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연출한 변성현 감독.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은 분명 전도연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물일 것이다. 본격 액션에 처음 도전했다는 의의도 있지만, 단순히 오락성만 담보한 게 아닌 엄마이자 킬러의 정체성을 품었기에 서사적으로도 존재 이유가 분명했다. 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변성현 감독이 전도연을 비롯해 영화에 품고 있는 남다른 마음을 드러냈다.
말 그대로 전도연에서 시작해 전도연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 아닐 것이다. 'Kill Boksoon'이란 영어 제목처럼 중의적 의미를 품고 달려가는 이 영화는 딸을 애지중지하려는 모성과 그 모성이 가진 비윤리성을 품어주고 결국 성장하게끔 하는 딸의 주체성을 묘사한다.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통해 배우 설경구로부터 누아르 액션의 이미지를 찾아낸 변 감독이 전도연을 통해 다시 한번 장기를 펼쳤다고 할 수 있겠다.
전도연의 사적 모습을 관찰하다
인연은 전부터 있었다. 설경구 소개로 만나게 된 전도연이 먼저 한 시나리오를 제안해왔고, 감독은 거절했다. 여기서 나아가 오히려 변 감독은 "선배와 일할 수 있는 기회니까 역으로 제가 선배님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면 하실 수 있는지 물었다"며 "당연히 시나리오를 보고 고민하겠다 하실 줄 알았는데 해보자고 하셔서 놀랐다"고 당시 기억을 꺼냈다.
"일단 작품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뭘 쓸지 오래 고민했다. 일단 액션으로 장르부터 정했다. 제게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지 물으시길래 뭘 쓸진 모르겠지만 액션을 해보시겠는지 말씀드렸다. 많은분들이 선배님의 최고 작품으로 <밀양>을 꼽으시는데 전 <무뢰한>을 좋아한다. 현실적인 캐릭터를 많이 하셨지만 저는 도연 선배님이 히어로나 킬러의 모습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 같다. 업계에선 최고기에 거칠 것 없는 분이지만 그런 분이 딸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이 영화의 설정을 따왔다. 도연 선배님이 가장 안 할 것 같은 장르를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복순은 홀로 딸 재영(김시아) 뒷바라지를 하며 킬러의 삶을 산다. 밖에선 업계의 전설로 추앙받는데 집에선 사춘기 딸과 투닥거리는 서툰 엄마가 된다. 변성현 감독은 "선배님께 부탁드려서 실제 모녀의 대화를 참고했다"고 전했다.
"처음에 제가 쓴 엄마와 딸의 대사가 너무 이상하더라. 선배님께서 집에 오라고 해서 갔는대 아무래도 낯선 사람 앞에서 편하게 대화가 나올리 없잖나. 선배님이 자릴 피해주었는데도 딱히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더라. 시간이 될 때마다 선배님이 절 불러주셨고, 같이 카드게임이나 보드게임을 하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절 자연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모습을 보니 도연 선배님은 굉장히 친구 같은 엄마시더라. 전 좀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라서 말대꾸 하다 엄청 혼나곤 했는데 두 사람은 논쟁을 벌이고 어떨 땐 친구처럼 싸우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선배님이 정말 대단하다 생각한 게 제가 등근육을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린 이후였다. 사실 그렇게 만들어 오실 거라고 기대 안 했는데 어마어마하게 훈련하셨더라. 어떤 액션 영활 보면 몸은 너무 가냘픈데 싸움을 잘하는 캐릭터를 보면 괴리감이 들잖나. 그걸 피해보고 싶었던 건데 선배님이 단 몇 개월 만에 해주셨다. 다른 무명의 킬러들도 소모적이 아닌 각각의 개성이 담기길 바랐다. 제가 짧게 끊어 찍질 않아 대역을 거의 쓸 수가 없었는데 배우들이 너무 고생하시는 걸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신 액션 영화를 안 찍겠다고 말했지. 도연 선배님은 촬영하면서 한의원, 병원을 매일 다니셨다고 들었다. 감독이지만 그걸 시킨 저도 비인간적인 것 같더라."
초반부에 배우 황정민이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것도 전도연의 덕이었다. 재일교포 야쿠자로 강렬한 모습을 원했던 감독이 고충을 털어놓자 전도연이 대번에 황정민을 언급하며 직접 문자를 보내줬다는 후문이다. 변 감독은 "바로 다음날 정민 선배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 바쁜 일정에도 4일 정도 빼주셔서 촬영하고 가셨다. 엄청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희생을 해주셨다"고 당시 일화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