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웅"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라힘은 장인 바람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다. 그런 그는 이틀간의 귀향휴가를 받는다. 아들 '시아바시'를 의탁한 누나의 집으로 향한 그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재회하지만 아들은 누나 가족과 썩 잘 어울리지도, 아빠와 가까워보이지도 않는다. 알고 보니 시아바시는 긴장하면 말을 심하게 더듬는 언어장애가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하는 아들은 태블릿으로 게임하는데 골몰하느라 라힘을 불편하게 만든다. 시아바시가 겪는 문제는 아빠 라힘이 처가에서 절연을 당하다시피 불편한 관계인 데다 수감 중인 상황과 곧바로 연결되는 느낌이다.
라힘에게는 출옥 후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가 있다. 둘은 차 안에서 긴요한 이야기를 나눈다. 실은 여자 친구 '파르크혼데'는 일주일 전에 금화가 가득한 여성 지갑을 길에서 습득했다. 둘은 이 금을 팔아서 장인에게 빚을 변제해 감옥에서 나올 궁리를 논의한다. 둘은 함께 금 환전소에 들러 습득물의 가치를 확인한다. 채무액의 절반 정도는 되는 규모다. 이 정도면 장인도 솔깃할 만하다. 그런 기대감에 라힘은 매형과 함께 장인을 찾아가 교섭해 보지만 전처나 장인이나 그의 제안에 냉랭하기만 하다. 절반을 갚고 출소하면 일을 해서 빚을 갚겠다는 라힘의 제안을 그들은 신용하지 않는 표정이 역력하다.
기운이 빠진 라힘은 여자 친구와 대화하던 중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그는 은행에 가서 분실물 찾는 이가 없는 지 알아보고 열심히 전단지를 거리에 붙여가며 주인을 찾는다. 하지만 다음날 교도소 복귀를 해야 할 처지에다 휴대전화 사용도 그 안에선 당연히 안 되는지라 교도소 번호를 연락처로 기재해둔다. 며칠 후 지갑 주인을 자처하는 여인에게서 연락이 온다. 지갑을 맡아뒀던 누나는 주인이 맞는다고 생각해 지갑을 돌려준다.
그렇게 훈훈하게 마침표를 찍는 것 같았는데, 교도소 관리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라힘의 미담이 외부에 알려지자 방송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다. 교도소에선 자신들의 이미지를 향상시킬 기회로 보고 적극적으로 취재에 협조한다. 빚을 갚지 못해 수감된 상황에서도 유혹을 이겨내고 선행을 행한 평범한 '영웅'으로 사회적 화제가 되면서 라힘을 돕기 위해 자선재단도 나선다. 추가로 귀휴를 얻어 다시 가족에게로 향한 그는 이제 채무 변제를 통해 자유의 몸이 되고 새로운 출발을 맞이할 꿈에 부푼다.
영웅의 탄생과 몰락은 롤러코스터처럼
하지만 이제는 이혼한 상태인 전처 '나자닌'과 장인 바람은 라힘에 대해 여전히 불신을 거두지 않는다. 라힘의 사업실패로 인해 빚보증을 세웠던 처갓집은 거액의 빚을 대신 갚아야 했고 그로 인한 원한은 쉽게 사라질 리 없다. 처가에 진 라힘의 빚은 15만 '토만'(이란 화폐단위)에 달한다(우리 돈으로 3천만원대 중반의 상당한 거액이다). 라힘의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원재단에서 자선모금으로 모은 액수는 3만여 토만에 불과하다. 애초에 (금을 팔아 지불하려던) 반절을 일시불로 낸다고 해도 나머지 반을 라힘이 출소 후 과연 갚을 수 있을지 의심하던 장인이다. 하지만 자선재단 관계자들의 거듭된 종용과 안정된 일자리 제공 협조에 못이긴 척 장인은 자신의 입장을 누그러뜨린다. 이제 일자리만 구하게 되면 어렵사리 새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처가 식구들에 이어 또 다른 암초가 등장한다. 재단이 주선한 일자리는 국회업무와 관련되어 공신력 있는 데다 자신의 장기도 살릴 수 있다. 채무변제는 물론 새 출발하기엔 더 바랄 게 없는 꿈의 일자리인 셈이다. 하지만 부푼 꿈을 안고 찾아간 국회 인사책임자의 반응은 기대와는 180도 달랐다. 인사부장 '나딜리'는 라힘의 선행이 지인들의 증언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증명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노골적으로 라힘을 의심한다. 그는 선행을 증명하려면 금을 돌려준 당사자를 찾아오라고 종용한다. 금을 찾으러 왔던 여인을 태웠던 운전기사와 연락이 닿아 여인이 내린 동네 주변을 수소문해보지만 행방은 찾을 길 없다.
