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민송아트홀에서 제9회 여성연극제가 시작했다. 9월 18일까지 진행하는 여성연극제는 여성 연극인들이 주체가 돼 연극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하나의 연극 축제다.

이번 연극제의 주제는 갈등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이해와 사랑의 씨앗을 뿌려 영향력을 피워내는 화합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 중 세대 간의 화합을 이야기하는 '세대공감전'에 선정된 연극 <기억의 지속>이 다가오는 오는 28일부터 9월 1일까지 5일간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 공연은 가족 간의 상처를 극복하는 치유연극으로, (사)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 김영미 대표가 작·연출을 맡았다. 1990년대 한국에서 '치유예술'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연극의 하나의 분야로 치유연극이 주목받았다. 일반 공연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치유에 대한 한 줄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에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공연은 아버지 병수발에 지친 '인화'가 한 아이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 아이는 가족들에게 상처 받은 어린시절의 인화였다. 어린 인화를 만나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 인화는 마음속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말에 상처 받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부모님도 보호자의 역할이 처음이고, 자식도 모든게 처음인데, 서툰 건 당연해 보인다.

가족 간의 이해와 소통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반영한 연극 <기억의 지속>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인화'와 '어린 인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상처를 극복하는 치유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화 역에는 가수와 연기자로 활동중인 배우 간미연이 맡았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연극을 통해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와 살아가는 의미를 관객들과 나누고자 한다.

여성연극제 세대공감전이 막을 올리기 전인 지난 19일 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 연습실에서 배우 간미연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이렇게 깊은 내면 연기는 처음"

 배우 간미연

배우 간미연 ⓒ 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


- 이번 연극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계기는 친분이었어요. 여기 출연하시는 배우 서반석님과 친해요. 이번 연극 출연을 권하셔서 대본을 받아봤는데, 사실 처음엔 고사했어요. 제가 해 왔던 연기와 결이 달랐거든요. 그런데 천천히 생각해보니 어릴 적 도전하지 않고 포기했던 것들이 떠올랐어요. 아쉬워했던 경험이 많았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도전해봐야겠다 결심했어요. 한번 해보자,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면서... 그런데 너무 힘들어요(웃음)."

- 배우로서 11년차를 맞이했는데, 깊은 감정선 연기를 처음 도전하시나요?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많이 서툴렀어요, 기본적인 발성 방법도 몰랐고... 첫 연극에서 목소리가 안 들린다는 혹평도 받았어요. 저를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아요. 소극적이고 잘 표현하지 못하는 제 성격이 공연에서 그대로 드러났죠. 그러다 뮤지컬 <록키 호러쇼>를 하면서 하나씩 내려놨어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지, 관객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더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제가 주로 했던 역할은 뮤지컬 <6시 퇴근>에 푼수 아줌마 서영미 역할처럼 가볍고 유쾌한 감정 연기였어요. 이런 깊은 내면 연기는 처음이에요."

- 인화는 어떤 인물인가요?
"인화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존재가 가족에게 불행을 가져왔다고 믿으며 살아온 인물이에요.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오빠의 죽음까지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죠. 인화는 결혼도 하지 않고, 노부모를 부양하며 자신의 삶을 희생시키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일지 몰라도, 내면에는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깊은 상처가 남아 있어요. 이번 연극에서는 인화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 인화와 간미연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화를 연기하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눈치 보는 성격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해서, 말투 하나에도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신경을 써요. 심지어 강아지의 눈치까지 볼 정도예요."

- 공연을 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이제껏 해온 작품들이 일상 연기를 주로 해서 깊은 내면 연기 경험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인화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걱정이 됐죠. 인화라는 인물은 굉장히 힘든 삶을 살아서 '나라면 이렇게 안 살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어요. 그러니 표현은 당연히 어렵게 느껴졌어요.

인화는 처음에 감정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특히 연극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오일영 배우와 합을 맞추는 장면에서 진짜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연기를 하다 보면 일화가 아닌 '간미연'이 튀어나올까 걱정 됐죠. 그렇지만 연기에 몰입하면 어느새 간미연이 사라지고 인화만 남아서 괜한 걱정을 했구나 생각했어요."

- 공연을 준비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기가 어렵다고 느꼈어요. 인화의 삶이 너무 힘들고 비극적이라, 저도 모르게 무거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치만 연습이 끝날 때마다 동료 배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됐어요. 특히 연출가님이 맛있는 걸 자주 사주셔서 다이어트에 실패할 것 같아요."

"도전보다 포기 많았던 지난 날... 돌아보며 용기 냈다"

 극단 우로보로스와 배우 간미연이 공연 작품 <기억의 지속>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극단 우로보로스와 배우 간미연이 공연 작품 <기억의 지속>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 최진욱, 황유진


-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나요?
"연극에서 인화의 오빠가 사고로 죽었을 때, 인화의 아버지가 인화에게 재수없는 아이라고 말을 해요. 그러면서 인화도 스스로를 재수없는 아이라며 자책하게 되는 장면이 있어요. 상처받은 인화에게 '사람을 망치는 건 실제가 아니라 생각이야'라고 말해주는 대사가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사실 실체하는 건 없었고 그저 '생각'에서 비롯된다 느꼈거든요."

- 인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시나요?
"이 역할로 관객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저마다 힘든 삶을 살고 계실 거예요. 인화와 비슷한 아픔이 있어 공감하고 치유 받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픔이나 상처는 대부분 닮았다 생각해요. 상처 많은 인화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관객이 본인의 아픔을 마주했을 때 자기성장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인화를 잘 표현해 볼게요."

- 배우 간미연의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는 삶을 살아갈 거예요. 도전보다 포기가 많았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용기를 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사랑 이야기를 다룬 연극도 해보고 싶네요 그리고 이번 작품이 끝난 뒤 시를 통해 노래를 만들어 공연하는 문화 콘서트도 하게 됐어요. 다 끝나면 낚시를 다니며 힐링할 거예요."

 <기억의 지속> 공식 포스터 사진

<기억의 지속> 공식 포스터 사진 ⓒ 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

덧붙이는 글 박영규·최소예·최진욱·황유진 시민기자가 공동 취재 후 작성한 기사입니다. 4명의 기자 블로그에도 각각게시됩니다.

박영규 https://blog.naver.com/urban_yeong
최소예 https://blog.naver.com/thyess
최진욱 https://blog.naver.com/wlsdnr137
황유진 https://blog.naver.com/ellison-
연극 간미연 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 기억의지속 김영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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