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랜드>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장편 영화만으로 13년 만이라지만 감독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간 꾸준히 단편 연출과 기획, 무대 감독 등 작품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중영화로 <만추>(2010)극장에서 오롯이 김태용 감독의 인장을 만끽하고 싶은 관객 입장에선 오랜만인 건 사실이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원더랜드>는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SF라는 장르적 틀이 결합한 작품으로 여타 기대감을 받아 왔다.
결과물을 보면 AI(인공지능)를 소재로 한 일종의 휴먼드라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고고학자(탕웨이), 그리고 식물인간이 된 연인(박보검)을 그리워한 이(배수지)가 원더랜드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며 가족과 연인에게 생동감 있을 때 모습 그대로 소통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움을 이용한 일종의 상품인 셈. 여기엔 김태용 감독이 꽤 오랫동안 품고 있던 과학기술 관련 본질적인 질문도 담겨 있었다.
영상통화 너머에서 감지한 실존 문제
알려진 대로 처음 기획의 시작은 영상통화였다. 배우 탕웨이와 결혼 후 한국과 베이징을 오가던 김태용 감독은 아내와 통화하던 중 실재한다는 개념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영상 통화 너머의 상대방이 진짜로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 이후 지금의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 여기에 평소 과학 기술에 감독 개인이 갖고 있던 호기심도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어렸을 때 장래희망을 과학자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 영어보단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고, 과학 지식이 풍부하진 않지만 언젠가 과학 관련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해왔었다. 다만 이번 영화의 시작은 SF 원작 소설이 있다거나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닌 인간의 관계에 집중해보자는 취지였다. 물론 이 영화엔 SF적 상상이 있고, 가정이 있고 관련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전면에 드러나진 않는다.
초반에 시나리오를 쓰고 준비할 때 AI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진 모르겠지만 먼 미래로 가지 않길 원했다. 보폭이 우리 실생활과 비슷한 정도였으면 했지. (인공지능 학자) 김재식 교수와 여러 얘길 하면서 사람의 의식을 업로드할 수 있다는 자문도 받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 얘기처럼 느낄 것 같진 않았다. 근데 얼굴과 표정, 목소리를 재현하는 건 수년 안에 가능하다더라. 이 영화 개봉이 늦춰지면서 긍정적으로 보면 딱 지금의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가 된 셈이다."
김태용 감독은 과학자들의 자문을 받고 논문을 보면서 기술 자체에 함몰되는 게 아닌, 해당 기술이 상용화 된 근미래의 일상을 다루고자 했다. 특히 생김새보단 목소리가 비슷할 때 사람들은 진짜라고 느낀다는 연구를 보면서 힌트를 얻었고, 뇌가 사고하는 특징을 살피며 현실감을 더했다.
"AI 혹은 기계와 어느 정도 감정 소통이 가능할까. AI 기술은 인간의 뇌를 연구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들었다. 뇌과학자들이 많이 얘기하는 게 사람의 뇌는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이미 벌어진 일을 인식하는 데에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것이다. 유명한 실험이 있잖나. 면접관에게 무거운 짐을 들게 하고 면접을 보게 할 때랑 그렇지 않을 때 똑같은 답을 하게끔 하면 점수 차이가 난다는 것 말이다. 결국 인공지능은 관계이고 감정의 문제라 감정적 변화가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영화에 반영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