처음엔 소박했던 취지와 회심의 결과이다 보니 라힘은 세간에서 의심하는 사기극의 주범이라는 인식과 달리 정말 아무 대비도 해둔 게 없었다. 당시에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보니 당사자를 실제 만날 수도 없었다. 선의만 믿었던지라 혹시 훗날 발생할 사건에 대비한 연락처 하나도 준비해두지 않았던 라힘은 사람들의 의심에 증명할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라힘을 공격하는 익명의 제보가 여기저기 들쑤셔대기 시작한다. 주변 지인이 아니라면 쉽게 파악하기 힘든 라힘의 불리한 사정이 빼곡하게 유포되면서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던 여론은 하나 둘 라힘의 선행에 의구심을 품게 되다.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그는 절박한 나머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무리수를 기획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큰 곤경에 처하고 만다. 과연 라힘은 절체절명의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까.
단선적이지 않은 선악의 모호한 구도가 던지는 질문들
<어떤 영웅>의 기본 설정은 마치 19세기말 20세기 초, 미국 문학 2세대를 대표하는 동시에 현대 단편소설의 상징 중 하나가 된 오 헨리의 단편들 속 주인공을 연상하게 만든다. 특히 그의 유명한 단편 중 몇 작품은 우연히 거액을 얻게 되거나 금전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주인공들을 등장시키기도 하는 점에서 본 작품과 연결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 헨리 역시 20세기 초 미국에서 도시가 급속도로 사회의 중심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도시에 거주하는 (농촌과는 비교불가인) 다양한 인간군상에 주목하며 이를 성공적으로 묘사한 점에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이 주목해온 지점인, 이촌향도 현상이 심화된 지 오래인 현대 이란 도시민들에 관한 세밀한 스케치와 접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단편이다 보니 비교적 단선적으로 형상화되고 작가 특유의 필살 반전으로 개성을 얻었던 오 헨리 소설의 주인공들에 비해 이 영화 속 주인공 라힘은 좀 더 복합적이고 모호한 면모로 자신을 두텁게 감싼 존재다. 선행 과정은 관객에게도 별다른 은폐 없이 그대로 공개되며, 그가 주장하는 양심에 따른 결단은 진실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가 주장하거나 주변에서 증언하는 라힘의 선량함 역시 왜곡과는 거리가 멀다. 유혹에 흔들리거나 우유부단한 측면이 분명 있지만 영화에서 표현되는 라힘의 면모는 우리 누구나 경험할 법한 평범함은 물론 이를 조금 더 상회하는 선인으로 손색이 없다.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라힘의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 과거회상 플래시백 같은 시각적 이미지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 대신 오직 바람과 전처 나자닌의 입을 통해서만 라힘의 과거가 일방적으로 규정된다. 그래서 관객은 일단 라힘의 영화 속 선량함을 믿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을 불신하고 의심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라힘의 선의를 믿지 않는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가장 극명하게 라힘의 본성을 불신하는 장인 바람과 전처 나자닌 등 처갓집 식구들이다. 두 번째로는 라힘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권한을 쥔 국회 인사부장 나딜리다. 세 번째는 라힘에 대해 세세하게 알지 못하지만 곳곳에서 악성댓글과 진위가 불확실한 제보를 날려대는 익명의 얼굴들이다. 라힘이 가면을 쓰고 악한 본성을 위장하고 있다고 믿는 건 동일하지만 그 출발과 근거는 각자 상이하다.
우선 장인과 전처가 보이는 불신은 분명 나름대로의 '팩트'에 근거한다고 봐야할 테다. 라힘을 죄수로 전락하게 만든 원인인 사업 실패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끌어다 쓴 사채 전력이 처갓집 사람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뿌리박혀 있다. 선인으로 설정된 극중 라힘의 행적과 달리 과거의 그가 보였던 미덥지 못하고 지속적인 시행착오로 실망감을 안겼던 후과일 것이다.
얼핏 보면 바람의 태도는 비록 실패는 저질렀지만 갱생하고자 하는 라힘에게 너무 매정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가 자꾸만 용서를 종용하는 자선재단 사람들에게 울분에 차 항변하는 대목은 상당한 울림과 함께 관객의 공감을 불러올 만하다. 왜 자신을 피도 눈물도 없는 못된 채권자 취급하고 자신이 보증을 서는 바람에 겪게 된 고통은 누구도 신경 써 주지 않느냐고 바람은 맺혀 있던 한을 내뱉는다. 왜 라힘이 영웅이냐고, 성실히 살아온 자신 같은 평범한 사람은 왜 영웅 대접을 못 받느냐는 분노는 라힘을 영웅으로 만드는 게 필요했던 이들의 속사정과 맞물려 상당한 메아리로 돌아온다.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차가운 세상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