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계의 변방, 남쪽 끝 소도시 바다 마을 통영. 섬은 580개나 있지만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한 개도 없는 인디음악의 불모지 통영에서의 밴드 시작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나는 생활형 독립영화인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땐 편의점에 대한 영화를, 건설노동자로 일할 땐 건설 현장에 대한 영화를, 세계 일주를 할 땐 여행에 대한 영화를 만들며 살아왔다. 그러다 통영에서 밴드를 하게 됐다. 당연하듯 통영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인디밴드 이야기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난 2022년 제천 음악영화 제작 지원 프로젝트 피칭작으로 선정됐고, 2023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 예술영화 제작 지원을 받았다. 이후 모든 촬영이 통영에서 이루어진 독립영화 <듣는 건 너의 책임>을 완성했다. 영화는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 경쟁 장편영화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통영이 만든 노래

 밴드 듣는건너의책임

밴드 듣는건너의책임 ⓒ 유최늘샘


<듣는 건 너의 책임>은 2021년 통영 명정동 골목의 동네 책방에서 시작된 아마추어 인디밴드 '듣는건너의책임'에서 시작됐다(내가 속한 인디 밴드의 이야기다). 지난 3년 동안 만든 열두 곡의 자작곡과 밴드 멤버 일곱 명의 다사다난한 귀향, 귀촌 이야기를 음악 다큐멘터리에 담아냈다.

우리 밴드의 특징은 멤버 대부분이 각자의 노래를 작사, 작곡한다는 점이다.

2021년 3월, 미륵섬 달아마을 '767카페'의 베이커 박희진씨는 명정동 책방 '너의책임' 책방지기 홍겸선씨에게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 이후 개 한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의 집사이자 마을활동가인 김지혜씨에게 모임을 제안했다. 골목을 지나다가 책방에 놓인 기타를 발견한 내가 모임에 결합했다. 기타 모임은 곧 자작곡 밴드가 돼, 욕지면 우도에서 열린 제1회 섬마을 영화제 개막식의 공연을 맡았다.

이후 무전동 맛집 닭발각 대표 남준호씨(퍼커션/보컬), 안정마을 아로마테라피스트 김신혜씨(베이스), 아내를 따라 통영에 온 서울 사람 허예찬씨(피아노)가 가입해 현재 멤버 일곱 명이 됐다. 우리 밴드는 주로 통영과 경남 지역에서 활동한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전업으로 하지 않는다. 직업도, 출신도, 상황도 모두 다르지만 음악을 하겠다는 열정 하나로 모여, 바다 마을 통영에서 살아가고 있다.

노래 '굴농담'은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40년 째 굴을 까서 가족을 부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의 작은 섬'은 만지도, 매물도, 비진도, 사량도, 통영의 섬들에 빗대어 사랑의 그리움을, '블랑'은 산양면 출신 강아지와의 교감을 전한다.

 [영화 스틸사진 / 학림도에서의 뮤직비디오 촬영 모습]

[영화 스틸사진 / 학림도에서의 뮤직비디오 촬영 모습] ⓒ 유최늘샘


자신감으로 만든 노래

"정말 보잘것없는 음악이라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분들을 위해서, 아니면 나를 위해서, 아니면 우리 통영의 멋들어진 음악가들을 위해서, 우리 밴드가 조금 더 힘을 내서, 잘 유지되면 좋겠어요." - 밴드 멤버 박희진

"우리 이렇게 못하는데 음악 왜 계속하고 있지. 멤버들이 만들어 오는 음악, 처음에는 너무 괴로웠어요." - 밴드 멤버 홍겸선

통영에 놀러 왔다가 술자리에서 운명의 연인을 만나 통영에 살게 된 홍겸선씨는 지난 연말 공연에서 "음악이 상품화되고, 웬만큼 경쟁력 없으면 입도 떼지 못하는 세상에서 조용히 있는 건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음악을 만들고 있다. 몰라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고, '지구에서 하나뿐'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좌충우돌하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아직 정식 발매된 음원 하나 없는 3년 차 인디밴드다. 음악 실력에 대한 좌절, 창작에 대한 막막함, 멤버들 간의 의견 차이도 물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밴드는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 올해에는 음원 발매에 도전할 예정이다. 생애 첫 자작곡을 만들었던 순간의 기쁨을 잊지 않고 밴드를 함께할 때의 즐거움을 갱신하고 있다. 바다 마을 통영의 인디밴드 '듣는건너의책임'의 노래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영화 <듣는 건 너의 책임>에서 만날 수 있다.

올해 20회를 맞은 제천 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다. 오는 9월 5일부터 10일까지, 제천 예술의전당, 제천문화회관, 세명대 태양아트홀 등 7개의 상영관에서 열린다. 우리 영화 외에도 총 16개국 96편의 음악영화를 만날 수 있다.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포스터]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포스터]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독립영화 <듣는 건 너의 책임>의 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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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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