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욕> 포스터.

영화 <정욕> 포스터. ⓒ 해피송

 
검사 데라이 히로키는 일련의 사건으로 예전 신문에 실린 기이한 성욕의 정체를 접하지만 부정해 버린다. 한편 그는 아들 그리고 아내 때문에 골머리가 아픈데, 아들이 학교에 안 가고 유튜버가 되어 돈을 벌겠다는 포부를 당차게 밝힌 것이었다. 아내는 그런 아들의 생각에 동조하고 말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올바르다'고 믿는 히로키로선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류 나쓰키는 대형마트 가구 판매점에서 일하는데 성실하고 상냥한 편이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과 잘 어울리진 않는다. 그녀는 집에 가선 '물'을 상상하며 성적으로 흥분한다. 기이한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사사키 요시미츠는 삶보다 죽음을 바라고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란다. 그 또한 물에 성적으로 흥분하는데, 학창 시절 가깝게 지냈던 나쓰키를 다시 만나 결혼에 이른다. 그들은 서로만이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간베 아에코는 남자를 극도로 멀리한다. 이성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그런데 우연히 접한 대학교 댄스 동아리의 메인 댄서 모로하시 다이야에게 자기도 모르게 이끌린다. 정작 다이야는 이성을, 아니 사람을 멀리하는데 말이다. 사실 그도 역시 물에 성적으로 흥분하는 사람이었다. 하여 다이야는 아에코가 아무리 특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이끌린다고 해도 자신이 아에코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욕망의 소유자라는 걸 잘 안다.

올바른 욕망 Vs. 비정상적인 욕망
 
 영화 <정욕>의 한 장면.

영화 <정욕>의 한 장면. ⓒ 해피송

 
물을 보고 물을 상상하고 물과 함께 있을 때 성적으로 흥분하는 일명 '물 페티시'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 영화 <정욕>의 중심이 되는 소재이기도 한데,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꽤 다수가 존재한다니 자못 충격적이다. 그들은 사람에게선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한다. 하여 극 중에서 요시미츠가 말하는 것처럼 '지구에 잠시 놀러 온 것처럼' 느낀다. 누구 하고도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없으니까. 

'정욕'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무절제하고 쾌락적인 욕망 내지 이성을 향한 성적 욕망을 가리킨다. '올바르지 못한 욕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다른 뜻이다 '정욕'의 한자어가 '情慾' 아닌 '正欲'이다. 글자 그대로라면 '올바른 욕망'이다. 그런가 하면 영어 제목은 '(ab)normal desire'다. (비)정상적인 욕망, 뭐가 정상적인 욕망인지 정상적이지 않은 욕망인지 묻는 것 같다. 누가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 

영화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 중 히로키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또 요구되는 욕망의 삶을 살았다. 그는 이른바 '상식에서 벗어나는 욕망'은 말도 안 된다며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존재한다 해도 빨리 치워 버려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비정상적이고 또 올바르지 않은 욕망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영화는 6명의 주인공들이 나와 2명씩 짝을 지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주지했듯 히로키를 제외하곤 일반적이지 않은 욕망을 지녔다. 접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이 다수 출연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펼치면서도 전반적으로 잔잔한 편이니 누군가에겐 지루하기 짝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방대한 스토리에 깊은 메시지를 전하는 원작을 최대한 그대로 영화화하려 했으니 과부하가 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현대 일본 사회문화는 잘못되었다
 
 영화 <정욕>의 한 장면.

영화 <정욕>의 한 장면. ⓒ 해피송

 
영화의 원작 소설이 출간된 당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일본을 발칵 뒤집었다는데 영화만 봐도 충분히 그럴 만하다 싶다. 매우 정상적이고 올바른 것처럼 보이는 히로키는 다분히 현대 일본 사회문화를 상징하는데, 그가 비정상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 자체가 빙퉁그러졌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은 욕망을 지닌 채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현대 일본 사회문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 페티시 성향을 가진 나쓰키, 요시미츠, 다이야 등은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숨긴 채, 즉 자신이 오롯이 자신일 수 없는 상태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라면 응당 사람에게 성적 흥분을 느껴야 하거늘 어찌 사람 아닌 다른 대상에게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는가' 하는 명제가 지배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문제는 일본의 경우 특히 더 심하다는 데 있다. 일본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고였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테다. 

물론 일본의 문화적 전통에서 기인한 면이 클 것이다. 천재지변으로 죽음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고 군국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색채가 짙게 남아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근대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극 중에서 죽음을 가까이하는 요시미츠, 물 페티시 성향이 있는 이들, 남자를 극도로 멀리하는 아에코, 학교에 가지 않고 유튜버가 되고 싶어 하는 히로키의 아들이 모두 이해받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영화 <정욕>은 극단적이다. 영화적인 재미로 관객을 끌어들인 다음 자연스레 메시지를 습득하게 하는 게 아니라, 특별하고 문제적인 메시지를 1차원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영화가 목적이 아니라 철저히 수단이자 도구로 쓰였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볼 수밖에 없고 끝이 난 후 여운이 길게 남는 건 영화가 직접적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독의, 영화의 목적은 실현된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정욕 물페티시 정상비정상 죽음 현대일본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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