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Plastic)은 고분자 화합물인 합성수지의 일종으로, 열이나 압력을 가해 쉽게 모양을 바꿀 수 있는 물질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의 어원은 성형 혹은 가공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했다.

현대에 플라스틱은 한때 '신이 내린 축복'로도 불리우며 인간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도 얻으며 이제는 문명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던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두려운 존재로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4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는 '신의 선물인가 저주인가 플라스틱의 역습' 편을 통해 지구 환경과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플라스틱 위기의 현주소를 조명했다. 안윤주 건국대 환경보건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플라스틱의 등장

 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 ⓒ tvN


인류 역사에서 플라스틱이 최초로 등장한 건 1860년대다. 당시 유럽에서 당구공 제작에 주로 사용되던 녹나무에서 성분을 추출해 천연수지로 만들어진 셀룰로이드(Celluloid)의 개발에서 비롯됐다.

당시 유럽은 각종 공예품 제작의 원료로 사용되는 코끼리 상아를 확보하기 위하여 식민지인 아프리카 일대에서 무분별한 동물사냥과 학살 문제가 심각했다. 우연히 발명된 셀룰로이드의 등장으로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게 되면서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생산과 동물보호라는 두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동시에 불러왔다.

19세기 후반 2차 산업혁명은 플라스틱의 본격적인 발전을 불러오는 계기가 됐다. 1907년 '플라스틱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는 석탄에서 추출한 페놀을 활용하여 자연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최초의 인공합성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Bakelite)를 발명한다.

셀룰로이드와 달리 폭발하지 않고 강한 열에도 버틸 수 있는 베이클라이트는 이후 다양한 제품으로 제작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베이클라이트 덕분에 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제품을 제작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그동안 고급 상류층에게만 허용되던 제품들을 일반 대중들로 누릴 수 있게 됐다. 본격적인 '플라스틱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고, 베이클랜드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1935년에는 미국 최대 화학회사였던 듀폰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최초의 인공합성섬유인 '기적의 실' 나일론을 개발한다. 듀폰의 연구원이 장난삼아 플라스틱 물질을 유리 막대에 묻혀 돌아다녔는데, 플라스틱 물질이 실처럼 길게 늘어나는 현상이 나오는 것을 보고 플라스틱 합성수지에 긴 실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탄생한 나일론은 가볍고 따뜻하고 강한 탄성으로 비싼 천연섬유의 완벽한 대체품으로 자리매김한다.

초대박 난 스타킹

특히 나일론으로 제작된 제품이 초대박을 일으킨 것은 바로 스타킹이었다. 당시 실크로 만든 스타킹은 부유층만이 구입할 수 있었고, 그나마 무겁고 두꺼웠다. 하지만 나일론 스타킹은 다리가 비칠 정도로 얇고 투명하고 가벼워서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38년 제작된 나일론 스타킹 광고에서는 '나일론은 당신에게 상상 그 이상은 선물합니다'라는 문구를 내세우며 큰 화제를 일으킨 장면이 대표적이다. 나일론은 이후 칫솔, 스웨터, 수영복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패션산업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용되며 인기를 끈다.

1930년대 들어 석탄 대신 석유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플라스틱의 사용량도 급증한다. 탄소화합물인 플라스틱을 석유에서 추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산업을 선도한 미국에서는 대형 석유 기업들이 정유공장 옆에 플라스틱 화학 공장을 건설하여 대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또한 1940년대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며 각종 무기와 군사장비를 제작하는데 플라스틱 제품들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다. 미국에서는 플라스틱 제작이 필요한 나일론이 부족해지자 여성들이 나라를 위하여 스타킹을 기부하는 열풍을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은 인공 물질만으로 합성고무 생산에 성공하며 천연고무 생산량의 두 배에 이르는 대량생산 기술까지 확보한다. 이렇게 확보한 플라스틱 자원은 2차대전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바탕으로 전쟁의 승기를 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2차대전 당시 발전한 군용 레이더에도 플라스틱이 활용됐다. 독일과 전쟁을 치르던 영국은 높은 전압을 견디고 전류가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폴리에텔린(PE) 피복재를 개발하면서 레이더 성능이 크게 개선됐다. 그리고 이러한 레이더의 효과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독일 공군의 공습을 미리 파악하고 요격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영국은 폴리에틸렌을 군사용 비밀물자로 분류하여 철저하게 관리했을 정도다.

인류 최대인 대량살상무기인 원자폭탄에도 플라스틱이 활용됐다. 원자폭탄 개발을 추진한 미국은 강한 산성과 고온을 지닌 우라늄 가스를 담아낼 수 있는 강한 소재를 연구하다 듀폰사를 통해 약칭 '테플론(정식명칭은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을 개발해 내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테플론을 활용하여 완성된 원자폭탄은 일본에 두 차례 투하되며 항복을 끌어내고 기나긴 전쟁을 종결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플라스틱 상용화가 미친 영향

 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 ⓒ tvN


이처럼 전쟁을 거치며 확장된 플라스틱 종류와 대량생산 시스템은 이후 인간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로 자리매김한다. 플라스틱 합성 섬유로 다양한 각종 생활용품과 산업용품이 제작되고 합성 섬유와 고무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플라스틱이 상용화되면서 1950년대 들어 관리가 편하고 가격이 저렴한 인조 직물의 등장은 인류의 '패션문화'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폴리에스테르에 이어 아크릴이 등장하면서 오늘날 인류가 착용하는 의류의 대부분은 합성 섬유로 만들어지게 된다. 플라스틱 합성 섬유가 천연섬유를 대체해 의류시장을 장악하는 시대가 열렸다. 또한 1969년 인류 최초의 달착륙 당시 사용된 우주복을 제작하는 데도 무려 21개의 플라스틱 물질이 포함됐다. 플라스틱의 발전이 인류의 일상을 바꾼 것을 넘어서 미지의 세계로 '새로운 도전'까지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준 장면이다.

