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살아있는 모든 것>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살아있는 모든 것>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한참 일본 영화가 화제가 되고, 일본 배우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대표적인 배우라 하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츠마부키 사토시가 아니었을까. 그의 이름을 넷플릭스 신작에서 발견했다. 바로 일본 TV도쿄에서 방송된 드라마 <살아있는 모든 것>이었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와타나베 켄과 함께 했다. 미소년 츠마부키 사토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중년이 된 츠마부키 사토시가 전하는 죽음과 삶의 이야기는 진솔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TV도쿄 개국 60주년을 기념하는 드라마로 <뷰티플 라이프>의 기타가와 에리코가 각본을 쓰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만든 히로키 류이치가 연출을 했다. 

죽기 전에 한번 살아보시지 않을래요? 

드라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게 된 젊은 의사 사쿠라 리쿠(츠마부키 사토시 분)로부터 시작된다. 한때는 잘 나가던 천재 외과 의사였으나 이제 더는 메스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는 가정도 잃고 딸과도 헤어진 처지이다. 

그런 그의 담당 환자가 나루세 쇼(와타나베 켄 분)이다. 그 역시도 한때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떨쳤지만 이젠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시한부의 암 환자다. 그런 그가 사쿠라에게 죽여 달라고 말한다. 아픈 아이의 응석 같은 말에 뜻밖에도 리쿠는 담담하게 '좋아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프로포폴을 투여하고 칼륨을 투여하면 고통 없이 세상과 이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거기에 덧붙여, 사쿠라는 '그래도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없나요?'라고 묻는다.

사쿠라는 나루세에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10가지를 써보라고 했지만, 나루세는 그조차도 없다고 했다. 그러다 휴게실에 걸려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 나루세는 '바람을 느껴보고 싶어'라고 말한다.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하얀 병실 천장만 쳐다보다가 죽기 싫다던 나루세는 사쿠라와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떠난다. 전속 담당 의사와의 마지막 여행이다.

강변에 텐트를 치고 바비큐도 해 먹고 일출도 보는 두 사람, 죽음을 향해가는 와타나베의 시선으로 보는 그 풍경들은 '죽음' 앞에서 더욱 빛난다. 그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와 함께 더는 존재하지 않을 그 시간, 그 시간의 소중함에 공감토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나루세를 위해 여정은 계속된다. 당시엔 호기롭게 큰 소리를 쳤지만 사실은 가난하기만 한 앞날을 알 수 없던 수줍은 소년의 기억 속 모교를 찾아갔다. 모교는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나루세는 뜻밖에도 그 시절 첫사랑의 소녀를 만나 뒤늦은 고백을 듣는다.

하지만 나루세는 떠난다. 그녀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다며, 이어지는 나루세의 여정은 오래전 헤어진 어린 딸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 어린 딸은 자신이 놔두고 왔던 그만한 딸을 키우는 아이 엄마가 되어 있었다. 

여정의 하루하루 나루세의 고통은 심해지고, 가져간 진통제로도 그 고통을 다스리기 어려워졌다. 그즈음 사쿠라가 써보라고 했던 나루세의 이른바 '버킷 리스트'도 마무리된다. 거세어지는 고통 속에서 더는 세상에 대한 애착도, 만나봐야 할 인연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루세, 이제는 그만 자신을 보내달라 한다. 

드라마는 안락사를 원하는 나루세와 그 여정을 함께 하는 사쿠라, 두 사람의 로드 무비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로드 무비라지만 여정의 주인공은 죽어가는 나루세다. '안락사해도 좋다는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되지만 그건 그거대로 충격일 것 같다'고 말하던 나루세가, 죽음의 약 칼륨을 '상비'하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안전장치'와 함께 떠난 여정이었다. 그 여정에서 그가 맞이한 찰나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빛난다. 

우리는 무얼 위해 살아가나?

나루세의 마지막 버킷 리스트 여행은 정작 그가 다다른 죽음의 문턱 앞에서 브레이크가 걸린다. 이만하면 됐다는 나루세에게 '남겨지는 쪽 마음도 있다며 자신을 위해서 하루만 더 살아'달라던 사쿠라,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서야 나루세는 사쿠라가 가져온 칼륨이 2병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나루세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며 사쿠라는 병원에 사표를 던졌다. 그저 천재 외과의사로서 더는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떠난 것인 줄 알았는데, 2병의 칼륨 중 하나는 바로 사쿠라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하루만 더 하면서 간곡하게 나루세를 만류하던 마음은 바로 사쿠라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어느새 자기 자신과 세트가 되어버린 사쿠라의 삶, 죽기 전에 살아보라던 사쿠라에게 외려 이제는 나루세가 사쿠라를 만류한다.

"이제부터의 삶이 있다고 살아, 살라고!"

진통제로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말기암 환자, 한때는 잘 나가던 천재 외과 의사였지만 명망도, 가정도, 자식도 모든 것을 잃은 의사. 이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뻔한 전개로 이어지는 영화인 줄 알았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네가 내던지려고 하는 내일은 누군가가 간절하게 바라는 내일이야, 살아줘'라며 나루세는 안락사를 포기한다. 대신 사쿠라와 함께 병원으로 돌아간다. 

하얀 병실이 싫다던 나루세는 그 하얀 병실로 돌아가 '애송이 선생'이라 부르던 사쿠라의 간호를 받으며 세상을 떠난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힘들어 하던 그가, 기꺼이 사쿠라를 위해 자기 삶의 나머지 고통을 감내하고자 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걸지도 모르겠어."

암 병동의 외로운 독거 노인이었던 나루세, 하지만 그는 사쿠라와 길을 떠나 자신이 외톨이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으로 기억하는 여인도, 아버지로 애틋함을 가진 딸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에만 오로지 천착했던 그가 생의 마지막에서 택한 건 뜻밖에도 '이타'였다. 얼마 남지 않은 고통이라도 기꺼이 자신이 감내한다면 살려낼 수 있는 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와 함께 삶의 막을 내리려 했던 사쿠라는 적극적인 호스피스를 주장하는 새로운 분야의 의사로 거듭난다. 드라마는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려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이유를 묻는다. 

지난 5월 방송된 EBS <다큐 프라임-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에 나온 100세가 가까운 할머니는 가족들과 떨어져 요양원에 오면서 처음에는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했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요양원에서는 작은 문방구를 만들고, 할머니는 매일 이곳에 출근해 어린 아이들이 찾는 문방용품을 팔며 생의 활기를 되찾는다. 허리가 굽을 대로 굽어 보조기에 의지해서야 걸을 수 있는 할머니는 일을 하며 다리 힘을 잃으면 안 된다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 역시 죽음을 통해 삶을 말하고자 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의미있는 삶일까, 무엇이 행복일까? 드라마를 보며 새삼 묻게 된다.

"행복이란 목표일까요? 살아있으면 때로 불어오는 포상처럼 느껴지는 기분좋은 바람같은 거 아닐까요?"
살아있는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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