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룸 넥스트 도어> 스틸컷
워너브라더스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 주연의 영화 <룸 넥스트 도어>가 개봉 3주차를 맞이했다. 국내에서는 메가박스 단독 개봉을 감행해 '좁고 긴' 상영을 이어가고 있는 작품으로, 오랜 친구 '마사(틸다 스윈튼)'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죽음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여정에 동참하는 '잉그리드(줄리안 무어)'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가 이미 몇 번이고 나온, '존엄사'를 이야기하는 다른 작품들과 어떻게 차별화에 성공했는지 알아보자.
죽음은 색으로 가득하다
대부분의 존엄사를 주제로 다룬 영화는 커다란 '설정'으로 시작한다. 정부가 노인들의 존엄사를 합법화했든가, 관련 기술이 상용화됐는 식의 큼직한 세계관이 주인공의 죽음 뒤에 자리한다.
<룸 넥스트 도어>는 그렇지 않다. 암 투병 중이던 마사가 지인을 통해 안락사 약을 구했다는 사실만이 덤덤하게 펼쳐질 뿐이다.
이는 영화가 한 사람의 마무리를 담백하게 펼쳐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 된다. 안락사를 둘러싼 사회적 반응을 산만하게 재구성하려고 애쓰는 대신, 영화는 마사와 잉그리드의 감정선에 초점을 맞춘다.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는 마사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지만, 며칠 간의 방문 끝에 마사가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자신이 죽을 때 옆방에 있어 줄 사람, 즉 자기 죽음의 목격자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하고, 잉그리드는 고민 끝에 이를 수락한다.
익숙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미련이 생길 것 같다는 마사의 말에, 둘은 시골의 넓은 별장을 한 채 빌리기로 한다. 그곳에서 잉그리드는 마사의 종군 기자 시절 이야기, 마사의 딸을 둘러싼 후회담 등 많은 이야기들을 묵묵히 들어 준다.
이 영화가 그저 덤덤히 죽음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만을 담은 것은 아니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별장 안에서도 은근한 신경전을 이어간다. 잉그리드는 죽음을 둘러싼 두려움을 서슴없이 표현하고, 틈만 나면 마사가 죽음의 선택을 재고하게 만들려고 한다. 한편 마사는 죽음에 관한 농담을 거침없이 던지고,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잉그리드가 다가올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게끔 돕는다.
잉그리드는 소중한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마사가 그렇게 쉽게 떠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마사는 그런 잉그리드의 간절함 역시 이해하고 있다. 완벽한 존중 속에서 펼쳐지는 이 '갈등 아닌 갈등'은 줄리안 무어와 틸다 스윈튼의 노련한 연기에 힘입어 극중 긴장감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낸다.
그렇기에 마사의 죽음으로 향한 여정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대표작 <내가 사는 피부>에서부터 이어진 담백하고도 다채로운 색감은 마사의 죽음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잉그리드와 마사의 재회와 갈등에 아름다운 시각적 세계를 덧입힌다.
<룸 넥스트 도어>는 자칫 무겁고 음울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삶의 끝을 이야기하면서도 말한다. 죽음은 색으로 가득하다고, 끝이 다가온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흑백 영화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마사는 고통 속에서 무엇도 즐길 수 없게 되었다고 잉그리드에게 불평하지만, 그런 그의 끝에 있었던 것은 원색의 옷과 청아한 풍경, 그리고 자연의 음악인 새소리였다.
개인의 끝, 사회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