컬 배우·로봇 공학자·모델이 꿈이었던 아이들을 비롯해 (희생자) 250명 아이들을 한명 한명 예쁘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수인 엄마 김명인씨는 "단원고에서 교실 존치 문제로 싸울 때 일부 엄마들이 진학을 방해하면 안 된다며 반대했다, 이해는 하지만 너무 가슴 아팠다"며 "지금 학생들을 보니 건강하게 자기 할 일 잘하면서 나아갈 것 같다"라고 속내를 전했다.
▲ '장기자랑' 단원고 특별상영회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특별 상영회가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단원고에서 열리고 있다.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들이 얼떨결에 연극을 시작하며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 이정민
▲ '장기자랑' 단원고 특별 상영회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의 이소현 감독과 출연진인 세월호 참사를 겪은 엄마들이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단원고에서 열린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특별 상영회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들이 얼떨결에 연극을 시작하며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 이정민
"지금처럼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시길"
간담회는 학생들이 미리 준비한 질문과 객석에서 나온 질문들로 진행됐다. 연기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을 묻는 말에 이미경씨는 "삶이 달라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유가족은 늘 슬퍼야 하더라, 원래 성격이 밝은데 슬픔에 절 가두고 있으니 너무 많이 힘들었다"며 "슬프지 않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틀을 깨야겠다고 느꼈다, 연극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난 9년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고 설명을 더했다.
2021년 12월 31일 연극 <장기자랑> 단원고 공연을 봤다던 한 학생은 "연극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슬프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머님들이 연극을 준비해 온 많은 노력을 알 수 있었고, 감동적인 장면이 많아 울컥했다"라며 "너무 재밌게 봤다"고 감상을 밝히기도 했다.
1학년 재학 중인 아들과 행사장을 찾은 한 학부모는 "사고 났을 때 단원고 근처에 살다가 이사를 갔는데 출근하는데 이 길을 도저히 못 지나가겠더라"라며 "부모라면 아마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진상규명도 제대로 못했고 도움을 드리지도 못했지만 많이 응원하고 있다, 더 힘내주셨으면 한다"라고 목이 매는 듯 겨우 말을 이었다.
가장 힘들거나 보람 있었던 순간을 묻는 말에 이소현 감독은 "예진 어머님이 잠적했을 때"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감독은 "한번도 결석과 지각을 안 하시던 분인데 잠적하셨다, 다행히 제 전화를 받아주셔서 강원도 양양으로 찾아가 영화 속 장면을 찍고 다시 합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단원고로 전근 온 한 교사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세월호에 관심이 많았다, 어머님들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힘이 되고, 어떤 상황일 때 가장 응원이 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박유신씨는 "지금처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시면 된다. 또 배지, 팔찌 하나라도 달아 주고 계시면 여전히 우릴 응원하는구나 느낀다"라며 "그걸 느낄 때마다 하늘을 보며 아들에게 얘기한다,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한다"고 답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학생들과 교사는 노래 '잊지 않을게'를 불렀다. 또한 책갈피에 저마다 글을 적어 공간 내 비치된 소원 나무에 거는 행사를 이어갔다. 학생들과 엄마들은 서로 포옹하거나 볼을 비비는 등 한껏 감흥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 '장기자랑' 단원고 특별 상영회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의 이소현 감독과 출연진인 세월호 참사를 겪은 엄마들이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단원고에서 열린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특별 상영회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들이 얼떨결에 연극을 시작하며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 이정민
▲ '장기자랑' 단원고 특별 상영회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단원고에서 열린 휴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특별 상영회에서 순범 엄마(최지영)와 단원고 학생들이 소망을 적은 메모를 나무에 매달고 있다.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들이 얼떨결에 연극을 시작하며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 이정민
행사장을 찾아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한 단원고 3학년 학생은 "영화 보면서 마음이 좀 아팠고 눈물이 났다, 나름 오기까지 큰 결심을 했었는데 잘 온 것 같다"고 말했고, 그의 어머니는 "기억하고 싶어 참석했다, (유가족) 어머님들을 뵙고 싶기도 했는데 너무 오길 잘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행사 기획에 참여한 김덕영 교사는 "단원고가 세월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이라 그간 유가족분들도 오기 어려운 곳이었는데 앞으로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세월호를 더 잘 알릴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으면 한다"라며 "유가족도 부모님들도 자연스럽게 학교를 찾으실 수 있게 이런 접점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상영회 전 인터뷰로 만난 이소현 감독은 "영화에 나온 모든 분들이 다 제겐 소중한 분들이다, 다른 어머님들은 이렇게 홍보활동에 함께 하시는데 (생존 학생 부모님인) 애진 어머님(김순덕씨)은 생계 때문에 못 나오고 계신다"라며 "참사 이후 아버님은 직장을 관두시고 진실 규명 활동을 하셨다, 생계로 오늘도 참석이 어렵다고 하셨다, 어디선가 애진 어머님도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영화 <장기자랑>은 개봉 1주차 첫 주말 상영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