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다른 나라 요리를 할 수도 있지만, 내 마음 속엔 항상 한국식 식재료가 있다. 항상 제 요리는 한국식 맛을 내는 걸로 돌아가더라. 저는 미국에서 자라서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이 없지만, 가끔 한국 식재료로 요리를 할 때면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재창조하는 느낌이 든다. 이 과정이 제게는 한번도 없었던 한국과 연결되는 방법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최후의 요리사 2인이 자신만의 요리와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권성준이 '나폴리 맛피아'가 되기까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화면 갈무리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화면 갈무리tvN

지난 16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우승자 권성준과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가 출연했다.

'나폴리 맛피아'라는 닉네임으로 화제가 된 권성준 셰프는 재야의 고수인 '흑수저'중 한 명으로 시작해 쟁쟁한 백수저 요리사들을 모두 제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하는 언더독 신화를 썼다.

방송에서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에 대해 "서바이벌이고 나이도 어린 편(1995년생)이다보니 경쟁했을 때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평소보다 좀 더 강하게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방송을 보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우승을 했지? 저 사람을 어떻게 이겼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또다시 나가도 우승할수 있을 것 같다"며 특유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흑백요리사> 신드롬에 힘입어 출연한 유명 요리사들의 가게는 현재 예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성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권성준 셰프 역시 부득이하게 하루 예약을 6명으로 제한해야 했다고. 3억 우승 상금에 대해서는 "가게에 더 집중하자는 의미로 상금을 바로 가게 옆 전셋집을 얻는 데 넣었다. 돈이 눈에 보이면 안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권성준은 서양 요리를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나폴리에서 유일한 외국인 유학생으로 활동하며 온갖 고생을 극복하고 요리를 배웠다. 초기에는 말도 잘 안통하는데다가 주방 경험도 부족해 욕을 먹기 일쑤였다고.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화면 갈무리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화면 갈무리tvN

권성준은 "이탈리아인들이 늘 입에 달고사는 말이 'Mai paura(겁먹지마라)'였다. 저 역시 그런 마인드를 탑재하고 살다보니까, 실제로 겁먹지 않고 하면 다 이뤄지더라"면서 긍정적인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보낸 기간은 1년 반 정도에 불과했지만, 압축된 경험과 열정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노력을 이어가며 '나폴리 맛피아'라는 닉네임까지 가진 실력파 셰프로 성장했다.

옆에 있던 에드워드 리는 "전 세계의 수많은 셰프들과 일해보면서 음식의 풍미를 만드는 셰프는 정말 많다는걸 안다. 권성준은 그걸 넘어서 이야기를 만들고 요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칭찬하며 "음식에 비전이나 경험과 삶을 담아내는 방식은 가르칠 수 없다. 그건 특별한 재능이다. 권성준은 젊은 나이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놀랍다"고 호평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권성준은 "가게를 찾아주시는 손님과 가족들에게 맛있는 기억을 선사해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미국에서 각종 사회구호활동에 적극 참여중인 에드워드 리는 최근 비영리식당 오픈을 준비중이라는 근황을 밝혔다.

"했던 요리는 하기 싫다" 에드워드리의 철학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한국명 이균)는 뉴욕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 세계적인 요리 경연 서바이벌 <아이언 셰프>에서 우승했으며 <컬리너리 지니어스>에 출연해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와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셰프계의 오스카라 불리우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2회나 수상했고, 2023년 미국 백악관 국빈 만찬 셰프를 역임하기도 했다.

에드워드 리는"방송이 이렇게 큰 인기를 끌 줄 몰랐다. 지하철을 탔더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다가오시더라. 이렇게 많이 사랑을 보내주셔서 정말 좋고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심사위원인 백종원조차 '에드워드 리는 경쟁이 아닌 심사를 보셔야할 분'라고 인정한 바 있다. 이처럼 탁월한 경력을 지닌 일류 셰프에게 '계급장 떼고 요리로만 승부한다'는 콘셉트가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화면 갈무리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화면 갈무리tvN

에드워드 리는 "이 쇼에 대해 처음 들었을때 한국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이라는 게 중요하게 다가왔다. 제 버전의 한국 음식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며 "<흑백요리사>에 참여하기로 했을 때, 한국 재료만 사용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제겐 정말 중요한 이유였고 스스로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요리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음식을 할 때 편하면 끝이다. 음식에 대한 사랑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음식을 바라볼 때 항상 퍼즐을 바라보듯이 한다. 했던 요리, 뻔한 요리는 하기 싫다. 죽을 때까지 이런 마인드로 살고 싶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식재료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베테랑 셰프로서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를 받는 상황에 기분이 상할 때는 없었을까. 그는 "아니다. 요리 경연도 결국 마음 속에서 이뤄지는 싸움이다. 심사평에 얽매이면 다음 미션까지 이어지며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된다. 어떤 감정을 느꼈더라도 바로 잊어버리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권성준은 에드워드 리 6시간 무한 두부 요리 미션과 관련해 "위에서 보고 소름이 끼쳤다. 단 1초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으시더라. 서바이벌을 하면서 경이로운 후광이 비치는 경험을 했다"는 소감을 남기며 극찬했다.

"더 나은 음식업계 만들어놓고 떠나고 싶다"

에드워드 리는 부모님의 권유로 뉴욕대 영문과에 진학했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어릴 때 한국 음식을 많이 만들어주셨다. 저도 그 음식을 먹고 싶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10~11세부터 내가 이미 셰프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재미교포였던 에드워드 리는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 이민을 갔을 때 가난한 환경에서 많은 고생을 겪기도 했지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근면함'이라는 덕목을 배우게 됐다고.

그는 "재미교포의 삶이란 굉장히 특수하다. 때로 그 삶이 힘들게도 느껴졌지만, 인생의 모든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그걸 통해 아름다운 음식을 만들어내려고 한다"는 삶의 자세를 고백하며 "솔직히 지금도 제 앞에 도마와 칼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2023년 백악관 국빈 만찬 셰프로 선정된 것에 대해 "그 순간은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지만, 어머니를 위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여기저기 자랑을 마음껏 하셨다. 어머니가 저희를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봐왔으니까. 그런 순간을 선사해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는 소감을 전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화면 갈무리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화면 갈무리tvN

20여 년 전 만해도 재미교포로 미국에서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드워드 리는 미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한국 이름 '균'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인이 되고 싶어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제가 한국인이라는 점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에드워드 리에게 열심히 요리를 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또다른 이유는, 자신이 한국 사람인가 혹은 미국 사람인가라는 고민도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이 없는 그에게 한국 식재료로 요리를 만든다는 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재창조하는 것과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에드워드 리는 "제게는 이 과정이 한번도 없었던 한국과 다시 연결되는 방법이다. 마치 판타지처럼 느껴진다"고 한국과 한국 음식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고백했다. 이어 그는 할머니를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을 다시 한번 먹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꿈이다. 할머니는 제게 음식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첫번째 분"이라고 회고하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 리는 "여성이든, 한국인이든, 흑인이나 히스패닉이든, 부엌에서는 누구나 환영받는다고 느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는 주방을 열어 250만 끼 이상을 제공했다. 켄터키 홍수 상태 때도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무료 음식과 물품을 나눠줬다. 앞으로도 제가 발을 들였을 때보다 더 나은음식 업계를 만들어놓고 떠나고 싶다"는 포부를 전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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