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노라> 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쓰레기통에서 뜰채로 수채화 그림을 건질 수 있는 감독, 그게 션 베이커다. 노을빛을 응축한 듯한 색감과 미약한 것을 관조하는 연출법으로 여러 작품을 성공시켰다. <스타렛>,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그리고 올해 제77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노라>까지. 그의 작품에는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성 노동자'다.
성 '노동자'라는 표현은 어딘가 어색하다. 아직 '창녀'나 '걸레'로 보는 시선이 익숙한 탓이다. 성 산업에 대한 찬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쉽게 비인격화된다. 때론 그들을 조롱하는 일이 마치 사회 부정을 척결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그래서 션 베이커는 관객 앞에 한 여성을 세웠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무식한 여성을 마음껏 비웃어보라고. 과연 우리는 '걸레'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순교자일까.
문란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주인공 '아노라'는 성 노동자다. '애니'라는 이름을 걸친 채 클럽을 돌아다니며 호객 행위를 하는 모습은 불쾌감과 동시에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삽시간에 사람들을 살피며 손님을 고르고, 한두 마디에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전문 기술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신체적 만족감을 준다. 탁월한 소통 능력을 하필 성 산업에 쓴다는 사실만 빼면 아노라, 아니 애니는 성실한 일꾼이다.
그런 그는 러시아 부호 '이반'의 선택을 받게 된다. 1만 5천 달러를 주고 자신의 여자친구 행세를 해달라던 이반은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을 못 이겨 영주권을 얻고자 애니에게 청혼한다. 마약과 술에 취한 채 하루살이처럼 사는 이반의 고백을 애니는 받아들인다. 에둘러 돈 보고 결혼하는 거라고 하지만, 애니는 이미 사랑에 빠진 눈을 가졌다.
그들의 어설픈 신혼 일기는 한순간에 부서진다. 이반의 결혼을 알게 된 부모가 험상궂은 부하들을 파견한 것이다. 그들은 순식간에 신혼집을 헤집었고, 무려 영어, 러시아어, 아르메니아어를 섞어가며 애니를 '창녀'라고 깎아내린다. 저런 창녀가 감히 사랑을 할 리가 없다며 둘의 결혼을 '꽃뱀의 술수', '철없는 감정'이라고 비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