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영화 <웅남이>에 대한 이용철 평론가의 한줄평과 별점.
'씨네21' 영화 <웅남이>에 대한 이용철 평론가의 한줄평과 별점.씨네21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 <웅남이>에 대한 한줄평이다. 개그맨이자 영화감독 박성광의 상업 영화 데뷔작이기도 한 <웅남이>를 두고 영화보다 한줄평이 더 논란이다.  

전말은 이렇다. 지난 14일 영화 <웅남이>가 최초 공개된 후 언론 및 평론가를 통해 다양한 리뷰가 나왔다. 그중 한 평론가는 <씨네21>을 통해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라는 평과 함께 별점 1개 반을 줬다.

그런데 이 평이 발화점이 됐다. 해당 문장이 일종의 계급 의식이 담긴 표현이라는 게 주였다. 언론은 물론이고 몇몇 영화계 인사들, 사이버렉카로 불리는 일부 유튜버들이 SNS나 자신의 채널에 사건을 언급하며 일이 커졌다.  

당사자인 이용철 평론가는 <씨네21> 등 여러 매체에 평론을 기고하고 있다. 특히 <씨네21>에 15년째 개봉 영화 관련 20자 평과 함께 별점 평가를 제공하고 있다. <씨네21> 20자평 중 최초로 별점 0개를 부여한 바 있고, 정치사회적 논평과 감정에 빗대 표현하는 문장들로 영화팬들 사이에선 개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번 논란 이후 직접 기자에게 연락해 <오마이뉴스>를 통해 입장을 밝히고 싶다고 요청했다. 2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박성광 뿐 아니라 영화 일 하는 분들에게 사과"
 

- 이런 자리를 요청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우선 공개 사과하고 싶었다. 특정인 관련 오해가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 특정인이 저와 같은 일반인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만, 박성광 감독은 연예인이니까 그런 오해가 남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22일 새벽 박성광 감독의 선배 개그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박 감독님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일이 제 의도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어서 공개적으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오해라면 어떤 오해인가.

"오해도 오해지만 사과를 하려는 것이다. 제 표현 자체가 그렇게 보였다면 제가 잘못한 것이다. 그 문장을 쓴 사람으로서 미안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박성광이라는 신인 감독뿐 아니라 영화 일을 하는 다수의 분들에게도 사과하고 싶다."
 
- 그 오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 부탁드린다. 

"제가 긴 비평도 쓰지만 20자 평엔 많은 말을 담을 수 없다. 이번엔 너무 많은 걸 그 한 줄에 담으려 한 것 같다. 표현 자체가 세긴 하지만 특정인을 비하한다거나 특정 직업에 계급적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고 쓴 게 아니다. 하지만 주변 분들, 심지어 지인들 의견을 들어보니 그렇게 읽힌다고 하더라. 아, 그렇다면 내가 잘못 표현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됐다."
 
- 그렇다면 해당 문장엔 정확히 어떤 의도를 담고 싶었던 건가. 

"크게 두 가지였다. 저도 평론가로 일하기 전에 일반 기업에서 10년간 일하다가 이쪽에서 25년 정도의 경력을 쌓았다. 이쪽에 와서도 (영화 관련 글을 쓴지) 8년이 지날 즈음 평론가라는 직함을 갖게 됐다. 하지만 전문 직업인으로서 한 경계를 넘어서 독자와 만나고 관객과 만나는 건 다르다. 예를 들어 당장 내일 제가 개그 프로에 나간다고 해서 개그맨이 될 수는 없듯 말이다. '만만하다'라는 표현의 어감이 좀 그랬을 수는 있겠지만, 한 분야를 월경할 때는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엔 변함은 없다.
 
또 하나는 한국영화산업의 위기와 관련한 거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 위기가 온 것엔 만듦새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웅남이>의 경우, 한국에서 가장 큰 배급사(CJ CGV)를 통해 공개되었다. 거기서 배급을 맡는다는 건 어지간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며, 상업영화라고 해도 제작 규모나 만듦새를 인정받는 극히 몇몇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올해 거기서 배급된 한국 극영화라고 해봐야 몇 편 되지 않는 건 그래서다. 기회를 얻는 극소수의 영화만이 선택된다는 것은 그만큼 선택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뜻도 된다. 기업 입장에서 나름 기준이 있겠지만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과연 <웅남이>가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는 한국 극영화 가운데 그럴 만한 위치에 오른 작품일까, 여기서 질문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시장과 산업에 대해 얼마나 방만한 태도로 임하고 있는 것인지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

- CJ CGV를 비판하는 의도가 컸다고 해석해도 되는지.

"특정 회사라기보단 영화 산업 자체가 피폐해져 있고, OTT로 작품이 넘어가는 상황이잖나.  그 직업을 계속하려면 이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이런 때에 좋은 한국영화가 나와도 모자랄 판에 관객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영화가 계속 걸린다는 게 문제라고 봤다. 그게 계급적 시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평론가가 개그맨을 하대할 이유가 없다. 제 표현에 개그맨분들이 집단적으로 화가 났다는 말을 들었다. 오해를 살만하니 그럴 수 있겠다 싶고, 일반인들이 화를 내는 것도 뭐 그러려니 한다. 행복하지 않은 삶에서 그냥 화풀이하는 것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몇몇 영화업계 분들이 비아냥거리더라는 반응을 전해 들었을 때는 안타까웠다. 스스로 되돌아 보자는 뜻이었는데, 만듦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거였는데 개그맨에 대한 선민의식이 있다고 해석한다면 슬픈 일이다."
 
