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제뉴스 면에서 며칠에 한 번씩 지중해를 통과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유럽 대륙으로 향하는 아프리카와 중동 난민의 구조 장면을 접한다. 이런 난민 문제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복지국가 시스템이 완비된, 즉 사람 살 만하던 서유럽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건 국내 정쟁에서도 툭하면 인용되는 이슈다. 실제로 유럽의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는 쟁점이기도 하다.

국내 여론은 대개 난민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이들을 무작정 다 받아줄 수 없지 않냐며 점잖게 외면하는 분위기다. 우리에게 그들은 그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숫자로, 심하게는 무임승차를 노리는 도둑 심보의 '가짜' 난민으로 여겨진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스틸 이미지 ⓒ ㈜팝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난민'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누가 봐도 할 말을 잃을 정도로 '피해자', '희생자'다워야만 한다. 이를 증명할 명백한 근거가 있거나, 한눈에 확 드러날 정도로 '선정적'으로 가련해야만 한다. 이런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일단 선을 긋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과정에서 겪은 고초를 눈물 콧물 섞어가며 호소하지만, 우리는 재판관이 된 양 그 진실 여부를 의심한다. 그런 가운데 종종 발생하는 비극-난민 어린이가 해변에 웅크리고 익사한 사진에 슬퍼하다가도 이내 원래로 돌아온다.

현재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거장'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감독 중 하나인 마테오 가로네는 난민 문제로 극우 정당이 집권한 자신의 조국에 영화로 소신을 밝히려 한다. 그 결과물인 <이오 카피타노>는 감독의 장기, 궤도에서 이탈할 틈을 엿보기 힘든 밀도 있는 구성과 촬영으로 주인공들의 고난 가득한 여정을 옆에서 지켜보듯 2시간을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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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이미지 ⓒ ㈜팝엔터테인먼트

 
지중해 난민, 발생부터 발견까지

서아프리카의 끝,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16살 세이두와 사촌 무사는 힙합을 좋아하고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노동하는 또래들이다. 무사는 사촌에게 함께 유럽으로 밀입국해 돈도 벌고 좋아하는 음악으로 스타가 되길 꿈꾼다. 몇 달간의 준비 끝에 가족 몰래 두 소년은 그 긴 여정에 뛰어든다.

일단 그들은 동쪽으로 직진한다. 세네갈에서 옆 나라 말리로, 다시 사하라 사막의 초입인 니제르로 향하려 한다. 말리 국경에서 이들은 위조 여권 업자를 만난다. 여권 가격은 1인당 100달러다. 이제 세이두와 무사는 말리 국적의 말릭 마라, 살리프 밤바가 된다. 여권 업자는 자신만만하게 안부를 전하지만 니제르 국경 경찰은 단번에 가짜 여권을 밝혀낸다. 이제 감옥이나 강제 추방이겠구나 하고 낙심한 소년들의 귓가에 경찰은 50달러 내라고 말한다.

그렇게 니제르에 들어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정거장에서 호객하던 브로커는 사하라 사막을 차로 이동해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까지 새 차로 데려간다며 400달러씩 내라고 흥정한다. 이탈리아까지 밀입국 풀 서비스는 600달러란다. 이들은 SUV에 콩나물시루처럼 매달려 사막을 횡단하지만, 약속과는 달리 중간부터 길잡이에 의지해 뜨거운 사막을 도보로 걸어야 한다. 게다가 리비아 국경에서 또다시 경찰의 검문(을 빙자한 약탈)에 돈을 뺏기고 사촌 무사는 끌려가 버린다. 홀로 남은 세이두 역시 리비아 범죄 조직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 노예로 팔려 간 덕분에 오히려 열심히 일한 공으로 풀려나 우여곡절 끝에 트리폴리에 도착한다.

천신만고 끝에 무사와 재회한 세이두는 함께 마침내 유럽으로 출발한다. 쪽배에 가득 탄 같은 처지 사람들과 함께 소년들은 망망대해를 항해한다. 과연 그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스틸 이미지 ⓒ ㈜팝엔터테인먼트

 
우리가 외면하려는 단면, 들추지만...

<이오 카피타노>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취한다. 전반부는 황무지를 무대로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바이벌 생존 물이라 해도 어색할 게 없다. 사하라를 배경으로 사하라 이남에서 사막을 횡단해 지중해로 향하는 무수한 난민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고 어떻게 살아남아 도착하는지 간접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의도다. 지중해를 건너 살아남았거나 막판에 고비를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익사체로만 발견되는 이들의 전사 (前史·pre-history) 격이다.

세이두와 무사는 공사 현장과 공장 등에서 고된 노동을 반년 동안 수행해 경비를 마련한다. 세네갈의 1인당 GDP는 1500달러 남짓이다. 그런데 여권 위조에 100달러, 니제르 경찰에 50달러, 브로커에 400달러, 마피아에 인질로 잡히면 800달러 몸값을 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여기에 먹고 자는 건 별도다. 게다가 리비아에서 배를 타려면 또 막대한 경비를 내야만 한다. 그래봤자 만원 버스나 트럭 짐칸에 포개지고, 조각배에 택배 상자처럼 접힌 채 실리는 신세다.

사방에는 그들을 등쳐먹거나 약탈을 노리는 범죄자와 군벌이 득실댄다. 차에서 추락하거나 사막 횡단에서 낙오되면 곧 죽음이다. 상징적인 수식어가 아니라 주인공들은 사막의 고혼이 된, 어쩌면 자신들과 같은 꿈을 꾸던 이들의 미라가 된 시신들을 숱하게 목격한다.

