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투아니아> 무대

연극 <리투아니아> 무대 ⓒ 김효원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숲, 천천히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 오두막 안에 있던 가족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창밖을 내다본다. 그곳에는 한 청년이 서 있다. 망설인 끝에 문을 열자, 앞에 잘 차려입은 신사가 서 있다. 부자인가 아니면 도둑인가. 그는 왜 이곳에 왔을까. 냉소적인 눈빛이 오간다. 난로를 피워도 집 안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

연극 <리투아니아>의 시작 장면이다. 연극은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 루퍼트 브룩의 유작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힘 있게 그려낸 희곡이다.

무대장면 해설연극 <리투아니아>가 지난 8월 30일 31일 이틀 동안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 무대에 올랐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이 기획하고 사랑의열매가 후원하며 극단 옐로우브릭씨어터가 제작했다. 이번 공연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대장면해설이 포함된 연극이다. 무대장면해설이란 무대 위에서 시각장애인이 인지하기 어려운 걸 음성으로 해설해 시각장애인도 연극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돕는 서비스다.

연출가인 강수진 옐로우브릭씨어터 대표는 어릴 때부터 연극을 좋아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무대 연기에 자신 없다는 생각이 들어 MBC에 입사해 20대 중반까지 성우로 활동했다. 이후 연극을 공부하고 싶어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연극 연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번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과 협업해 시각장애인과 함께 보는 연극 <리투아니아>를 제작하며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무엇일까. 지난 8월 31일 연출가 강 대표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시각장애인 생각하며, 세밀한 소리 담아냈어요."

 연극 <리투아니아>를 제작한 연출가 강수진(옐로우브릭씨어터 대표)을 만났다.

연극 <리투아니아>를 제작한 연출가 강수진(옐로우브릭씨어터 대표)을 만났다. ⓒ 이호정


-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과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21살 때 시각장애인을 위해 녹음 봉사를 하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과 인연을 맺었어요. 유학 가며 잠시 연락이 끊어졌는데, 지난해에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죠. 시각장애인은 희곡을 접할 기회가 없기에 연극 실황을 녹음 파일로 제작해 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그런데 라디오 드라마처럼 만드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복지관 측에 제안했어요. 희곡 낭독극 3편(크리스토퍼 빈의 죽음, 굿 닥터,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이후 시각장애인과 일반인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연극 <리투아니아>를 만들었죠."

- 시각장애인을 위한 연극은 생소한데요. 일반 연극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연극을 제작하는 게 저도 처음이에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비장애인조차도 극장에 직접 가는 것이 번거로워 연극 관람을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많잖아요. 시각장애인은 공연장에 오기가 더 힘들 거로 생각했어요. 현재 시각장애인을 위한 연극이 거의 없어서 연극 관람에서 소외되고 있죠. 그래서 해설을 작품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여 넣고, 소리를 촘촘하게 채워 넣으려 노력했어요. 배우들이 무대에서 내는 숟가락 소리나 책상에 부딪히는 소리 등 세밀한 소리까지 담아내려 했어요."

- 여러 작품 중 <리투아니아>를 선택한 이유는요.
"시각장애인은 청각으로 감상하기 때문에 스토리라인이 강렬한 작품이 필요했어요. 들었을 때 바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다른 이유로는 리투아니아가 작가의 습작 같은 작품이라 중간중간 여백이 많은 점이에요. 오히려 그런 점이 해석의 여지가 있어 보여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 청각을 중시하기 때문에 원작과 다르게 설정한 부분이 있나요?
"기본적인 내용은 같지만 몇 가지 장면을 추가하거나 수정했어요. 처음에 손님이 혼자 걸어와서 문을 두드리는 장면, 딸이 2층으로 올라가 손님을 죽이는 장면, 마지막 손님의 독백 장면은 각색을 통해 새롭게 추가했어요. 중간중간 대사도 넣었어요."

"장애인과 예술, 함께할 수 있도록"

 연극 <리투아니아> 연출가와 배우들

연극 <리투아니아> 연출가와 배우들 ⓒ 강수진


- 무대장면 해설만이 아니라 연극에 참가하는 배우들이 성우가 많더라고요. 이 역시도 청각적인 부분을 고려한 건가요.
"네 맞아요. 전달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은 성우가 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럼에도 무대 연기를 정말 잘해주셨어요. 열심히 노력한 대가가 느껴졌죠. 완벽한 배우 같지 않나요?"

- 무대 디자인의 콘셉트는 어떻게 구상했나요? 제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현실적이고 열려 있는 공간을 원했어요. 숲 속에 있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갈대로 무대를 꾸미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 콘셉트를 바탕으로 무대를 구상했어요. 하지만 제작비에 한계가 있어 갈대를 충분히 사용할 수 없었어요. 무대가 빈약해 보일까 걱정됐죠. 수요일 밤에 도착한 갈대를 보고 걱정돼서 밤새 고민하다가 해 뜰 무렵에 새로운 구도를 떠올렸어요. 극장에 도착하자마자 무대 디자이너와 함께 배치를 수정했죠."

- 이번 연극에서 손님의 역할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요.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억눌려 있던 욕망이 분출되는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극 안에서 가난한 가족이 부를 과시하는 '손님'을 보고 죽이고 싶어 해요. 손님이라는 존재는 욕망을 촉발하는 계기인 거죠. 손님의 등장으로 등장인물의 숨겨진 본성이 드러나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고자 했어요. 이번 리투아니아 공연에서 고유한 해석이 가장 많이 들어간 인물이 바로 손님이에요. 손님이라는 인물이 여러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거든요. 관객 각자가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어요."

- 이번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불안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늘 고민하고 불안해 하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죠. 관객들에게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복지관에서 연습하다 작은 액자에 적힌 '희망을 품고 살자'라는 문구를 본 적 있거든요. 이 연극에 시각장애인도 문화 활동을 즐기며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앞으로도 장애인과 예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의 장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이호정, 김효원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시됩니다.

이호정 https://blog.naver.com/hojeonglee0925
김효원 https://blog.naver.com/sa__ppy
리투아니아 연극 무대장면해설 강수진 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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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교육원 취재기자 미디어 에디터 27기

한국잡지교육원 취재 기자 미디어 에디터 27기입니다. / az78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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