이어 플라스틱은 식문화의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파손 위험이 높은 유리나 음식이 상하기 쉬운 종이에 비하여, 플라스틱을 통하여 다양한 주방용기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식제품의 보관. 유지, 운송이 용이해졌다. 가벼움과 휴대성을 갖춘 플라스틱 페트병의 등장은 음료업계의 폭발적인 성장과 발전을 끌어냈다. 플라스틱 용기와 포장재의 발전은 곧 식문화와 식품산업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스틱은 주거환경의 혁신을 끌어내는데도 기여했다. 특성 때문에 석재와 목재에 비하여 가볍고 뛰어난 내구성과 저렴한 비용과 우수한 품질까지 두루 갖춘 플라스틱은 창문틀과 벽지, 배수관, 바닥재, 전선피복 등에 널리 사용됐다. 디자인과 인테리어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금도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의 20% 이상이 건축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처럼 현재 플라스틱은 오늘날에 이르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물질'로 자리 잡는다. 2019년 기준 플라스틱의 전 세계 생산량은 4억 6000만 톤으로 70년 사이에 300배 이상 증가했으며 이는 전 세계 인구의 무게 총합과도 거의 맞먹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오늘날의 플라스틱은 전 세계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불러오고 있다. 플라스틱 때문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쓰레기 문제는 전 세계 곳곳에서 심각한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인도 뉴델리에는 18층 높이의 플라스틱 쓰레기 산에서 쓰레기가 썩으면서 자연 발화해 큰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가나의 한 시장에서는 버려진 의류들이 넘쳐나며 인하여 인근이 하천이 쓰레기 강으로 오염됐다. 쓰레기 강 인근에서 먹이를 찾던 한 배고픈 소는 긴급수술을 받은 결과 위에서는 무려 90kg 가량의 옷 쓰레기가 발견되어 충격을 안겼다.

이처럼 지구에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년 4억 톤 가까이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스틱의 장점인 내구성과 강인함은, 쓰레기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자연적인 물질과 달리, 절대 썩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 ⓒ tvN


플라스틱이 썩는 데는 약 5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여 이는 인류 최초로 개발된 1900년대 초의 플라스틱도 아직 썩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플라스틱은 소각하면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같은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유해가스를 배출하기에 불에 태우는 것도 쉽지 않다.

현대의 또 다른 플라스틱 현안은 '쓰레기 식민지 현상'이다. 선진국들의 쓰레기가 수출이라는 명목으로 후진국에 버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제조업을 명분으로 세계 최대의 쓰레기 수입국 역할을 해왔던 중국이 2018년부터 외국의 쓰레기 수입을 전면 금지하며, 그 여파로 개발도상국으로 가는 쓰레기의 양이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플라스틱은 해양오염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7년 미국의 국제요트 경주에 참가하던 찰스 무어는 북태평양 일대에서 해양쓰레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쓰레기섬(GPGP)을 발견한 모습을 공개하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쓰레기섬의 면적은 160km로 대한민국 영토의 약 16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였다. 현재 쓰레기섬은 북태평양 외에도 해류 소용돌이를 따라 무려 5개나 존재하며 그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쓰레기들은 해양생물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죽음의 알갱이'로 불리는 미세플라스틱이다. 이는 플라스틱 제품이 풍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5mm 이하의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들을 의미한다. 2019년 기준 바닷속 미세플라스틱 증가량은 171조 개 이상으로 추정되며 해류를 타고 북극이나 남극, 심지어 심해까지도 도달했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심해인 마리아나 해구에서 2020년 발견된 갑각류 생명체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을 정도다.

여기에 지상에서도 농업용으로 사용된 플라스틱 제품만 1250만 톤에 이르며 이중 절반 이상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고 그대로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미세플라스틱은 토양을 오염시키고 재배된 농작물에까지 악영향을 줄 뿐 아니라 강으로 흘러 들어가 하천 생태계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의 최종 종착지는 결국 '인간'이다. '원헬스' 이론에 따르면 사람과 동물, 환경의 건강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한 영역만 문제가 생겨도 나머지 역시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인간은 식사 섭취나 동물-환경과의 접촉을 통하여 자연히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매주 신용카드 한 장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다고 한다. 이 중 75% 이상은 배변화 호흡 등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체내로 배출되지만 몸에 남아있는 미세플라스틱은 이물질로서 다양한 염증이나 건강 이상을 초래한다.

올해 뉴멕시코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산모의 태반조직을 검사한 결과 복중 태아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연구진은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 생명체가 이미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됐을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남겼다.

오늘날 인류는 뒤늦게나마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연구를 하고 있다. 식물성 지방 등으로 구성되어 자연분해가 가능한 바이오매스 원료로 생산되는 바이오 플라스틱 개발, 플라스틱을 섭취하여 분해해서 배출해 내는 슈퍼웜 연구, 일상에서 일회용품 줄이기 생활화 등, 전문가에서부터 민간인도 우리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이 소화할 수 없는 쓰레기는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낸다"는 말은 태평양 쓰레기섬을 처음 발견한 찰스 무어가 남긴 어록이다. 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논하면서 가장 두려운 건 정확한 영향력을 아직 온전히 다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세대가 한평생 플라스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류의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 위험성과 부작용을 직접 체험하면서 플라스틱과 지구 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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