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킬러스> 스틸컷
㈜스튜디오빌
영화는 4개 '세그먼트(Segement)로 분할된다. 약간 분량 차이는 있어도 존재감이나 역할 구분에서 크게 차별화되진 않는다. 4명 감독은 각각 제 몫의 재료를 받아 경연하듯 풀이한다. 그 향연을 관객은 코스 요리로 즐기고 식사가 끝나면 품평하게 될 테다.
세그먼트 1. 김종관 셰프의 < 변신 Metamorphosis >
첫 번째 메뉴는 <폴라로이드 작동법>,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조제>의 김종관 감독이 맡았다. 추격자에게 쫓기며 등에 칼이 꽂힌 채 남자는 바에서 눈을 뜬다. 이 세상 영역이 아닌 것처럼 온통 새빨간 기운이 감도는 바에는 바텐더만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바텐더는 남자에게 칵테일을 건네고 마시자마자 동공이 열리며 알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된다. 제목 그대로 남자는 '변신'한다. 카프카의 단편소설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겪었던 그것과 차원이 다르게.
세그먼트 2. 노덕 셰프의 < 업자들 Contractors >
두 번째 메뉴는 <연애의 온도>와 <특종: 량첸살인기>로 입지를 다진 노덕 감독이 담당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원한을 품은 남자의 살인을 의뢰한다. 여자는 최대한 고통스럽게 살해해달라며 착수금 3억 원이 든 가방을 건넨다. 의뢰가 실행되면 3억 원을 추가 지급하기로 한다.
전문가로 구성된 '살인주식회사'와 의뢰인의 계약은 하지만 하청 및 위탁을 거듭하며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엉망이 되어간다. 6억 원짜리 계약은 1차 용역에 1억5천만 원으로, 실행을 맡긴 2차 용역에 3천만 원으로 눈 녹듯 규모가 줄어든다. 2차 용역이 재위탁한 3차 용역에 이르렀을 때는 선수금이 300만 원으로 줄었다. 3차 용역은 자신 못지않게 어리숙한 2명의 지인을 끌어들인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세그먼트 3. 장항준 셰프의 <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Everyone Is Waiting For The Man >
<라이터를 켜라>, <리바운드>를 연출했지만, 요즘 방송인으로 더 친숙한 장항준 감독이 오랜만에 앞치마를 두르고 팔을 걷은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가 메인 정찬이다. 1979년 늦가을 지방 어느 대폿집에서 모든 사건이 진행된다. 젊은 작부 홀로 있는 이 선술집에 신분을 숨긴 채 형사가 잠복 중이다.
그는 보름째 같은 시간에 이곳을 찾아 홀로 술을 마시며 주변을 탐색한다. 왼쪽 어깨에 수선화 문신이 있다는 정보 외엔 누구도 얼굴을 알지 못하는 연쇄살인범 '염상구'를 찾는 중이다. 형사의 '촉'으로 마침내 염상구가 이곳을 찾으리란 판단이 든 어느 밤,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세그먼트 4. 이명세 셰프의 < 무성영화 Silent Cinema >
1980년대부터 코리아 뉴웨이브의 일원으로 <개그맨>,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만들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형사>, < M >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 이미지 실험을 전개해온 이명세 감독이 참 오랜만에 연출로 명함을 내미는 4번째 메뉴는 <무성영화>다. 근미래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빈민과 범죄자, 난민, 온갖 추방자들은 도시 지하로 내려가 지하세계, '디아스포라 시티'를 형성한다. 해와 달을 볼 수 없기에 바깥과 단절된 시간이 흐른다. 사람들은 아주 작게 뚫린 틈새로 바깥 하늘을 엿볼 뿐이다.
단조로운 일상이 흘러가는 디아스포라 시티가 1000일째 되는 날, 두 명의 킬러가 이곳의 작은 바를 찾는다. 늘 저녁 6시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를 시키는 신원미상의 제거 대상을 추격해온 것이다. 외부 침입자 방문에 바에는 긴장이 감돈다. 뭔가 터져야 숨 막히는 적막이 끝날 수 있다.
고유의 색을 입히는 삼위일체 재료와 양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