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을 연출한 김용완 감독.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을 연출한 김용완 감독. ⓒ 넷플릭스

 
'정치 도파민'이라는 수식어답게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의 낌새가 심상찮다. 국회 보좌관 출신 박경수 작가가 7년 만에 들고 온 본격 정치 드라마라는 점에서 화제기도 했고, 지난 6월 28일 공개 후 현실 정치인들 면모가 곳곳에 담겨 있다는 평이 나왔다. 시청 순위 또한 한국과 베트남 등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아시아 주요국가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2일 오후 만난 김용완 감독은 "소재 면에서 부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아무래도 드라마 초반부터 대통령 시해 사건이 등장하고, 검사 출신 총리에서 현직 대통령이 된 후 재벌 권력 개혁을 외치는 박동호(설경구)과 이를 견제하며 또 다른 신념을 지키려는 운동권 출신 정수진(김희애),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과 인물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돌풍>에 담긴 진심과 마음을 시청자들에게 오롯이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좋지 않았단 걸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담아"
 
< 추적자 THE CHASER > <황금의 제국> <펀치> 등 권력 3부작으로 두터운 팬층이 있는 박경수 작가는 2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낡아버린 과거가 현실을 지배하고, 미래의 씨앗은 보이지 않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오늘의 현실을 리셋하고 싶은 갈망을 담고 싶었다"고 변을 밝힌 바 있다. 약 2년 전 4회까지 대본이 나왔을 때 연출 제안을 받게 된 김용완 감독은 "박경수 작가님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이걸 털어내지 않으면 다음으로 못 나간다는 생각이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제안받았을 때 굉장히 부담이었다. 좋은 글과, 좋은 배우, 스태프들이 있는데 못 만들면 내 잘못이니까. 그래서 박경수 작가님과 첫 만남 때 굉장히 떨렸다. 제 스스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편이 아니라 어른에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시대보단 조금 후세대라 여러 책과 다큐멘터리 등 자료를 많이 봤다. 분명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촬영하면서 특정 작품을 참고한다는 얘긴 나눈 적 없다.
 
기획 단계 때부터 작가님이 칠판에다 이것저것 적으며 설명을 해주셨다. 하나의 사건에 얽힌 여러 일화들, 전 흥미롭게 들었다. 그리고 작가님 생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분이 말한 낡음이란 건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닌 부패하고 썩은 걸 뜻한다. 단순히 오래된 걸 타파한다는 게 아니다. 그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이 작품엔 우리가 택한 모든 역사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선택하며 우려했던 것들, 좋지 않았던 걸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의 한 장면.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돌풍>엔 신념으로 움직이는 인물과 욕망으로 움직이는 인물이 대립한다. 좋은 신념을 지녔고 강한 의지가 있었던 박동호와 정수진은 결국 이야기 후반으로 갈수록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몰락해간다. 그들이 개혁하고자 했던 재벌 권력,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혐오를 <돌풍>은 꽤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박경수 작가는 "욕망보다 신념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욕망은 법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신념은 통제마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김용완 감독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고 한다.

"신념과 욕망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잖나. 근데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차이지. 현실에서 욕망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욕망이 신념 자체일 수도 있다. 박동호는 후자였다. 정수진은 남편 한민호(이해영)라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신념을 바꾸기도 했고. 여의도 구미호인 박창식(김종구)도 보수의 좌장 조상천(장광)도 다 신념이 있다. 드라마는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풀어내고 있다.
 
작가님 말처럼 몰락해가는 박동호를 구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작가님도 어려워 한 캐릭터고 연기하신 설경구 선배님에게도 그랬다. 보좌관 정연(임세미)이 그러잖나. 이렇게 우리가 열심히 정치하는데 왜 사람들이 몰라주냐고, 그때 박동호가 그런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닌 날 위해 정치하는 것'이라고. 그 대사가 충격적이었다. 어떤 정치인도 그런 말을 하지 않잖나. 너무 솔직하면서도 명료한 그 말이 동호의 진정성이었다.
 
박동호의 선택이 불편하다는 시청자도 계실 것이다. 말대로 우린 몰락으로 가는 인물을 주인공 삼았잖나. 드라마를 볼 때 주인공을 좋아하면서 보는 사람이 있고,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궁금해서 사유하는 드라마가 있다. 돌풍은 후자라고 생각한다. 박동호를 아름답게 그려서 신격화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설경구 선배도 '나 죽어?' 하시며 결말을 궁금해했다. 촬영 중에도 작가님이 계속 후반부를 쓰셨다. 작가님과 여러 회의를 하면서 정리해 갔다. 결말이 나왔을 때 마음이 참 아팠다. 그런 선택이 숭고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당신이 만든 미래가 역사가 되지 않길'
 
현재까지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여러 현실 정치인이 언급된다. 제작진은 '그 어떤 해석도 시청자 몫'이라고 열어두며 구체적 답변은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시해 사건이나 권한 대행의 광폭 행보는 1952년 이승만을 저격하려 했던 독립운동가 유시태와 그를 도운 정치인 김시현을 떠올린다는 해석이 있고, 장일준 대통령(김홍파)을 두고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보인다는 분석도 보인다. 특정 인물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순 없어도 제작진의 시각에 현재 대한민국의 흐름은 정반합 진보의 역사였는지, 퇴보의 역사였는지 궁금했다.
 
"역사라는 건 결국 해석의 차이 같다. 크게 보니 정반합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누군가는 또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 장준일이 변하는 모습에 반기를 들며 박동호가 했던 '당신이 만든 미래가 역사가 되지 않길 바란다'는 대사다. 이 대사처럼 지금이 만족스럽다며 안일하게 대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반합인지 반반반인지는 한 끗 차이지 않을까. 결과론적 해석이 어떻든 현실이,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동호가 비극적으로 몰락했지만 그런 세상을 바랐고, 작가님 또한 그런 마음을 담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런 희망으로 사회 문제를 대한다면 조금 더 좋은 미래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용완 감독은 대진그룹 부회장으로 등장하는 배우 김영민을 비롯해 이야기 곳곳에서 활약하는 크고 작은 캐릭터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말 훌륭하신 배우들이 포진해 계시다"며 "쓸 데 없는 긴장감 없이 선배님들이 현장 분위길 항상 좋게 만들어주셨다"고 존경심을 표했다.
 
오랜 시간 연출부로 조감독으로 영화일을 하던 김용완 감독은 <챔피언>(2018)으로 대중 영화 감독에 데뷔한 이후 <방법> 등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사실 그전까지 <이 별에 필요한>(2013) 같은 귀엽고 발랄한 로맨스 영화를 주로 찍기도 한 영화인이다. 장르적으로도 꽤 넓은 폭을 보이고 있는 그는 이후 어떤 바람이 있을까.
 
"로맨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계속 시나리오를 쓰다가 팔씨름 영화(<챔피언>)로 데뷔했다. 사람일은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걸 알았다(웃음). 계속 쓰고 있고, 계약 단계인 것도 있는데 당장은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당장은 어른들의 이야길 했으니 좀 부드러운 이야길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지금 영화계가 너무 어려운데 그럼에도 한국영화는 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돌풍> 전까지 저도 한국 정치에 실망했고, 환멸이 있어서 안 보게 되는 것도 있었다. 스스로 반성하게 됐다. 적극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어도 현실 정치에 발붙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내 아이가 있고 그들의 미래가 있잖나. 돌아가는 현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 많은 분들이 이 드라마를 보시고 정치 혐오나 환멸이 아닌 어떤 흥미를 느끼셨으면 좋겠다."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의 한 장면.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돌풍 넷플릭스 김용완감독 설경구 김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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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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