- 22일 새벽에 연락왔다는 해당 개그맨과 어떤 대화를 나눴으며, 지금의 설명대로 생각을 전했는지.

"(해당 개그맨은) 2020년 제가 게스트로 출연했던 프로의 진행자였다. (전화와서) 저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사실 한국이든 해외든 희극인을 바라보는 오랜 편견이 있는데 당사자들은 그걸 더 느끼는 것 같다. 지금처럼 이야기 했다. 근데 왜 자꾸 사람 아프게 해놓고 변명만 하냐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아, 공개적으로 사과해야겠다 싶었다. 정말로 그 문장을 쓸 때 그렇게 읽힐 줄 상상 못 했다. 나름 마지막 단어는 제 딴에는 섬세하게 쓴 건데 이젠 변명 못하겠다.
 
사실 박성광 감독을 2020년에 만났었다. 술자리나 차를 마시는 자린 아니었고 본인 영화를 봐달라며 의견을 묻는 자리였다. 단편 두 편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개그맨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정도로 탄탄하더라. 물어보니 영화 연출을 전공했더라. 계속 작업하실 거냐 물었고, 장편을 만들 거라고 하시기에 잘 준비하시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그분 경력도 모르고 폄훼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 이번 작품이 아쉽다면 본인의 데뷔 욕망, 목표만큼은 잘 안 나온 거였다."

"표현에 더 조심하겠다"
 
 영화 <웅남이> 관련 이미지.
영화 <웅남이> 관련 이미지.㈜영화사 김치
  
- 박성광 감독이 한 줄 평을 보고 한 인터뷰에서 "평론가분들이 절 싫어한다. 저는 천재가 아니다. 훌륭한 사람도 아니다.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살아야만 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반응했는데 혹시 아시는가.

"다른 분이 보여줘서 봤다. 가장 마음 아픈 게 평론가들이 자길 싫어한다고 한 대목이었다. 절 포함해서 다른 분들까지 확장되도록 한 게 미안했다. 저도 개인적으로 아는 감독들이 있다. 사람인지라 선호도는 있을 수 있지만 사석이 아닌 공개적으로 특정 개인에게 감정을 싣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님을 잘 안다. 심지어 박성광 감독은 이미 만난 분이고 잘 되길 바란다는 말까지 했는데 말이다. 
 
<씨네21>을 통해 사과할까도 했지만, 우리끼리 변명하는 것 같아서 믿을 수 있는 다른 기자와 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씨네21>에도 엄청나게 항의 전화가 온다더라. 자기들이 게이트 키퍼(편집과정에서 사실관계나 표현 등을 검증하고 수위를 조절하는 것) 역할을 잘 못했는지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더라. 저도 표현법에 있어 더욱 신중하게 임해야겠다. 사실 20자 평 초반 때야말로 신중하지 못했던 시기지. 그때 욕도 많이 들었다. 표현에 있어서 더욱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 혹시 박성광 감독에게도 직접 사과했나.

"아까 언급한 개그맨이 박성광 감독과 아주 친한 사이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여리시고, 저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들었다. 심지어 무서워한다고까지 하시더라. 그래서 더욱 이렇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 그간 한 줄 평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 한 줄 평을 쓰는지 궁금하다.

"평론계에서도 단평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있다. 모 감독으로부터 자기 영화에 한 줄 평을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20자 평의 한계를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긴 글을 안 읽는 시간이 오래 지속됐고 이젠 단평의 가치가 일정 부분 고정화된 것 같다. 이번에 보니 이용철이 긴 글을 쓴 적 있냐는 반응도 있더라. 그만큼 20자 평의 영향력이 큰 것 같다. 그게 한편으로 힘들기도 하다. 일주일에 네다섯 편의 20자평을 보내야 한다. 
 
개인적으로 평론은 에세이와 같은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분은 딱딱하고 기계적인 글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전 문학 장르라고 본다. 그래서 이왕이면 아름다운 문장이면 좋다고 생각한다. 근데 제가 20자 평을 가장 길게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영어나 기호로 쓴 적도 있고, 글자 초성만으로 적었다가 통과가 안 된 적도 있다. 
 
결국 제가 쓴 거니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분량이 한 줄이라고 쓰는 과정 자체가 짧진 않다. 영화 보는 내내 생각할 때도 있다. 이번에 <파벨만스>를 볼 때도 너무 좋아서 보는 내내 한 줄 평을 더 고민했다. 그만큼 즐거우면서 고통이기도 하다. 가끔 지인에게 의견을 물을 때가 있는데 매번 그럴 수도 없고. 이번 경우처럼 저 혼자 생각하다 보내면 사고가 날 때가 있다. 앞으로 자중하고 신중하게 하려고 한다."
박성광 웅남이 이용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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