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작품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타의 모범이 되는 내용을 지향해야 하는가는 오랜 논쟁거리다. 모방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중적인 영향력이 광범위한 탓에 종종 사회규범을 벗어나는 인물 혹은 사건이 중심이 된 작품을 향한 잣대가 드리워지곤 한다. 최소한의 규제라는 의견과 '검열'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의견의 대립은 유구한 역사와 함께 거듭된다. '금서' 지정과 '분서갱유', '퇴폐 미술' 같은 역사적 사건에 관한 판단과 해석 역시 그렇게 나뉘게 마련이다.
최근 한강 작가의 대표작을 청소년 유해도서로 공공도서관에서 폐기한 사례가 논란이 됐다. 과도한 성적 표현 등이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과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의 작품을 공연음란물로 취급하는 게 합당하냐는 주장이 맞선다. 따지고 보면 아주 유서 깊은 논란이다. 일단 바르고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 실제로 효과가 있나 짚어봐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에서 긍정적이고 올바른 것으로만 채워진 작품이 과연 실제 효과가 있을까? 일단 재미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윤리 교화가 잘 될까? (교도소나) 군대에서 그런 이유로 도서나 방송을 통제하지만, 딱히 효과적이란 생각이 든 적은 없다.
'피카레스크' 구성이란 표현은 문학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다. 전혀 긍정적이거나 선하지 않은 주인공이 등장해 펼치는 이야기다. 물론 악이 승리한다는 식의 결말은 거의 없다. 대개 자신이 지은 죗값으로 비참한 종말을 맞거나 개운찮은 귀결로 흐르게 마련이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명제가 실제 현실에서 잘 입증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현실의 모순을 가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피카레스크 장르에선 현실의 비정함과 위선을 이중으로 폭로하는 순기능이 기묘하게 도출된다.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 역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영화 중 하나다.
어느 연쇄살인마의 78일간 행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