그들을 돕는 이들은 어디에도 없다. 양 떼를 둘러싼 늑대 무리처럼 사방에서 도적 떼가 창궐한다. 공권력도 믿을 수 없다. 오히려 총을 든 경찰과 군인이 더 위험해 보일 정도다. 저렇게 위험한 데 왜 굳이 길을 나섰냐고 책망할 수 있지만, 그들이 떠나온 땅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게 분명하다. 위험한 길을 나서게 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들이 살던 고향이 '실패 국가'에 가까운 데에서 기인한다.

이런 유형의 연출은 종종 '선정주의'로 흐르기 딱 좋다. 난민의 극한 체험과 고통을 형상화한다는 명목 아래 '빈곤 포르노'에 가까운 방식을 택할 유혹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대상이 직접 겪은 체험 위주로 풀어낸다면, 그런 소재를 극화한 드라마는 온갖 수난을 한꺼번에 버무려낼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이때 비록 픽션 속 인물일지언정 자신이 창조한 영화 속 세계의 피조물에 윤리적 잣대를 유지하는 건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대충 이제 반군이 들이닥쳐 주인공들을 괴롭히고 주변 인물 몇은 죽겠구나 하는 예상은 폭력과 선정성에 중독된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들이대는 오남용 사례일 테다. 그러나 마테오 가로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고모라>에서 보여준 것처럼) 폭력 연출에 대단한 솜씨가 있음에도 과용하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만, 실제 난민들이 겪게 되는 전형적인 고초를 관객에게 상상할 수 있는 만큼만 절제해서 보여준다. 이는 아류작들과 확실한 선을 긋는 대목이 될 테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스틸 이미지 ⓒ ㈜팝엔터테인먼트

 
그들의 이후를 상상하기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다행히 주인공은 목숨을 부지한 채 지중해의 관문인 리비아 트리폴리까지 도착한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몰려든 난민들은 리비아 사회의 하층민이 되어 곳곳에 그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삶을 이어간다. 세이두 역시 그런 이들에 섞여 들고, 천신만고 끝에 사촌 무사와도 재회한다. 하지만 밀입국 난민인 그들에겐 의료보험이 없다. 무사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과정에 총상을 입었다. 치료를 위해서라도 그들은 보건의료 제도가 건재한 이탈리아에 도착해야 한다.

세이두는 브로커와 흥정한 끝에 난민선을 운전하는 대가로 둘의 몸값을 감면받는다. 하지만 낡아빠진 배는 언제 멈출지 알 수 없고, 세이두는 수영도 할 줄 모른다. 날림으로 속성 교육은 받았지만, 아마추어에 불과한 그가 과연 지중해를 건널 수 있을까? 이제 관객은 지중해가 매년 수천 명의 난민을 집어삼키듯 그들 앞에 잔혹한 면모를 언제 드러낼지 조마조마하게 된다. 마침내 위험천만한 항해가 시작된다. 그리고 결말은 영화를 보고 확인하면 될 테다.

다행히 이들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에 출연한 덕분에 실제 난민 중 상당수가 겪는 고난보다는 2% 부족한 시련에 그친다. (이 대목에서 의외로 충격받는 이들이 꽤 있을법하다.) 그들의 철없는 여행을 화를 내며 만류하는 경험자 동네 청년, 행운을 빌어달라 했더니 조상신의 허락을 핑계로 출발을 막는 주술사, 어른의 경륜으로 아들처럼 보살펴주는 동포 아저씨 같은 이들이다. 영화는 사실주의적 연출을 기반으로 진행되지만, 유독 그들의 등장에선 초현실주의 판타지풍의 장면이 등장하곤 한다. 사막 한복판에서, 검푸른 망망대해 가운데에서 자신은 물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짊어지게 된다면 그런 마술적인 위로라도 찰나에 제공하고 싶지 않았을까.

제목인 <이오 카피타노>는 '내가 선장이다'라는 이탈리아어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그 의미를 절절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운 좋은 아프리카 소년의 고생 좀 많이 하긴 했지만, 성장물이라 칭해도 크게 어긋나진 않는 결말이지만, 그가 발을 딛게 될 이탈리아가, 한발 더 나아가 EU로 표상되는 유럽 대륙이 과연 그들에게 어떤 표정을 취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임산부를 구하기 위해 배를 멈추고 구조를 요청하는 세이두의 맞은편에선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탁구공 떠넘기듯 곤란해할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겐 피해를 감수하며 타인의 목숨을 지키려는 결단의 순간이다.

그런 이들이 항해를 재개할 때 환영처럼 등장하는 (부와 번영의 신기루처럼 묘사되는) 해상 정유시설의 불빛, 난민선 앞에 나타난 유럽 공권력의 상징 헬리콥터의 (끝내 화면에 보여주지 않는 승무원의 표정과) 대응은 감독과 제작진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과 이탈리아 사회에 '우리들의 민낯'이라 상징하는 필사의 이미지가 될 테다. 그걸 느꼈다면 감독은 할 일을 완수했다.
 
 영화 포스터 이미지

영화 포스터 이미지 ⓒ ㈜팝엔터테인먼트

 
<작품정보>

이오 카피타노 Io capitano
2023 |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 드라마
2024.08.07. 개봉 | 121분 | 15세 관람가
감독 마테오 가로네
주연 세이두 사르, 무스타파 폴
수입 (주)태양미디어그룹
배급 ㈜팝엔터테인먼트

2023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신인배우상), SIGNIS상, 매직 랜턴상
2023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유럽영화 관객상
2024 다비드 디 도나텔로 어워드
작품상, 감독상, 프로듀서상, 촬영상, 편집상, 음향상, 시각효과상
이오카피타노 마테오가로네 세이두사르 무스타파폴 이탈리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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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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